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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기에 경배해야 하는가?

작성자제너럴김|작성시간24.12.15|조회수49 목록 댓글 0

말씀 / 마태복음 2:1-12

 

오늘 말씀에는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예수님에게 절하며 경배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이들은 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였을까요? 이들의 경배를 받으신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배우심으로 동방박사들처럼 엎드려 경배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절을 보면. “헤롯 왕 때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가 얼마나 힘든 시대인가를 말해줍니다. 유대인들에게 ‘헤롯 왕 때’라고 하면 무섭고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헤롯 왕은 무자비한 폭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로마 황제에게 아부를 해서 유대의 왕이 되었습니다. 헤롯왕은 본래 신경성 강박증이 있어서 정서 불안의 사람 이였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기 자리를 노리는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제거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과 같은 사람 이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의심이 되면 그냥 죽여 버렸습니다. 심지어 아내도 죽이고 2명의 아들도 죽였습니다. 16절을 보면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런 악한 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소망이 보이지 않는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온나라가 심히 어지럽습니다. 우파시민들은 이 나라가 이러다가 수명을 다하고 중국이나 북한에 넘어갈 것 같이서 마음이 어둡고 불편해서 잠을 못이룹니다. 탄핵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은 1947년 좌우간의 대립 때처럼 여전히 속아서 탄핵을 지지하고 탄핵을 주도하는 세력이 누군지 조차 모른체 탄핵을 지지합니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탄핵의 광풍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심히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두려움의 시대입니다. 사탄은 이런 시대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어둡게하고 지배하고자 합니다. 삶의 소망을 잃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며, 여러 가지 현실 문제 앞에 좌절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어두운 시대에 오셨습니다 1절을 보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요한복음 1:9절은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가장 어두울 때 예수님은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환하게 밝혀 주고자 하십니다.

 

이 빛을 따라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그들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입니다. 동방은 페르시아 지방입니다. 먼 동방에서 낙타를 타거나 걸어서 왔으니 몇 달이 걸렸을 것입니다. 길도 얼마나 험했겠습니까? 산도 넘어야 하고, 물도 건너야 하고, 사막을 지나야 했습니다. 강도나 맹수, 풍토병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발도 다 부르텄을 것이고 몸은 녹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생하면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2절을 보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이 이토록 고생하며 예루살렘에 온 이유는 유대인의 왕을 만나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는 유대인의 왕은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왜 그토록 메시아를 간절히 찾았을까요? 현실에서는 어떤 것도 진정한 메시아가 되지 못함을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박사는 오늘날과 같은 단순한 박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귀족 출신이었고 여러 학문을 두루 통달한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부와 명예, 지식까지 다 이룬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이루어도 인생의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사들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전공분야인 별을 날마다 쳐다보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별을 발견하였습니다. 분명 메시아를 상징하는 별이었습니다. 메시야별을 보자 그들은 심장이 뛰었습니다.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시다니! 그야말로 너무나 흥분이 되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빨리 만나서 경배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분께 드릴 귀한 선물도 준비하였습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별을 따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 내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은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자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온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슨 경배한번 하려고 저렇게먼 거리를 가냐? 어떻게 된 것 아니냐? 거리도 멀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니 그냥 유투브 보면서 집에서 경배하면 되지’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드라이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는 그 먼거리를 마다않고 가고 돈이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요즘 BTS가 세계적인 가수이다보니 공연이 있으면 그 먼거리를 입장료가 비싸도 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낱 인간에 불과합니다.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순히 춤과 노래로 잠깐의 즐거움을 줄 뿐입니다.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수에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난리법석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풀의 꽃과 같이 금방 시들어 버린다는 것을 동방박사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런 사람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경배의 대상을 찾은 것입니다. 그분에게 경배드리기 위해서라면 몇 달이 걸려서 오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든지, 많은 돈이 들던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충만하고 내면에 참 만족이 넘쳐 흘렸습니다.

 

반면에 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떠하였습니까? 3절을 보면 그들은 소동하였습니다. 영어로 보니 ‘disturbed’ ‘마음이 어지러웠다, 불안하였다’라는 뜻입니다. 헤롯은 자기 말고 다른 왕이 나타났다니! 소동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왜 소동했을까요?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가 왔다고 하면 할렐루야! 하고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소동하는 것일까요? 왜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할까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세상일에만 몰두하였고 세상의 죄악을 즐기며 잔재미를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메시아가 오신다니 심판받을 것이 걱정이 되어 마음이 소동하였습니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마음에서부터 기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동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살지 못해 죄송스럽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경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시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경배해야 할 분이 되십니다. 아기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까? 6절을 보면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 되시기에 우리는 경배해야 합니다. 누가 다스리는가에 따라 그 나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다스리므로 북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고 힘듭니다. 불안하고 어둡습니다. 식량난과 연료난으로 인해 올겨울에도 수십만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누가 나의 왕이 되는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동안은 사단이 우리에게 왕 노릇 하였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이런 사단의 다스림으로 인해 우리들은 온갖 죄에 빠졌습니다. 신경질 내고 싸우고 분노하며 악하게 되었습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화가 난다고 칼을 들고 찾아가 칼로 찌릅니다. 또한 사단이 통치함으로서 아이들을 음란하게 만들어 상상할 수도 없는 성적인 범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다스려 보기 위해 등산도 하고 헬스도 합니다. 명상을 하기도 하고 참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락하였기에 이런 것으로는 마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기를 항상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은 이미 우리를 다스리고 있던 사단의 세력들을 다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거라사 아이에게 있던 귀신들을 먼저 쫓아내셨듯이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세력들을 다 몰아내 주십니다. 그리고 직접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다스려 주십니다. 의와 사랑과 평강으로 통치하십니다. 죄의 소욕을 물리쳐 주시고 내 마음에 거룩한 소원을 심어 주십니다. 거룩과 성결로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더이상 사단에게 패배하고, 절망하며 자포자기하는 무기력한 인생이 아니라, 힘차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 넉넉히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왜 우리가 교회다니는데 평강이 없고 생명력이 없습니까?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합니까? 우리가 왕이요 주인이 되어 그분의 다스림을 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나를 다스리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다스려주시고 나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스림을 거부하지 마시고 고집을 내려놓고 찬양하며 경배하며 귀하게 영접하고 말씀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나의 진정한 목자가 되시기에 경배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보호와 인도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밖으로 나갔다가도 집을 잘 찾아옵니다. 하지만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잠시 안 보는 사이에 다 제 길로 갑니다. 그러면서 고집은 엄청 세어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한번 넘어지면 다리가 짧아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이런 양과 같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현명하고, 똑똑해 보이고, 혼자서 다 잘할 것 같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 죽을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고집은 엄청 세어서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목자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연약한 나를 돌봐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인도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찬양 가사처럼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실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목자이신 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장단점과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키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요한복음 10: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이야 말로 내 인생의 목자시오, 왕이십니다. 이 왕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이런 왕께 경배드리지 않으면 누구에게 경배하겠습니까? 목자요, 왕이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경배 받기에 합당한 분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는 나의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에게 온 마음을 드려 경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나의 왕이신 예수님에게 경배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9,10절을 보면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별이 아기 있는 곳에 멈추자 동방박사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기쁨을 표현한 곳은 없습니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they were overjoyed!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왜 이렇게 기쁜 것입니까? 경배드릴 나의 왕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진정 경배 드릴 수 있는 분을 만날 때 기쁨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기뻐하기만 하지 않고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어떻게 경배하였습니까?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나이가 지긋이 든 동방박사들이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게 절을 한 것입니다. 이는 최고의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내가 주인되었던 자리에서 내려와서 나의 왕으로 영접하여 다스림을 받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당시 왕에게 바치는 가장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의 왕이신 예수님께 경배하는 삶은 내 안에 기쁨이 충만해지는 길입니다. 기쁨이 넘쳐흘러 얼굴이 해같이 밝아지게 됩니다. 기쁨으로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서 컸습니다. 그는 어렸을적부터 하늘의 별은 많이 보고 자랐지만 그의 인생의 별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소룡을 그의 마음의 별로 모시고 그를 기뻐하며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소룡은 어렸을 때는 그의 마음을 다스려주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다스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 자신을 다스려 줄 존재를 찾다가 단 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단사상이 그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사상은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자기우월감에 잡히게 하였습니다. 단사상이 그를 다스리자 결국 어두움이 엄습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공황 장애에 걸리게 되었고 괴로웠습니다. 이 공황장애로 인하여 그의 인생은 캄캄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까 노력해보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그에게 빛 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처럼 예수님은 칠흑같이 어두운 그의 마음에 오셔서 다스려 주셨습니다. 사랑과 평강으로 다스리셨습니다. 그의 목자가 되셔서 그의 인생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위해 목숨도 내어주셨습니다. 그는 이 사랑을 깨닫고 평생 예수님만 따르며 살겠노라 결단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진정한 별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 별을 보며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였습니다. 신학을 하는 동안 그는 가난하고 초라했어도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만났으므로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는 그의 왕 예수님에게 그의 인생 전부를 드리며 경배하고자 하였고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행복한 목사가 되어 평생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 되십니다.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나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께 온 마음을 드려 경배드리고 다스림을 받고자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순수하게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의 예물을 드리므로 성탄의 기쁨이 차고 넘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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