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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많이 맺는 비결

작성자제너럴김|작성시간26.06.14|조회수54 목록 댓글 0

말씀/요한복음12:20-33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밀알의 교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우리 인생을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고 욕된 삶을 살다가 마칩니다. 왜냐하면 이 밀알의 진리가 가르쳐주는 법칙을 무시하고 내 생각과 판단대로 욕심에 기초하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양화진에 묻힌 외국인선교사님들은 모두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가 주님나라에 가신 분들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국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환경적으로는 이질, 말라리아 등이 창궐한 땅 이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은 태평양을 건너 질병이 창궐한 조선 땅에 왔습니다. 전염병이 마을을 휩쓸자 사람들은 병에 걸린 가족을 집에 두고 떠나는데도 선교사님들은 떠나지 않고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들을 끝까지 돌보아 주었습니다. 자신들도 말라리아에 걸리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정성껏 돌보며 치료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선교사님들이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이질과 각종 풍토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적인 삶에 많은 조선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선교사님들은 한 알의 밀이 되어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라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통하여 열매 맺는 비결을 배워서 우리도 주님처럼 내가 죽음으로 자녀들을 살리고 남편들을 구하고 완고한 심령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죽음을 영광으로 여겨야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24)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사람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에는 천하 만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헬라사람들은 일찍이 인생과 우주의 근본 원리에 대해 깊이 사색하였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헬라에서 나왔습니다. 헬라사람들은 늘 지혜를 사랑했습니다.

이방 헬라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거룩한 인격의 소유자일뿐 아니라 소크라테스 철학과는 다른 심오한 진리를 가르치고 또한 기적을 행하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11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얼마전 죽은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은 그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였습니다. 그들은 정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에게 가서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께 나아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아뢰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23절을 보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여기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라고 하지 않고 영광을 얻을 때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으로 보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가 속하여 지고 우리인생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영광이요, 승리의 죽음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능력있는 것입니다.(고전1:24) 예수님은 십자가의 비밀을 아셨기 때문에 이를 슬픔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영광으로 보셨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주의 길을 가는 동안 겪게되는 많은 아픔과 고통을 슬픔으로 여기기보다는 영광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러 아픔가운데서도 자아를 죽이고 욕심이 죽이고 세상 꿈을 죽이는 것은 어린 영혼들의 생명의 열매를 맺기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고가는 이 무거운 희생과 양보의 십자가는 고생이 아니요 영광의 십자가요 우리의 죽음은 영광스러운 죽음이요, 찬란한 아픔이요, 의미있는 고통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수많은 구원의 역사가 열리게 될 것을 미리 다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비통해하거나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인류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런 죽음이 왜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밀알을 가지고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24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의 비유는 평범한 자연법칙으로서 생명의 원리입니다.

 

한알의 밀은 새의 한끼 식사도 안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4개월 후에는 100-125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뿌리면 10년 후에는 한알의 밀의 양이 대형트럭으로 한 트럭이 됩니다. 이것은 가히 천문학적 수치입니다. 그러나 이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반드시 먼저 땅에 떨어져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죽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씨가 어두운 땅에 떨어져서 2-3cm로 묻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씨는 지열과 수분에 의해 썩게 됩니다. 이때 그 몸이 분해되면서 나온 열과 영양분으로 인해 배아에서 아주 작은 실같이 가는 뿌리가 내려지고 위로는 싹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밀알이 완전히 분해되어 없어질 때쯤이면 싹은 스스로 땅에서 양분을 취하며 자립적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커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처음 땅에 묻힌 밀알은 이미 그 존재가 사라져버리고 빈쭉정이만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밀이 죽는다고 합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완전히 분해하여 새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한낱 보잘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도 생명이 있어서 밀과 같이 수많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열매를 맺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한 알의 밀처럼 죽기는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죽는 데는 아픔과 수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많은 열매를 맺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려면 반드시 땅에 떨어져 죽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죽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반쯤 죽어도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온전히 100%죽어야 맺힙니다. 이는 분명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의미있고 가치있는 고통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양보하고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적극 수고하기를 싫어합니다. 희생하면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서 결코 희생하거나 죽으려고 하지 않고 내 욕심대로 하고 편안하게 여유있게 살고자 합니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내가 왜 양보해야 하는데, 나만 왜 희생해야 하는데” 합니다. 그러나 한알의 밀이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5년이 지나도 한알 그대로이고 10년이 지나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오래다녀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자녀를 엇나가는 것은 수고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싫어해서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이 세상을 굴러다니다가 결국 복을 받지 못하고 자기생명조차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이 없는 곳에는 결코 영광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교회학교도 그렇고 속회도 가정에서도 교사들, 인도자들, 아내들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희생, 물질의 희생, 봉사의 희생이 있어야하고 무엇보다 자기자아를 죽이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존심도 죽이고자 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대접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도 죽여야 합니다. 이기심도 죽여야 합니다. 욕심도 죽여야 합니다. 미움의 감정, 섭섭한 감정, 실망의 감정등 모든 감정을 십자가에 못박고 이같은 아픔도 모두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나를 힘들게 하고 실망시키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쏟아주셨습니다. 그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들의 희생이 없이는, 죽음이 없이는 아무런 열매가 없음을 알고 희생과 죽음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자기생명을 미워해야 합니다.(25) 25절을 보면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어디에 드리는가는 참으로 우리가 많은 복을 받고 못받고 있어서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 즉 이 목숨을 주님께 걸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기생명을 사랑하여 자기를 위하여 이약, 저약을 먹고 보양식을 먹고 자기를 위하여 성형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으면 오래오래 복을 받으면서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한 알의 밀처럼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하고 주님께 생명을 걸고 살면 영생할 때가지 우리의 생명이 잘 보존되고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바로 한 알의 밀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기생명을 걸어야 무엇이든지 잘 됩니다. 기도가 안될 때도 나는 기도에 생명을 걸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면 기도가 됩니다. 생명걸고 기도하면 어떤 질병이나 어떤 문제도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와도 싸울 때 생명걸고 싸우면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달아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이미 걸었었기에 우리가 생명걸면 안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6절을 보면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희생하며 한 알의 밀로 죽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가신 길을 따를 때 아버지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27절을 보면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 괴롭다는 것은 큰 불안과 요동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한 것을 아셨지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민이 생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할 육신의 고통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저주 받고 버림받아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이 컸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통의 길을 가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면 이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땀이 핏방울되도록 기도하심으로 자기의 소원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알의 밀로 죽고자 할 때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희생적으로 신앙생활하다가는 오히려 가족들이 시험에 들기 딱 맞습니다.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정말 우리 의지와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자기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알의 밀로 죽을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내 자존심을 죽여야 우리가정이 살고 내가 희생하여야 교회가 살아납니다. 내가 대접받고자하는 마음을 버리고 한 알의 밀로 희생하고 수고하면 우리 중고청이 살아나고 내가 죽어야 우리 교회에도 영광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다툼이 생기고 내가 살아있으면 교회가 시끄럽게 되고 많은 사람을 시험들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도 깨끗이 죽으시고 사망신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 000는 죽었다 장례치루었다” 내 중심대로 내 고집대로 내 편한대로 살고자 하는 옛자아를 십자가에다 못박아 장례를 치뤘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아계셔서 나를 주관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뜻에는 오직 예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죽어야 교회도 편하고 모두가 잘됩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여러분이 죽을수록 남편이 살고 자녀가 살고 반이 살고 속회가 더욱 크게 살아나는 것을 아시고 날마다 죽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밀의 진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먼저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버리시고 이땅에 한 알의 밀로 떨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말구유에서 탄생하심으로 우리의 슬픈 인생을 살아보시고 우리를 물질적으로 부요케 하기 위하여 머리 둘 곳이 없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로부터 존귀와 영광과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만 오히려 섬기는 종이 되어 냄새나는 각종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섬기시느니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한 알의 밀처럼 우리인생들의 가난과 저주와 슬픔과 운명을 대속하는 대속의 삶이였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우리 인생들의 구원과 회복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영혼들이 영원한 파멸에서 구속받아 엄청난 복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되는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큰 두가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세상 임금 곧 사단이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죄사함의 역사가 시작되자 맥을 못쓰고 등뼈가 꺽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멸하셨습니다. 둘째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32절을 보시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라” “들리면” 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뿐 아니라 부활과 승천 모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승천을 통하여 온 세계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밀알의 진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무한한 영광의 삶을 맺을 수 있는 한 알의 밀과 같습니다. 한알의 밀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희생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희생을 통하여 많은 영광의 삶을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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