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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김민호] 《영국 정원 일기》 (나무와 꽃을 돌보며 발견한 자연의 질서와 조용한 위안) 中에서 (2026.06.13.)

작성자행복한동행|작성시간26.06.13|조회수17 목록 댓글 0

5월 

다섯째 주 

수첩 

 

바람이 많이 분다

정원에도 

산미나리 뿌리를 캐는 손을 바라보는 

눈 안쪽 어두운 곳에도 

장갑을 벗고 손목의 흙을 털어 내는데 

작은 가루들이 부옇게 일어선다

떨어져 나와 단단히 굳어 버린 나의 작은 조각들 

이 속에서 떨어졌으니 이쯤일 텐데 

거기가 어딘지 보이지 않는다 

다시 가라앉혀 굳히기 위해 가로질러야 하는 

둥둥 

먼지가 뿌옇게 뜬 길 

그래도 만들어야 하는 나무 화단 

아직 흙에 심지 않아 잎끝이 조금씩 말리고 있을 

흰 꽃의 노루오줌 

우선은 확실한 그 꽃을 향해 간다 

두세 주 환하게 피고는 후드득 떨구겠지만 

지금 피어 있는 꽃에는 

곧 떨어질 두려움 하나 없으니, 

정원에 가서 검고 기름진 새 흙에 우선 심어야 한다

 

토요일 아침, 토마토 모종을 심으려고 부엽토 포대를 들다가 허리를 삐었다. 작은 화분에서 웃자란 녀석들을 평일 내내 

지켜만 보다가, 주말에 일어나자마자 잠옷 바람으로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간밤 부드러워진 허리를 예열할 틈 없이 

구부렸고 곧이어 뜨끔, 푹 찌르는 통증. 무릎에 올린 손에 힘을 주며 일어서려고 하니 오른쪽 아래 허리가 아프다.

주말 동안 쉬고 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월요일 아침까지도 쑤셔 온다. 심어야 할 화분도, 정리해야 할 울타리도 많은데 

이를 어쩌나. 

8년 전이었나, 정원에서 잔디를 깎던 중 한구석의 원목 테이블이 걸리적거려 치우다가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머릿속은 

이미 다음 정원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한 손으로 모서리를 대충 잡고 당겼더니 곧바로 통증이 허리를 찔렀다. 그러고는

꼬박 2주일을 누워 있었다. 그해부터는 아무리 조심해도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씩은 허리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올해는 5월인가 보다. 새로 만들 정원도, 시든 꽃을 꺾어낼 장미도, 한껏 살이 오른 울타리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우선은 

쉬어야 한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 뻔한 말이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반복을 지켜본 횟수가 쌓이기 때문이다. 눈 앞에 핀 꽃도, 

무화과나무를 오르내리는 아들의 보드라운 복사뼈도, 일요일 오전 10시쯤 정원 가득한 봄볕도 잠깐 머물다가 곧장 과거로 

흘러간다. 기억하고 저장하려 애써도 손에 잡히는 것은 전지가위나 모종뿐, 시간을 붙들어 맬 도구는 가지지 못했다. 당장 

화분에 물을 주더라도 표면을 적신 물은 금세 아래로 흘러, 순간이 과거로 사라지듯 흙 속의 어딘가로 사라진다. 

하지만 정말 사라지고 마는 걸까. 흙 아래로 스민 물은 뿌리가 머금어 가지로 보낸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물은 흙으로 빨려 들어가 물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령 잎과 꽃과 열매로 다시 솟아난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고 물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 순간들은 어디선가 곱게 쌓이고 어떤 형태로든 다시 솟아난다. 이처럼 시간을 붙들 수는 없지만 영영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정원은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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