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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이호선] 《이호선의 나이 들 수록: 관계 편》 (나이 듦의 불안이 사라지는 32가지 심리 수업) (2026.06.14.)

작성자행복한동행|작성시간26.06.14|조회수23 목록 댓글 0

모든 관계는 ‘나’ 와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지연된 성인기’ 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권하는 ‘어른식’ 

 

‘이런 멍청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본 적 있나요? 바보 같고 한심한 결과를 냈을 때 혼자 차에서 냅다 소리를 질렀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자기 뺨을 찰싹 때리진 않았나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섬뜩한 욕을 중얼거린 적도 있을 겁니다. 

한심한 나에게 내리는 일종의 처벌이죠. 타인에게는 그렇게 관대하고 잘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에게는 꽤나 혹독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젠 가만히만 있어도 팔다리가 쑤셔오는 나이에 왜 스스로 자기 머리를 쥐어박을까요? 자기처벌과 성찰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의 훈육과 체벌 탓일까요? 부모가 내리쳤던 회초리와 뾰족한 말들을 통해, 

선생님의 30센티미터 자에 손바닥을 맞으면서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워서일까요? 

원인이 무엇이건 어린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났고, 우리는 그 사이에 교육도 받고 취업도 해 어른이 되었고, 누군가의 선배, 

선생, 배우자,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영향력에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죠. 실제로 올해 40세가 된 여성과 

남성에게 30세 이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의 영향력과 나의 주도성을 퍼센티지로 나누어 적도록 했더니, 

부모의 영향력은 평균 31.6퍼센트, 나의 주도성이 68.4퍼센트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애착이론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존 볼비는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가 이후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지요.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 초기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가 이후의 전반적인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면 안정 애착이 생겨 성인기에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죠. 그러나 사랑을 받아야 할 때 

거부당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불안정-회피 애착’, ‘불안정-불안 애착’ , ‘혼란 애착’ 을 형성하게 됩니다. 

불안정-불안 애착은 감정 표현을 억누르고 관계에 거리를 두는 경향을, 불안정-불안 애착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크지만 

동시에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며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관계에 불안을 자주 느끼는 경향을 남기며, 혼란 애착은 인간관계에서 

자신감과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볼비 박사의 말처럼 성장 후에도 부모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30퍼센트일 뿐입니다. 나머지 약 70퍼센트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결정과 선택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스스로가 얼마나 희망적이고 대단한지 보세요. 지금도 이미 자기 삶을 넘어 가족의 삶까지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전히 부모의 목소리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직도 부모, 타인의 목소리라면 

여러분은 아직 어른이 아닌 겁니다. 여전히 부모와 타인의 훈육 아래에서 사는 것이지요. 심리학자 제프리 아넷은 

이러한 상태를 지연된 성인기 라고 정의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해 불안해하고, 늘 중간에 끼어 있는 기분이 들고, 

자기중심성에 빠져 살거나 내가 누군지를 흰머리 나도록 여전히 찾고 있다면 ‘지연된 성인’ 이라는 것이죠. 아직도 ‘멍청이’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면, 그건 내 마음의 소리가 아닐 겁니다.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인 거지요.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세요

 

어른은 자기주도적인 사람입니다. 누구의 소리를 따라가는 일은 청년기에서 멈추어야 하죠. 이제 다른 사람의 소리는 

나의 주도적 결정에 작은 조언이 될 뿐입니다. 나아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오랜 자기 경험을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실패 경험과 성공 경험 모두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자기 열정으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못난이 자기도 잘난 부분이 있는 자기도 모두 자신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였지요. 이렇게 주도적으로 나이 들어왔고 여러 

교육도 받고 경험치도 쌓았다면, 자신을 대할 줄 아는 능력도 제법 갖췄다고 느낄 겁니다. 그러나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삶의 시기에 따라 주파수를 달리 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을 배우는 시기가 있고,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람과 인생을 공유하기로

약속하는 때가 있지요. 또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많은 분이 자식으로서 위쪽 부모를 바라보는 수직적

관계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수평적 관계, 그리고 다시 부모가 되는 역수직의 관계를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횃불을 

들었던 시기였지요. 지금까지 잘 해 왔고 애썼습니다. 이제 자신을 밝힐 횃불을 들 시간입니다. ‘지금 이 정도면 괜찮아’ 라고 

생각하시더라도 그 만족 속에 나의 정체성은 있는지 물어보세요. 타인을 위한 목표 말고 나를 위한 목표가 포함되었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평생 헌신적 들러리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는 거예요. 

이전의 자신이 허무하고 무기력했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신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어른으로서 허무를 넘어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의미를 발견하라는 것이지요. 몸뚱이가 이전 같지 않고, 퇴직은 코앞이고, 애들은 떠나가고, 친구는 간데 없고, 문제는 

산적하고, 풀이는 점점 힘들어지고,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순간이 더 잦아지더라도, 어른은 늘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런 시기를 맞았거나 임박했다면 바로 생애 리셋(Life Re-Set)이 필요해요. 그럼 무엇을 어떻게 리셋해야 할까요?

나만의 ‘어른식’ 을 거행할 때가 되었습니다. 내가 주최하는 파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파티는 일상과 다른 시공간이지요. 

인생을 재해석하고 인생의 천동설을 시작하며 내 주변의 수많은 인생의 별들을 나를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세상과 사회와 가족과 자식을 위한 삶의 배치로 여기까지 왔다면 중년은 나를 위한 판을 구성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 우리가 

스스로 삶을 재배치하지 않는다면, 단언컨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내 삶이 재배치될 겁니다. 평생 남의 밥상과 생일상을 차려준 

여러분, 이제 나의 잔치에 내가 응답해야 합니다. 

 

두 팔을 벌려 자신을 환대하세요

 

이런 재배치는 이기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 인식부터 새로 시작하라는 겁니다. 자아 인식은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죠.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자아 개념(Self-Concept)이 나의 경험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비로소 세상인 타인과의 관계 형성도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 차원에서 

나이 들어 하는 자기처벌은 더없는 비극입니다. 어른은 타인에게 배운 자기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건강한 나와 타협하고

설득하며 관계를 맺습니다. 타인이 내 인생에 빚어낸 비극의 서사를 성숙한 자기 이야기로 다시 쓸 때 우리는 그를 ‘어른’ 이라고 

부르지요.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세상을 리셋하는 첫 ‘내면 성인식’ 을 치르는 일입니다. 저는 그 행위를 ‘어른식’ 

이라고 부릅니다. 

성인식은 본래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스무 살을 맞은 청년들을 모아 어르신들이 단체로 축하하고 기념해주는 성년례였지요. 

요즘은 서양식 성년식에 밀려 장미, 향수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열정적으로 살고 스스로 향을 내는 사람이 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나 그때는 어른이 뭔지 모르는 때였습니다. 삶은 방만하고 방향은 모호하며 미래는

늘 두려웠지요. 성인식이 어른식은 아닙니다. 성인식은 어른이 해주는 사회적 성장을 위한 행사라면, 어른식은 내가 나를 위해

해주는 성숙하고 거룩한 의례(Ritual)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과정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어른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해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헨리 나우웬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글은 마음에 순살이 돋아나게 하는데, 그 어른의 순살을 빚어내는 핵심 단어가 바로 환대(Hospitality) 개념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나를 환대해야 비로소 타인도 환대할 수 있습니다.’

환대는 자기 친절, 성숙한 인격, 마음챙김을 담고 있는 자기자비나 스스로를 안아주고 품어주는 자기연민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자신을 비난하거나 고립시키는 대신 자신에게 친절하고 수용적으로 대하는 것을 넘어서고요. 자신을 용서해 본 사람이 타인도

용서하고, 자신을 환대하고 가꾸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환대하지요. 모든 관계는 나와의 관계로부터 시작합니다. 외로운 나에서

기뻐하는 나로, 자기처벌에서 자기돌봄으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나에서 가족과 친구를 맞이하는 나로, 어설픈 나에서 창조하는

나로 살아가는 힘은 자신을 환대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나를 얼마나 환영합니까. 나는 나를 얼마나 기뻐하나요. 나는 안아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기억하세요. 당신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선은 나를 환대하세요.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나를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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