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쩌다 카페 귀때기 (p. 134 ~ 138)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랑의 불시착>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패러글라이딩 하던 재벌 상속녀가
갑작스러운 돌풍에 북한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정찰 중이던 북한 장교를 만나 좌충우돌,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완성하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얼마 전엔 하루에 몇 편씩 연달아 재방을 해서 추워 나가기 싫은 겨울, 며칠 동안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재방을 보는 재미는 같은 책을 두세 번 읽을 때와 비슷하다. 처음엔 줄거리를 좇느라 보이지 않던 복선이나 배경,
암시가 보인다. 그것도 볼 때마다 다른 각도로. 어느 땐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던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주인공보다
더 끌릴 때도 있다.
이번엔 ‘귀때기’ 라는 직업이 눈길을 끌었다. 도청하는 사람을 북한 말로는 귀때기라고 한단다. 설명 없이도 금방
이해되는 단어다. 귀를 낮춰 부르는 말이니 귀때기라는 직업도 남의 말이나 엿듣는다 해서 천시당하고 있었다.
염탐한 말을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귀때기는 비밀을 발설해서는 안 되고, 엿듣는 줄 모르고 말한 사람이 곤경에
처해도 아는 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귀때기 남자는 자책과 회의로 자주 울었다. 세상의 많은 직업
중에서 귀때기도 할 게 아닌 직업이고 스트레스가 엄청난 일이다 싶었다.
귀때기에 관심이 생긴 이유가 있다. 나도 본의 아니게 귀때기 노릇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혼자 다닐 때가 많다
보니 스쳐 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저절로 귀에 들어온다. 산굼부리에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쏟아내는
웃음소리는 옥타브가 높아도 청량한 느낌이었다. 오일장에서 두부를 사려고 줄 서 있다 보면 제주 할머니들이
나누는 진짜배기 제주어를 들을 수 있었다. 물리치료실에서 찜질하다가 듣게 된 치료사들의 수다 끝에 얻어걸리는
맛집
정보도 유익했다. 상대가 있어야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대답하려다가 고개만 끄덕이면서 충분히 대화가
오간 기분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재미있으면 자체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길에서 줍는 말은 듣기 싫으면 멀찍이 떨어져
걸으면 그만이지만, 글 쓰려고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옆자리에서 들리는 소리는 피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옆에 자리를 잡으면 그날은 망한 날이다. 특히 여자 셋 이상이면 다른 자리로 옮겨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시도 ‘천사가 지나갈 시간’ 이 없다.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대화의 공백이 생길 때 어색한 순간을
천사가 지나간다고 하는데, 그 자리는 천사도 부담스러워 다른 길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내가 고막 테러라고 하는 그들의
수다가 나 또한 다른 이들과 했던 것이기 때문에 비난의 눈총을 쏠 처지가 아니다. 나의 ‘우리들’ 에겐 진지하고 고상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했던 ‘썰’ 이 또다른 나에겐 소음 공해였단 말이지 싶어 씁쓸해지는 것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도
우리들만큼이나 진지한 얘기를 하는 중이며, 때론 ‘아무 말 잔치’ 로 한바탕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중 아닐까.
그게 견디기 힘들면 카페를 서재로 이용하려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옆자리 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나를 발견했다.
신산리 카페에서였다. 젊은 여자 둘이 뚫어져라 바다를 보고 있었다.
통창에 쓰여 있는 ‘돌고래도 놀러 오는 신산리 마을 카페’ 의 문구를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돌고래가 나타나나 봐.”
돌고래 톤으로 소리 높여 반기더니 이내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상괭이가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래. 작은 돌고래네.”
“가만히 있어도 웃는 얼굴이야. 짱 귀엽다.”
“우리 여기서 돌고래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맑고 쾌청한데다 파도도 잔잔한 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위로 돌고래가 튀어오르면 아주 멋진 광경일 터.
나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래를 볼 수 있다면 그들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 같았다.
자리는 떨어져 있어도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아는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날 돌고래는 볼 수
없었지만, 내게 달라진 게 있다면 카페 귀때기가 된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론 카페에 가서 운이 좋으면 몇 줄이라도 쓰고 오고, 또 다른 의미로 운이 좋으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귀만 보내서 대화를 나누곤 한다. 더러는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과 ‘우리들의 청춘’ 을 돌아볼 때도 있고, 내가 겪은
것과 같은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자식 또래가 그들의 생각과 계획, 고민을 나눌 땐 말없이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여행 온 사람들의 감탄사는 거의 닮았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역시 제주다워!” 하다가 커피잔이 비어질
때쯤이면 맛집이나 다음날 갈 만한 장소를 검색하는 순서도 닮았다. 내가 친구들과 여행 왔다면 우리도 그랬을 거다.
투명한 동석인이라서 맛집과 명소를 알려줄 순 없어도 그들이 새로운 장소로 가려고 일어설 때는 속으로
‘잘 선택했어요’ 라고 말한다.
그들은 탁자 맞은편에 또 한 사람이 있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떠나리라. 자신들도 기억 못할 말씨들을 떨구고
간 것도, 그것을 주워 올린 ‘귀’ 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자판에 씨앗을 심고 있다는 것도.
카페 귀때기, 해 볼만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