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연방 정부가 과거 행정 착오와 차별 조항으로 국적을 잃었던 이른바 '잃어버린 캐나다인(Lost Canadians)'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한 상속 시민권법(Bill C-3)이 발효 6개월 만에 미국인들의 대규모 '보험용 백업 여권(Backup Passport)' 취득 통로로 전격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거주 기간이나 납세 의무, 언어 자격시험 등 어떠한 정서적·물리적 결속력 검증도 없이 오직 서류상 혈통만 입증되면 국적을 부여하는 허술한 제도적 사각지대 탓에, 캐나다의 이민 인프라 공급망 전체가 통제 불능의 마비 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민 전문가(RCIC) 카말 디프 싱이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연방 정부가 지난 2025년 12월 15일을 기해 세대 제한을 철폐한 신규 시민권법을 시행한 이후 캐나다 이민부(IRCC)로 쏟아진 국적 증명 신청 건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법 시행 초기 3개월간 발급된 상속 시민권 인증서 4,075건 중 무려 48%인 1,955건이 미국 출생자에게 돌아갔으며, 올해 5월 기준 이민부의 시민권 처리 적체(Backlog) 물량은 한 달 만에 1만 4,000건이 폭증한 7만 400여 건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통상 5개월이던 행정 처리 기간은 10개월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상태다.
세금·거주 의무 없이 세계 8위 여권 자산화… 퀘벡·동부 주정부 아카이브 서류 신청 3,000% 폭증
이번 사태는 2023년 온타리오 고등법원의 '비요르크퀴스트(Bjorkquist)' 위헌 판결에 따라 국회가 해외 출생 2세 이하에게 적용하던 시민권 자동 상속 제한 규정을 전면 폐지하면서 촉발됐다. 문제는 2025년 12월 15일 이후 출생자에게는 '출생 전 캐나다 내 1,095일 실거주'라는 엄격한 유대성 검증을 적용하는 반면, 그 이전에 태어난 성인 가구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전면 면제해 주면서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1890년대나 1920년대에 퀘벡이나 대서양 연안 주에서 미국 뉴잉글랜드 등으로 이주한 이민자의 증손자나 고손자까지 가계도만 증명하면 즉시 캐나다 여권을 손에 쥐게 됐다.
실제로 미국의 족보 검색 플랫폼(Ancestry.ca)과 가구별 출생 기록을 뒤져 조상의 직계 체인을 증명하려는 미국인들이 몰리면서, 퀘벡 국립문서고(BAnQ)의 서류 요청 건수는 전년 대비 3,000% 이상 폭증했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 등 동부 연안 주의 행정 지연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이 단돈 75달러의 행정 수수료만 내고 전 세계 181개국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세계 8위의 캐나다 여권을 취득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국적 기준이 아닌 '거주지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미국에 살면서 캐나다 시민권을 보유해도 캐나다 정부에 세금을 낼 의무가 전혀 없고 연방 복지 인프라와 의료 시스템(OHIP 등) 진입권 및 배우자 초청 이민 권한만 통째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수 1점에 우는 '익스프레스 엔트리' 청년층 역차별… 시민권 시험 도입 시급
미국 내 정치적 불안정과 고물가 기조 속에 가시화된 이러한 '무혈통·무기여 국적 취득 붐'은 캐나다 현지의 심각한 부동산 공급망 및 사회적 인프라 위기와 맞물려 심각한 정서적 역풍을 낳고 있다. 지난 6월 3일 부동산 자산 조사 기관 로열 레피지(Royal LePage)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발 캐나다 부동산 웹사이트 접속량은 특정 주간 전년 대비 최대 233% 폭증했다. 연방 정부가 주택난과 의료 인프라 과부하를 막기 위해 연간 이민자 수용 타깃을 38만 명 선으로 감축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 1,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상속 대상자들이 권리를 행사해 캐나다로 유입될 경우 지자체의 도시 계획은 완벽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캐나다 사회를 위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기여하려는 전문 인력 유치 시스템과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연방 전문인력 이민(Express Entry) 신청자들은 단 0.1점의 종합점수(CRS)를 더 받기 위해 고액의 영어·불어 시험과 경력 개발에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일반 이민자들 역시 1,095일의 실거주와 시민권 시험, 충성 맹세 선서식을 거쳐야 겨우 국적을 취득한다. 반면 고조부의 서류 한 장으로 시민권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 챙기는 작금의 상속 제도는 국가 자산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다.
캐나다 정부는 무분별한 국적 남발로 영사 조력 부담만 가중시켰던 과거 사례를 거울삼아 제도를 보완하여 소급 적용 대상자에게도 최소한의 국적 유지 거주 조건을 연방 통상 의무 법안에 즉각 반영하여 시민권의 존엄성과 상생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