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김혜순
귀신들은 언제나 투덜투덜, 그래요
그중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여자들이 제일 시끄럽죠
첫사랑에 빠진 귀신은 의외로 추적추적 조용하게 오고요
미친 여자 귀신은 조금 무섭게 오죠
머리칼에 번개가 붙어 오니까요
호수는 그렇게 세게 두들기면 안돼요
두드린 자리마다 핏물이 올라와요
입에서 지렁이가 나오는 저 여자
너무 두들기진 마세요
매일매일 두들겨 맞으니까 입에서
지렁이가 한 가마니 두 가마니 쏟아지잖아요
나중엔 제 내장까지 꺼이꺼이 다 토하고
빈 몸으로 뭉개지네요
냄새 한 번 요란하네요
숲 속에서 산 귀신에게 당해보았나요?
입속에서 한없이 뻗어나오는 넝쿨을 꺼내
넝쿨마다 푸른 혓바닥 주렁주렁 매달아
그 혀들이 밤새도록 떠들게 하더라니까요
귀신들은 참 질기게 시끄러워요
갔다가 돌아오고 쫓아내도 찾아오고
제삿날 온 집 안에 퍼지는 연기처럼
투덜투덜 침방울 천지에 튀긴다니까요
호수가 수천 개의 입을 벌려 떠들기 시작했어요
이제 누가 저 벌건 입술들을 틀어막지요?
아이구 천지사방이 호수네요 벌겋네요
*김혜순(金慧順, 1955~ ) 경북 울진출생의 시인.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국어국문학 박사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부 교수역임.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상하여 비평활동을 시작하였고,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에 시 「담배를
피우는 시인」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는데, 대한민국 현대시의 거장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기발한 상상력과 풍부한 언어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어려운 면을
그러내는 시를 써왔다는 평임. 시집에 <또 다른 별에서>(1981),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1985), <어느
별의 지옥>(1997).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1994), <불쌍한 사랑기계>(1997),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 <한잔의 붉은 거울>(2004), <당신의 첫>(2008), <슬픔치약 거울크림>(2011), <피어라
돼지>(2016), <죽음의 자서전>(2016), <날개환상통>(2019) 등이 있음
2019년 시집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하였으며, 김수영문학상(1997), 현대시작품상(2000), 소월
시문학상(2000), 미당문학상(2006), 대산문학상(2008) 등을 수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