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이 명박 전대통령이 사면되었지요. 그러나 김 경수 전도지사는 사면은 되었으나 복권은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힌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아담으로 인한 원죄를 갖게 됩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단 한분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 나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셨지만, 인간의 방법이 아닌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잉태되셨지요.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태중에 있게 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원죄를 용서 받는 것이 바로 사면(赦免)과도 같은 형식입니다. '용서할 사'에 '면할 면' 자이지요.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지 못한 인간이, 최종적으로 불못에 떨어져서 영원히 고통 받을 형벌에서 벗어 나는것, 곧 그 형벌을 면제 받는 것, 이것이 곧 사면 형식과도 같은 죄사함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 보다 더 놀라운 복(福)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으면, 곧 죄사함을 받게되면 복권이 됩니다. 복권(復權)이라함은 '돌아올 복'에 '권세 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으면 이전에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사람의 권세를 돌려 받게 됩니다. 상실한 지위를 회복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지 않았을 때에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음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마귀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지위를, 그 자격을, 그 권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됨으로, 즉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됨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복권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구주이신 예수님은 인류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돌아 오게 되는 유일한 통로, 즉 길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법률적으로 복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일정한 자격이나 권세를 다시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사전은 그렇게 설명을 하지요.
그래서 사람은 너나 할것 없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첫 사람인 아담이 본래 하나님의 사람이었듯이 아담의 후예인 인류는 모두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와야지요.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그 정체성은 구원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되찾게 됩니다. 마귀가 다시는 빼앗지 못하는 하늘의 권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덧입게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최종적인 권한으로 사면이 되고 복권이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영적인 사면 복권은 절차가 다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죄사함의 결정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피로 그 죄가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가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씻김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믿음을 가졌기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遺傳)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베드로전서1:18,19).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 즉 보혈에 의하여 구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속이라 함은 사전적으로도 그 의미가 이러하지요.
구속(救贖):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함.
대속(代贖): 1.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거나 속죄함. 2.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그 보혈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씻어 구원함.
속죄(贖罪): 1.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 2.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씻어 구원하는 일.
속량(贖良): 1.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하는 일. 2.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 양민이 되게 하던 일.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이 되고 복권이 되면 복역중인 사람은 풀려 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의 남은 형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지요. 사형 언도를 받고 있던 사람이 사면이 되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사면된 사람을 위하여 대신 사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님이 죄사함 받을 사람을 대신해서 그 죄값을 값아야 합니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나 자유인의 신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노예의 몸값을 갚아야 합니다. 이런 형식을 일컬어 속량(贖良)이라고 합니다. 속죄(贖罪)의 뜻과 같지요. 누군가가 그 노예를 위하여 몸값을 지불하는 것이지요. 노예 자신에게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신 갚는다는, 달리 말하면 죄를 대신 하여 벌을 갚는다는 의미로 대속(代贖)의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셔서 그 영혼을 구원 받게 하는 은혜를 구속이라 하고, 그렇게 인류를 대신하여 흘리신 피로 죄를 씻어 주신다하여 대속이라 합니다. 죄값, 즉 죄의 형벌을 갚아 주신다 하여 그 의미를 속죄 또는 속량이라고 부릅니다. 죄값은 사망이며 또한 예수님 재림하셔서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에 들어가게 되는 불못입니다. 그 곳에서 영원히 받게 될 형벌을 뜻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6: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서6:23). 새번역 성경.
예수님은 속량 할 때의 그 돈 대신에 자신의 피로써 인간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온 인류를 위하여 말이지요. 그래서 그 피의 공로로 하나님께 죄인된 사람이 영원한 형벌의 저주에서 풀려 나는 것입니다.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실로 인간에게 엄청난 가치이며 은혜입니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1:7).
예수님의 피는 죄 씻음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왜냐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시지만 인간의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시기 때문이지요. 점도 흠도 전혀 없으신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러시면서 완전한 신성을 갖추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십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1:19).
"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로새서2:9).
예수님의 피는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힘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만 허락하신 것이지요. 그 피는 인간의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순수하고 정결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피를 보배로운 피, 곧 보혈(寶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죄를 씻는다함은 곧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사함은 더이상 죄가 없다고 인정하는, 그래서 의롭다함을 인정 받는 것입니다. 그 인정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인정 받는 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함은 곧 거룩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원죄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이전의 죄가 다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께 죄인된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피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것이지요. 그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성 밖 골고다언덕에서 심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지요. 그리고 대못에 박히신 손과 발, 그리고 가시채를 쓰신 머리와 이마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옆구리에 창이 찔리심으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 내셨지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브리서13:1`2).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로마서5:9).
그러니까,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으면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이며, 그것은 곧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이, 그리고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가 곧 하나님께 죄사함 받는 속죄이며 또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는 것은 일회적이며 이는 영원한 속죄의 효력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9:12).
사람은 살아 있기에 범죄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지요.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은 곧 몸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피가 흐르고 있으므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피는 곧 인간의 죄를 상징 한다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에는 반드시 양이나 소와 같은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 짐승이 죄인된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속죄의 제물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피를 흘려 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조건을 충족 시키기 위한 필수 요건인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9:22).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잉태될 아기에 대하여 예고 했습니다. 잉태되어 태어날 아기의 이름도 알려 주었지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1:2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곧 그 이름이 뜻하는 바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 이렇게 믿는 것이지요. 즉,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이며 이 구원자는 곧 그리스도 구주이신 것입니다. 온 천하 만물을 새롭게 하실 메시아 즉, 구세주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된 사람도 세상의 모든 악에 노출 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 세상의 자랑거리에 대한 욕망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범죄를 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회개를 해야 하지요.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도록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지은 죄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마음에 조명하시지요. 마음의 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에 자신의 죄악이 깨끗이 씻겨짐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 용서를 받은 믿음으로 기뻐 찬양하게 되지요. 그런 찬송가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에 관한 찬송이지요.
(찬송가257).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찬송가258)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찬송가261) 이 세상에 모든 죄를 맑히시는 주의 보혈 성자 예수 그 귀한 피 찬송하고 찬송하세
(찬송가268)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성령께서 나의 죄악을 깨닫게 하셔서 감사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즉시로 회개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나의 죄악이 예수님의 피로써 깨끗게 씻겨짐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순간 순간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죄를 짓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그 자체가 죄라고 하셨는데, 이런 죄를 또 얼마나 자주 짓고 사는지요. 우리 마음에는 두 법이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지요. 거룩한 성령의 법을 따라 가려는 마음, 다른 한 쪽에서는 죄의 법을 따라 가려는 죄성, 이렇게 두 마음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자신은 항상 성령의 법을 따라 가려고 하지만, 어느듯 자신의 의지가 꺽이고 자신의 마음이 죄의 법에 이끌려 가고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7:19-21).
우리가 죄를 의식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하며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의 피에 씻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가 되시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미 회개 하였으며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에 그 죄를 씻음 받았음을 맏고 있노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간편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고 또한 예수님의 보혈에 씻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같은 죄를 거듭해서 짓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 하지요. 그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통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지요.예수님의 신성한 성품에 늘 가까워지도록 뼈를 깎는듯한 영적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 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후서1:4).
예수님의 흘리신 피, 그 보혈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그 피로 인한 구속의 은혜를 늘 찬송하며 기뻐 하시는 당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