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합니다 [ 파괴의 씨앗 GMO ]

작성자시골마을 사람|작성시간16.08.15|조회수87 목록 댓글 0

GMO (유전자조작 식품)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제목 : 파괴의 씨앗 GMO

부제 : 미국 식량제국주의의 역사와 실체



<< 내용 >>

        미국의 정치권과 재계와 과학자들이 과연 순수하게 인류의 행복지수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GMO를 계발하고 확산했을까? 이 책은 결코 아니라고 답한다. 유전자조작식품(생물체)가 계발되고 확산된 것은 미국 정치권의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목적과 재계의 일확천금의 돈을 벌려는 목적과 과학자들의 명예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 전후, 세계 2차 대전 이후 구가하던 미국의 우위가, 새롭게 떠오르는 좀 더 효율적인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의 부상 탓에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이 집권한 1969년, 미국과의 무역흑자가 늘어나면서 외국 중앙은행들이 지폐 대신 금을 요구하고 나서자 미국의 달러는 막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1965년에 최고치를 경신한 미국 기업의 이윤율이 이제 꾸준히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전통적인 국내산업 직종들이 점차 사라지고, 한때 눈부시게 번창하던 철강산업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산업적 우위를 가능하게 해준 대들보가 급속도로 내려 앉았다. 1960년부터 74년까지 미국 경제 곳곳에서 빚이 폭발할 지경으로 불어났다. 1974년 기업의 채무, 가정의 모기지 빚, 소비자들의 빚, 지방정부의 채무는 1960년보다 300% 정도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정부의 빚은 훨씬 더 심각한 수치인 1000%가량 불었다. 모든 전통적인 척도로 볼 때 1970년대 초 미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 있었다.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가 들어서고 사반세기가 흐른 뒤, 국제사회를 주름잡던 왕년의 미국은 이제 근원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그 문제를 부여잡고 허둥대던 미국의 기득권세력과 부유한 가문들은 이윤을 낼 만한 새로운 영역을 발 벗고 찾아나섰다. 이런 이유로 식량, 즉 이제 막 새로운 이름을 얻은 이른바 애그리비지니스(농업관련 산업)가 1960년대에 미국 경제를 주도할 중추적인 영역으로 떠올랐다. 그보다 훨씬 비싼 석유와 함께.


        이 대목에서 저자는

위기에 빠진 미국의 정치권이

20여년 전에 장악한 세계 헤게모니를 지속하기 위해,

재벌이 위기를 기회삼아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머리를 쓴 것이 식량산업과 미래의 GMO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과 재벌의 속성을 알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도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돈만을 벌 수 있다면 윤리와 도덕을 버리고 덤벼든다. 다수가.


        당시 국무장관이자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석유와 함께 식량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부각시켰다. 세계 농업무역의 장악은 세계 석유시장의 석권, 무기 판매와 더불어 전후에 미국 정부가 주력한 핵심전략이었다. 키신저는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또한 "무기로서의 식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1973년, 세계 식량위기가 발생했다. 이 위기는 미국이 세계 식량공급과 식량가격에 미치는 커다란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도와주었다. 미국 정부와 민간 곡물무역회사들은 손을 잡았고, 이 연대가 나중에 GMO혁명의 발판이 되었다.


       미국 기득권세력과 부유한 가문 중에는 록펠러가문이 가장 뛰어났다. 키신저는 록펠러가문이 고용한 사람이었다.

 

        키신저가 작성한 비밀 프로젝트 NSSM200은 인도 나이지리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의 13개 개발도상국은 지구상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들인데, 이들 나라의 인구를 줄여야만, 자원이 많이 남고,  미국이 그들의 남는 그 자원을 안심하고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원을 끌어오기 위해 인구증가를 억제할 수 없거나, 억제하지 않으려는 국가에는 식량원조를 제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미국은 이에 따라 개도국의 인구축소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으며, 그 사업에서 식량통제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록펠러재단은 미국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자원을 독차지하기 위해, 이들 국가들의 인구를 도려내는 일에 주력했다. 여기에 쓰인 학문이 1930년대 히틀러가 빠져 있었던 '우생학' 이다.


        우생학의 핵심 내용은 열등한 인간의 수를 줄임으로써 인간종족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우등한 민족은 번창하고, 열등한 민족은 소멸되거나 우등한 민족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비인간적 학문이다. 


        유전공학(생명공학)은 바로 이 우생학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유전공학(생명공학)은 인간 우생학에서 생물체 우생학으로 진화한 것이며, 우등한 생물체만 번창시키고 열등한 생물체는 소멸시켜도 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GMO, 유전자혁명이라는 개념은 벌써 1930년대 록펠러가문에서 계발한 이 우생학에서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1947년, 넬슨 록펠러는 국제기초경제사라는 새로운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와 곡물무역기업 카킬은 교잡종 옥수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60년대와 70년대 카킬, 콘티넨탈그레인, 번지,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는 특수교잡종을 개발함으로써 성장했다. 이 시기에 벌써 세계 농업은 세계화하는 중이었으며 록펠러재단이 이 세계화 과정을 이끌었다. 미국의 거대 애그리비지니스 기업들은 농화학제품과 교잡종자를 독점함으로써 농업무역에서 세계시장을 틀어쥐는 데 골몰했다.


        1970년대에 미국 분자생물학자들은 나중에 유전공학(생명공학)이라고 불리는 재조합 DNA 연구를 계속 진행해야 옳은가, 아니면 이 지상에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미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예측할 수 없고, 생태적인 사건을 일으킬 위험도 있는 터라, 인류를 위해서 그 같은 연구를 자발적으로 중단해야 옳은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1973년경에는 유전공학(생명공학)의 중요한 기술들이 벌써 개발되어 있었다.

 

        1980년대에 레이건 행정부가 분자생물학의 규제를 풀어주자, 민간기업들은 차차 부상하는 생명공학에 투자하려는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1984년 록펠러재단은 유전자조작 쌀 품종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고, 10년간 5억 4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GMO, 유전자혁명의 씨앗이 조심스럽게 뿌려진 것이다.


        1980년대 말, 유전공학(생명공학)을 훈련받은 분자생물학자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드디어 록펠러의 어마어마한 GMO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여기까지가 오늘날 우리가 GMO식품을 먹고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정치인이나 재벌이나 과학자들의 상실된 양심과 이성을 보게 된다. 이들에게 인류의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오로지 식량을 통해 국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일확천금을 벌려는 목적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이들이 전 세계 인류와 생명체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지 못하게 막는 일은 우리의 사명이자 책임이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권력과 돈과 명예에 있는 정치인들과 재벌과 과학자들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와 생명체는 지구별에서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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