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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표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3.29|조회수65 목록 댓글 0

 

자리표 

 

 

 

 

 

 

 

 

보이지 않는 소리에도 자리가 있다. 자리의 높고 낮음은 악보에도 나타난다. 높은음자리표의 음은 상향이고, 낮은음자리표의 음은 하향이다. 높은음자리표 안에 사는 음들은 우리 눈과 귀에 익숙하다. 평소 노래를 부르면서 보아왔기에 쉽게 읽힌다. 그에 반해 낮은음자리표 안에 사는 음들은 눈에 설다. 면밀히 층수를 헤아려 보아야 알 수 있다. 시작되는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 사는 이치에 비추어 보면 큰 것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음이 크고, 작은 것에 대한 만족도는 낮음 음이 더 크다. 높은음은 화려하게 상승하면서 돋보이기도 하고 우월감을 마음껏 발산하여 주위의 이목을 쉽게 끈다. 이에 비해 낮은음자리표에 사는 음에는 더는 내려갈 데가 없어 날선 감정의 열등의식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다. 이 잠재의식은 밖으로 분출하기도 하고, 더러는 더욱 낮은 곳으로 자신을 추락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서로를 배려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그들 나름의 은유다.

 

산다는 건 많은 변수를 수반한다. 때로는 높은음자리표를 보다 낮은음자리표를 봐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다시 의미를 찾아야 했고, 새로운 길을 가야만 했다. 의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바이올린을 계속하기는 무리라고 했다. 바이올린은 높은음자리표를 연주한다. 현란한 테크닉과 화려함을 표현하기에는 찌를 듯한 높은음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정열을 쏟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쉽게 접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첼로를 시작하게 되었다. 첼로는 저음 악기여서 낮은음자리표를 봐야한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낯설고 혼란스럽다. 손가락으로 찾는 음의 위치부터가 다르다. 활을 쥐는 힘의 조절 또한 그렇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바이올린의 높은음을 낼 때보다 첼로의 낮은음을 낼 때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만큼 오케스트라 안에서의 역할에도 부담이 덜 간다는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첼로는 주선율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첼로는 악기와 가슴이 맞닿는다. 하향하는 삶의 편린들이 겹겹이 굳어져서일까. 바이올린보다는 줄이 굵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라도 하듯 그 줄을 팽팽히 유지하고 있는 줄감개의 장력도 장년의 무게를 거뜬히 견뎌내고 있다. 활을 긋는 순간 가슴속 밑바닥 시간의 앙금을 긁어내는 낮은음에 온몸이 울린다. 나의 몸을 울린 음은 세상을 향해 낮고 길게 퍼져 나간다. 낮다는 건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제 생의 깊이를 더 삭혀 내지 못한 울음들이 고여 있는 곳이다.

 

불현듯 내 기억의 바닥 속에 있던 그가 떠오른다. 다섯 아들 끄트머리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 여동생에게 양보하는 데 익숙한 그였다. 어른이 되어 독립한 후에도 세상은 그를 주저앉혀 낮은음만을 읽도록 강요하였다. 늘 밑으로 향하는 음만을 읽어내던 그였다.

 

건축가의 꿈을 접고 빌딩 숲속 로프에 매달려 반짝이는 도시의 간판을 달았다. 높은 빌딩이 그에게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였을 것이다.

"태풍이 다녀가도 내가 건 것은 절대 날아가지 않아."

절망의 농밀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자신의 꿈을 함께 걸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 일이라면 물먹은 솜 같은 몸일지라도 곰삭혔을 것이다. 불편한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혼자 외로이 불 꺼진 네온처럼 지난밤 데워진 감정을 곰삭혔을 것이다. 그 탓일까. 몸속에서는 암세포들이 자라고 있었다. 말기가 되어서 주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두 해를 버텼다. 그런 동안에도 쓰러져가는 몸을 곧추세우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루치의 노동이 삶의 축복이고 가족의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해 겨울, 그는 나를 찾아왔다. 그땐 이미 곡기를 끊고 있었다. 일주일간 마련해 둔 숙소에서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날 '부탁할게' 라며 통장을 내밀었다. 그것의 의미를 짐작한다. 그 깊은 침묵이 내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뭐라 해야 할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진부한 말밖에 언어의 한계성을 넘어설 수 없는 가난함이 나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이 시대의 아버지라는 숙명을 짊어진 사람.

 

그가 떠나고 다음날 오전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벨이 울린 후에야 그가 받았다. 뭐든 좀 먹었느냐는 물음에,

"그래 먹었어."

라고 대답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어제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그 음성엔 한없는 평온함이 있었고 따뜻함까지 풍겨 나왔다. 순간 한시름을 내려놓았다. 그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두어 시간이나 되었을까. 전화가 왔다.

"고모, 아빠가···."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수록 어린 아들에게 닥쳐올 세상의 칼바람이 더욱 거칠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 한기를 알기에 삶의 차단기를 스스로 내렸다. 목숨마저 저당한 채 써놓은 낮은 이의 주관식 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의 바닥 속에 몸을 누이지 않는 한 알지 못할 것이다. 삶이 내게 던져준 또 하나의 물음표 같은 것일 뿐이다.

 

장례식엔 가족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줄을 이었다. 수많은 친구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낮은 자의 아픔을 보듬는 이는 가진 자가 아니고 그들의 아픔을 아는 이들이다. 그가 베푼 많은 사랑을 보고서야 알았다.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실패한 삶일지도 모른다. 난 그가 아름답게 살다 갔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가 묵었던 방에 그의 아들과 친구들이 다녀간다.

 

세상의 자리표는 우리의 겉모습이다. 고음으로 소리치는 자 누군가의 가슴을 찌를 때, 진정성 있는 낮은 소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삶의 깊이를 더한다. 모나게 혹은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리로 존재한다. 그 소중함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그들과 함께 내는 소리는 심장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따로 또 같이 오선지 안에서 공존하여야 한다.

 

창밖은 흐린 날씨로 무채색이다. 악보를 펴고 첼로를 켠다. 낮은 기압으로 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멀리 퍼진다. 간간이 그의 얼굴이 악보와 오버랩 된다. 어느새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나의 소리는 그에게로 가고 있다.

 

 

 

- 우광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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