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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홍빛 묵시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4.08|조회수82 목록 댓글 0

진다홍빛 묵시 

 

 

 

 

 

 

 

 

어찌된 일인지 나는 요즈음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에게도 안부 한 차례 묻는 법 없이 놀랍게도 한 달 두 달을 잘도 넘긴다. 서로 간에 끈끈하게 정분을 나누며 살아가야할 사이건만 어쩌자고 평상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말연시마저도 송구영신하는 인사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살아가는지 실로 안타까운 바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중병에 걸렸다거나 아예 이승을 등졌다는 소식이라도 접하게 될 양이면 그제는 왜 또 그리 허둥대지는지 모를 일이다. 부랴부랴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단절하고 황급하게 달려가 주는 모양새가 마치 그 누군가의 불행이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돼서 내심 자괴가 깊어진다.

 

살아있을 때에, 더 좀 건강했을 때에 멀고 가까운 시공을 초월하여 가슴 안창에 쓸어 담아야 할 정분들임을 알면서도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아서인지 번번이 뒤늦은 충격을 겪으며 산다. 많은 이웃들이 경사보다는 애사에 더욱 범연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생전에 못다 한 정분에 대헌 속죄의 의미일 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해 겨울에 내가 마지막 손잡아 준 영면의 길손 한 분이 불현듯 생각난다. 눈이 몹시도 쌓여 있는 날의 오후였다. 처마 끝에선 고드름이 다냥한 햇살에 겨워 무너지며 수정 방울이 되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시공 속으로 뜻밖의 엽신 한 장이 대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지녀(知女)를 한 번 보시겠답니다."

라는, 지극히 간결한 내용이었으나 나로서는 당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발신자와 관련하여 누구의 아무개라 불릴 만큼의 공식적인 사이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잠시였을 뿐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부름에는 아무런 명분 없이도 그냥만 달려가 주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도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옥죄였다. 세상살이를 재는 척도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임종의 순간인 만큼 천하 없는 일도 다 구할 수 있으려니와 그 구함에 대한 응답만이 산 사람의 도리일 거라는 자각이었다.

 

어느 새 대문을 나선 나는 이십 리 밖의 한촌 길을 정신없이 달려갔다. 어두운 방안에 누워서 나를 향해 뻗쳐오는 그 분의 손길이 간단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주저 없이 그의 바삭한 손을 양손으로 덥석 쥐어드렸다. 벌써부터 이승의 온갖 사슬에서 풀려난 듯이 오로지 고적만을 담고 있는 그 분의 동공을 응시하며 나는 내 가슴에다 보이지 않는 성호를 무수히 그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지구가 몇 바퀴의 공전을 거듭하고 나서였다. 그때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인, 지금의 그 분의 며느리가 되어버렸으니 진정 모호하고도 난해한 것이 사람의 운명이지 싶다.

 

예로부터 며느리 사랑하긴 시아버지라는 말이 전하듯 "그 어른이 살아만 계신다면 너를 끔찍이 사랑하셨으리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두고두고 가슴에 회한으로 흐른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쉬움도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가슴을 에는 바는 유명을 달리한 여러 해 동안 남편과 내가 서둘렀어야 했던 산역 하나를 못하고 지내 온 일이다. 남의 땅에다 아버지의 유택을 지어놓고 명절 때조차 내놓고 성묘를 못한 불효 때문에 기가 죽어지낸 동안은 하늘 우러르기조차 부끄럽고 민망했다.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오늘은 그 분의 유택을 펴 놓고 지어드리는 날이다. 눈물이 가슴 밑바닥에 흥건하게 고인다. 그 분이 생전에 감당했던 가난이야 어찌할 수 없었다 해도 그 분의 사후에까지 끈덕지게 붙어 다녔던 지난한 가난이 측은지심으로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말 가까스로 몇 백 평의 산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무해지를 택하여 새벽부터 이장을 서두른 것이다.

 

오후가 되자 소나기라도 퍼부을 듯 하늘이 잔뜩 찌푸린다. 유골을 다루는 시삼촌의 손놀림은 가히 유능한 조립사를 연상시켰다. 무덤 안을 굽어보고 있는 대소가 형제들이 긴장된 나머지 숨소리마저 삼가며 둘러 서 있다. 죽음과 관련된 행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을 무리 짓게 하고 또한 숙연하게 한 묶음을 만들어 주는 성싶었다.

 

어느덧 무덤 속 밑바닥에 육척장신의 유해가 반듯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그 위에 다시 이승의 온갖 빛을 영원히 차단할 석개가 육중한 몸매로 가로 놓인다. 다시, 묵향이 선연한 진다홍빛 명정이 살포시 덧씌워진다. 곧바로 장남, 차남, 삼남의 순으로 명정 위에 한 삽씩 흙을 뿌려 덮는다. 나도 한 삽쯤의 흙일망정 덮어드릴 걸 싶었다. 문득 단 한 차례도 시중들어 드리지 못한 이부자리(혼정신성昏定晨省)며 진짓상 생각이 나서다. 저 옛날, 영면의 길목에서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이 자리가 얼마나 낯설고 계면쩍으랴 싶기도 했다.

 

이윽고 덩실하게 솟아오른 봉분 위에 파란 잔디 옷이 정갈하게 입혀지고, 때마침 목을 늘이고나 있었던 듯 소나기 한 주렴이 시원스레 지나간다. 고인의 입성인 잔디가 귀엽게 한껏 나풀거리지 않는가. 생전에 위압적인 구석이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으셨다는 분이다. 말술은 드셨어도 주정이라면 '타향살이 몇 해던가'를 동구 밖에서부터 흐드러지게 깔아 놓는 게 고작으로 천성적 호인이고 낭만적인 분이셨노라고 무덤가에 둘러 선 자손들의 추억담이 꽃을 피워 쌓는다. 실상 사람은 살아생전보다 사후에 더 큰 교훈을 주는 게 상정인 모양이다. 아버님의 유택을 새로 지으며 가깝고 먼 대소간 형제들의 안부와 근황을 알게 된 것도 덤이라면 무척 큰 소득이지 싶다.

 

노상 입버릇처럼 '앞이 툭 트인 곳'을 원하셨다 했다. 이제 그 분의 원을 풀어드린 셈일까? 멀리로는 변산반도의 산 그리매가 병풍인 양 아늑하고 지척으로는 김제평야가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유택 둘레엔 자잘한 진달래꽃나무들과 곧게 자란 시누대의 파란 잎들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운율을 자아낸다. 마치 짜임새 고운 화원 같다. 이제 온갖 착하고 귀여운 것들만이 이 산기슭을 싸고돌며 이 무덤을 섬기리라. 온갖 꽃들과 새들, 바람과 비, 해와 별들이 무시로 진혼제도 벌여 주리라.

 

못다 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 남기지 말고 어느 때 누가 먼저 이 세상 떠난다 해도 아차! 싶은 뉘우침 없이 살아야겠다. 얼핏 마주친 남편의 젖은 눈길이 더없이 정겨운 파문으로 내 가슴 안을 수놓았다.

 

 

 

- 공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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