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당에 솥 하나 걸어두다
노년기는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하여 정착하는 꿈을 꾼다. 그런 날이 온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마당 한 쪽에 임시로 부뚜막을 만들고 커다란 솥 하나를 걸어두는 것이다. 그 솥에는 언제든 그 누가 찾아와도 충분히 먹일 죽이나 국이 끓고 있고 가마솥 뚜껑에는 부침질을 하는 것이다.
아파트나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도시 살림은 한뎃솥을 걸어둘 장소도 마땅치 않다. 마당을 보며 솥을 걸어둘 곳이 없을까 궁리를 하지만 그 솥이 왜 필요한지 골목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불이 이웃으로 번질까 위험하다고 신고하는 이웃을 배려해야 하기에 솥단지의 꿈은 한없이 위축되고 만다.
어린 시절 집 마당 한쪽에 늘 걸려있던 큰솥이 떠오른다. 오가는 사람들은 한뎃솥이라 불렀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바깥에 있어 한뎃솥이었다. 부뚜막은 없지만 임시로 잘라 만든 양철에 큰 솥을 걸어두었는데 물론 굴뚝도 없어 불길은 늘 혀를 날름거리고 연기는 앞뒤로 드나들며 부산한 풍경을 만들었다.
아가리가 넓고 제법 큰 솥은 어머니의 일터이기도 했다. 시장에 넘기고 남은 배춧잎이나 무청 등은 솥에서 끓는 물에 데쳐져 식량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을 잔뜩 붓고 무엇이건 삶고 끓이는데 요긴한 이 솥은 때론 잔치를 벌일 때 수 십 명분의 국을 끓이는 데도 쓰였다. 비린내 나도 개의치 않는 붕어찜에 여름날은 큰 닭 대 여섯 마리를 삶느라 마당은 아버지의 불길 다스리는 소리와 백숙을 기다리는 아이들 소리로 들썩였다. 때로는 이불 홑청 돌 삶고 겨울이면 팥죽을 쑤거나 돼지 뼈다귀에 우거지를 넣고 끓이느라 솥은 수시로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아침 일찍 아이들을 위해 물을 덥히는데 한뎃 솥이 한몫을 했다.
늘 불을 때느라 겉은 연기에 그을리고 부엌에서 할 수 없는 불과 물의 분량 때문에 큰 솥을 걸어둘 수 있는 곳으로 마당은 훌륭했다. 우리는 솥 주변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마당 풍경이 좋아 굴러다니는 나무판자와 종이 등 땔감을 솥주변에 주워다 모아두곤 했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 벌써 어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솥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당에 들어섰을 때 한뎃 솥이 썰렁하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솥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솥에 불을 때면서 무언가를 끓이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드나들며 부산하게 움직이면 우리들은 마음이 뿌듯하고 어머니가 부르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고 땔감을 나르고 불을 때는 일, 무엇이든 이웃과 가족과 솥 앞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름답게 남아있다.
솥에는 남다른 한국인만의 정이 담겨있다. 가족을 위해 ,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해 시간을 붓고 마음을 끓여 퍼내는 솥에는 쓸수록 윤이 나는 가마솥처럼 퍼줄수록 정이 솟는 특별함이 들어있다.
한솥밥을 먹고 살던 가족간의 우애나 이웃과의 끈끈한 정이 그리워 솥 앞에 뭉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한솥밥 먹기 모임’은 어떨까. 그날만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아궁이 앞에 모여 불을 때며 솥밥을 해먹고 싶어진다.
대가족에 드나드는 동네 어른들과 이웃들이 많아서인지 외가의 솥들은 크고 여러 종류가 있었다. 겉이 검은빛을 띠는 가마솥이 세 개 정도 걸려있고 구들장으로 연결되지 않은 헛간에도 헛솥이 걸려있고 소여물을 끓이는 솥에 대기 중인 작은 가마솥까지….외숙모가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하기 시작하면 당연하다는 듯 이웃들이 와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갔으니 솥 하나로 동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한 것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쓰지 않는 찜통 그릇이 방치된 지 이십 년이 넘어가고 해가 바뀔 때마다 이 솥 저 솥 정리하여버리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길손도 오가지 않는 아파트에서 겨우 두 식구 밥만 안칠 수 있는 옹달솥에 두 주먹도 되지 않는 밥이나 휘젓는 초라한 내 마음의 솥을 본다.
‘광속이 풍성하면 감옥이 빈다’는 말처럼 큰 솥 하나 걸어 오가는 길손들에게 밥 지어주던 아름다운 풍속이 되살아나기를 빈다.
산 아래 짓는 황토집이야 방 두어 칸이면 족하지만 솥 하나 걸 수 있는 부뚜막 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 솥을 걸고 수십 명 분의 국물을 내어 길손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국수 한 그릇씩 말아 대접하는 한뎃솥으로의 탄생을 꿈꾼다.
- 권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