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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이야기

작성자안정환|작성시간24.05.18|조회수179 목록 댓글 1

 

☆부부 이야기☆

(신춘문예 최우수작)

 

첫사랑이 그리운 아침이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주방에서덜그럭거리는소리에저절로 눈이 떠졌다. 다소 이른 시간인데도 아내는벌써일어나 아침밥을짓고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오늘따라 밥 짓는 소리가유난히크게 들렸다. 애들 둘이 결혼을 해 다 나가 고 우리부부만 살다 보니 나는 안방에서 자고 아내는 거실에서 잔다.각자의곳에서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를 누워서 보다가 따로따로 잠들고 깨는시간도다르다

 

우리 부부는 밥을 먹는데도 식탁을 마다하고거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텔레비전을 보면 서 먹는다. 아내도 나도 말 없이 밥만 먹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늘그막이니 아내와 별로 할 말도 없기에 방송 을 봐가면서 밥을 먹으니서먹하지 않아 좋다. 

 

마침 방송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늘 푸른인생 ’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키가 작은 유명한 사회자가 나와 시골에 사는 칠 십 된 노인 부부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 또 결혼 할 거예요?” 

 

남편이잠깐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야지. 다른 여자라고 별수 있겠어. 그래도 살아본 여자가 좋지.” 

 

사회자가 반대로 아내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남편과다시 결혼할거예요?” 

그러자 아내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을 내저으며 경악을 한다. 절대로 지금의 남편과는 결혼을 안 한단다. 

 

사회자가 왜 그러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어디가서어떤놈을 만나도지금의남편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청객 모두가 배꼽을쥐고웃었다

 

나는밥을먹는아내 를 슬쩍 곁눈질로 보다가이내물었다

“당신은 어때?” 

“나도 저 할머니와 똑 같아.” 

 

아내는주저하지도 않고단숨에대답했다. 

 

혹시나 했던 나는 아내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먹던 수저를 놓으며언성을높였다. 

“내가 살아가며 뭘 그리잘못을했다고? 저 할머니처럼 다시 태어나면 나를 개비한다고?바꿔봤자별수없어.고르고 고르다 뉘 고르고 말테니까.”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들어가자 아내가 뒤에 대고 구시렁거렸다. 

“그깟 농담도 못 받아들이고 꼭 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고....! "

 

농담이라는 말이 살짝 들렸으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진심이 뭔지를 생각하다 출근준비를마치고 나오면서 힐끗 아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예전과 별 다름이없이우산을 챙겨주었다. 

 

오늘이아내생일이라는 걸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놈의 텔레비전 프로 그램이 다 망쳐 놓은 것이다.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하려다 아까한말이괘씸해 그냥 나왔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애들을 돌려보내고책상에 혼자 앉아 있자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몸이선득거렸다. 이제 올해만 지나면 평생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다. 서글픈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활동 사진마냥 펼쳐 졌다. 

 

진한 커피향이 코끝에와 앉으니 마음까지차분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알 틈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첫사랑과 평생을 살고있기때문이다

 

아내와나는똑같이 교육도시라불리는 공주 금강가에서 살았으나 서로의 동네는 좀 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만날 당시 나는 고등학교3학년이었고아내는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처음부터 서로 아는사이는아니었다. 

 

72년 6월 6일 현충일 날이었다. 공휴일이기에 집에서 예비고사 공부를하다가심난한마음에금강가를 걷고 있었다. 

 

그 때만해도 공주의 금강은 이름그대로비단을 펼쳐놓은 듯 물이 맑고아름다운강이었다. 그 해에는 날이 가물었기에 물이 강 전체로 퍼져흐르는것이아니라강가한쪽으로 몰려흐르고있었다.그러니강가운데는 넓게 모래톱이 생겼고 강가로 흐르는 물은 깊어 사람이 건너 모래톱에 갈 수는 없었다. 

 

‘공부하기지겨운데 저 백사장에 발자국이라도 찍으며걸어봤으면 좋겠다.’ 

 

예나 지금이나 고 3은 공부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아름다운 마음을 먹으며 강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구 없어요? 사람좀살려주세요.” 

강가바위에서빨래 를하던아주머니가 목이터져라외치고 있었다. 내가 언덕 밑으로 달려 내려 가보니물속에 사람 하나가 빠져 몇 번인가를 솟구 치더니 다시 물속 으로가라앉았다. 여자의 산발된 머리가맑은물속에서 훤히 보였다. 

 

순간두려움과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들어갔다가는 둘이 같이 죽는다.’ 

 

금강이라는 물가에 살았기에 어려서부터엄마가 주의를 주려고 늘 하던 말이었다. 그렇다고 수영을 할 줄 아는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망설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옆에서 애타는엄마의절규에 못 이겨 나는 엉겁결에 물 속으 로뛰어들었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물에 빠진 사람은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나를붙잡고늘어지는 여자애의 힘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여자애를 살리는것이문제가 아니라내가살아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여자애를떼어내야 했는데 도저 히떼어낼수가없었다.하는수없이그녀를끌고헤엄쳐간 곳이 바로 강 가운 데에드러난모래톱 이었다. 

 

뛰어들어간쪽으로는 물살이 너무 세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다. 모래톱으로 나간 나는너무지쳤기에 한참을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반대편에서 지르는소리에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옆을보니여자애가누워있었다.하얀블라우스는물에젖어속살이 훤히 비쳤으나여자애는 정신을잃고있었다

 

“학생, 가슴을 누르고 안 되면 입을맞춰인공호흡이라도 좀 시켜 봐.” 

 

건너편에서 외치는 어른들의 질책에 못 이겨 여자애의 봉긋한 가슴에손을대보니 왠지내가슴이먼저 뛰었다. 가슴을 몇 번 누르다 이번엔 입을 맞추고 숨을 몰아넣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묘한기분이들었지,여러 번 가슴을 누르고입을맞추다보니처음의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사람을살려야겠다는생각만들었다. 한참만에 여자애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창피한지본능적으로풀어진블라우스를여미며수줍어했다. 

 

나는그녀를데리고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 가운 데 백사장을 걸어 아래쪽으로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아래쪽은 강물이 넓게흘러정강이에 닿을정도였으니까 쉽게건널수있었다

 

조금 전 생각대로 하얀 백사장에 둘만의 발자국이 찍혔다.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늘에는 하얀 백로 한 쌍이 날며 내릴 곳을 찾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여자애는 말없이 내 뒤를 따랐다. 

 

“너 몇 학년이니?”

“중 3이에요.”

 

고 3이었던 내가 그날 중 3이었던 그 애와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강 한가운데 드러난 모래톱에 둘만의 발자국을 찍으며 힐끔힐끔 그 애를 보니 조금 전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때와는 딴판으로 예뻤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학교에 갈 때면 누군가나를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는 그 때 금강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예비고사날이잖아요.시험 잘 보세요.” 

 

그녀는 찹쌀떡을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그녀의 응원덕분이었는지 예비고사에합격해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는 고 1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고등학교와 우리 대학은 같은 동네에 있었으니 우리는오고가면서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중3일때보다 많이 성숙해 있었고 더 예뻐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다가다 한번씩만나다보니 언젠가부터그녀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잡고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그래도 대학생이 어찌 고등학생을…….’ 

 

대학생이고등학생과 어울린다는 건 어쩐지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망설이다가 시간만 지나고 말았다. 나는그렇게소망과 현실의 괴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충남의 시골로 발령이 나 3년의 세월이 흘렀다. 

 

3월의 첫 출근날 신임교사의 인사 가 있었다. 

 

이제 겨우 교사 3년차인 나는 신규 발령을 받아 온 여선생님의 예쁜모습이마음에 들었다. 

 

공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오후에 그녀가우리교실을 찾았다. “선생님 댁이공주시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모르시겠어요? 미선인데요.” 

 

나는 처음 본 여자이고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그녀는나를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자신을모른다고하자여간실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금강에서 빨래를 하다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준 남학생이있었다고 했다. 

 

소녀는 자신을 살려준그남학생이 그리믿음직스러울 수가없었다고했다. 그 후그녀는 그 남학생을한번이라도보고싶어 학교 가는길목에서 기다린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 

 

어쩌다그남학생을 멀리서라도 보는 날이면마치자신의 몸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했다 

 

지금이야 10살이 넘어도 부부가 되지만 당시 중 3과 고 3의간격은 너무나 컸다고 했다.그러니자신은 감히 그 남학생 앞에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해가 지나자 차이는 더 벌어져 남학생은공주교육대학의 대학생이 되었고 자신은 겨우 고 1이라서 그냥 애만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볼 뿐이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어도 자신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단다. 오직 자신을 살려준 그 남학생생각뿐이었단다. 

 

그렇게 혼자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며 남학생을 지켜본 지 얼마 후 남학생은훌쩍공주를 떠났다고 했다. 

 

2년제였던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받아 서산의 어느 초등학교에선생님으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남학생을만나려면자신도공주교대에입학을해야했다고생각했단다. 그래서죽어라고 공부를 했단다. 

 

결과 공주교대에 입학했고 주위의 친구들이미팅이다,연애다희희낙락해도자신의마음은 오로지 한 곳에 꽂혀 있었다고 했다. 

 

비록 짝사랑을 하는 처지였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불결하다고생각한 것이바로자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교육대학을 졸업하고초임으로 발령을받아부임한 곳이바로여기이고 그곳에는첫사랑인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그 때 중 3이었던학생이 바로 선생님?” 

 

풋풋한 중학교 때 얼굴과 성인이 되어 화장품으로 덧칠해 놓은 얼굴은딴판이었으니알아볼수없었다

 

예전에 이름을 묻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이름도 몰랐었다. 또 대학 1학년과 고 1의 간격이 자랄 때는 무척 컸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3년의간격은 그깟 것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고 물에 들어가면 같이 죽는다.’ 

엄마 말씀 또한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물에 빠져 죽기살기로매달리던 그녀에 코가 꿰어 40여 년째 같이죽고(?)있으니 어른들 말씀 새겨들어야하겠다

 

추억의 실타래를 다 걷고 나자 결혼 당시 아름답던 미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수화기를 들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잖아. 어디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둘이저녁이나 먹자고!” 

 

식당에 나타난 아내의 블라우스 한쪽이 다 젖어 속살이 비쳤다. 

 

“예전 물에 빠졌을 때처럼섹시한데?” 

 

그러자아내가눈을 하얗게 흘기며 환갑이넘어주책을 떤다고핀잔을했다

“애들이 올 때마다 우산을다가져가서 우산살이 2개나 부러진 것을 쓰고 와서 그래요.”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먹고밖으로 나와우산을찾았다. “누가 내 우산을 바꿔갔네.” 

 

아내가식당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자, 손님도 다 가고 없는데 그냥 남은 것을 쓰고 가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뛰면서 좋아했다. 

“앗싸. 새우산으로 바꾸겠구나.” 

 

식당을 나온 아내가 우산을 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바꿔온 우산은 살이 거의 다부러져한쪽으로 완전히 처지는 것 이었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아내는 화를 내며 우산을 땅바닥에내팽개쳤다. 

“조금 전 내우산은 그래도살이2개밖에안부러졌는데...”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더 좋은 우산으로바꿨다고 입이 찢어지더니, 그것 봐! 바꾸면 더 좋을줄알았지? 결국에는 뉘를 고르잖아.그러니까 첫사랑을 믿고 내세에도 그냥 나랑 결혼해. 텔레비전에출연했던할아버지말처럼. 그래도 살아본 놈이 더 낫지 않을까?” 

 

나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머쓱해진 아내는 하는 수 없이내우산속으로 기어 들어오더니 나를 꽉 잡았다. 

 

예전 물속에서 나를놓으면죽는다는 듯 붙잡고 매달리듯이...

나는 소녀를 안고 백사장으로기어오르듯 아내를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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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걸인 | 작성시간 24.05.18 가슴에 와닿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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