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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過速)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5.19|조회수68 목록 댓글 0

과속(過速) 

 

 

 

 

 

 

 

 

 

벌써 몇 주가 지났다. 하루는 토론토에서 발간되는 일간 신문에 다음과 같은 줄거리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심장 전문의 K 씨는 병원 환자의 심장 수술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차를 급히 몰다가 과속으로 교통경찰관으로부터 300불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환자 수술 시간에 맞춰가려고 과속을 한 의사에게 딱지를 뗀 경찰관이 너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닐까? 과속을 한 의사가 잘못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경찰관, 의사 둘 다 잘못했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구구하다.

 

경찰의 말로는 수술실에 빨리 가야 한다며 과속을 하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고는 볼 수 있으나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 철학 교수인 M 씨는 경찰관이 운전자의 과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참작해서 어떤 경우는 벌금이 있고, 어떤 경우는 벌금이 없다 보면 이 사회는 점점 무질서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다는 것, 의사 K 씨가 병원에 급한 수술이 있다고 했을 때 경찰관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며, 원리 원칙에 기반을 둔 공리적 윤리 행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느 대학교의 실천 윤리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D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즉 그는 득과 실의 개념으로 보면 의사 K 씨의 과속 같은 사소한 실보다는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를 치료하는 득이 훨씬 더 크다며 벌금 딱지를 뗀 경찰관을 나무란다.

 

자신이 의사요, 의과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H 교수는 K 씨의 경우 경찰관이 1초라도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일이 교통 법규보다는 더 높다는 것이 H 교수의 주장이다. 경찰관이 의사 K 씨를 병원까지 호위해 주고 과속에 대한 벌금 고지서는 나중에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한 의사 C 씨도 있다.

 

꼭 같은 상황을 두고 동양과 서양 사람들의 대처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얼마 전에 쓴 글이 생각난다. 요지는 이렇다. 모든 자연 현상이나 인간 세상의 일들은 개별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서양식 사고방식은 원리 원칙에 입각한 보편적 윤리를 고집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의사 K 씨가 급한 수술이 있던 없건 과속은 과속이니 벌금이 마땅하다는 공리적 윤리를 대변한 M 교수는 경찰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편, 자연 현상이든 인간 세상일이든 삼라만상은 서로 얽혀져 조화를 이루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관계 모델로 보는 동양식 사고의 틀로 보면 그때그때 개인이 처한 특수 사정을 참작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성숙한 생각이다. 그러니 병원에서 수술을 고대하는 환자를 위해 과속을 해야 할 급박한 사정임을 고려하면 K 씨에게 벌금 부과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 동양 문화권에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은 주로 이 결정을 좋아하지 싶다.

 

내가 캐나다 W 대학에 있을 때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자란 본토박이고, 말솜씨 좋고, 독실한 신자로 이름난 장로, 신사 중의 신사로 존경받는 원로교수 S 씨가 한담 끝에 우연히 털어놓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가 한 번은 부인과 함께 자동차로 T 시에서 L 시로 가다가 교통경찰에 과속으로 걸렸다.

 

임기응변으로 “아내가 지금 심장마비가 온 것 같다"라고 거짓말로 둘러댔더니 경찰관은 S 교수를 병원으로 안내하겠다며 앞장서서 호위 사이렌을 울리며 멀쩡한 사람을 호위해서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혼이 났었다는 이야기. S 교수처럼 점잖고 신앙심 깊은 신사가 이런 거짓말 변명을 늘어놓는데야 어찌 나 같은 불초 소생이 둘러대는 ‘과속의 변명’을 아무리 융통성 많은 경찰관이라 한들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그때 개인 사정을 고려한다는 것도 문제투성이 지 싶다.

 

그런데 동양식 생각이니 서양식 생각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즉 ‘진리의 길’이니 ‘정도(正道)’니 ‘당연한 도’니 하는 것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요,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보면 이것이 진리의 길, 정도, 장연한 도리요, 저쪽에서 보면 저것이 진리의 길, 정도, 당연한 도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 풍진세상을 내 마음뿐만 아니라 남의 마음도 다치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

 

 

 

- 이동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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