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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문상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5.24|조회수60 목록 댓글 0

 

봄, 문상 

 

 

 

 

 

 

 

 

 

오래된 사진 속엔 오래된 과거가 산다. 이제는 옛사람이 된 피붙이들과 그들이 꼭 한 번은 지나쳤을 길과 그 길에 둥지를 튼 나무와 풀과 꽃, 아직도 우짖고 있을 것 같은 한 마리 새가 산다.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 한 오빠들의 어린 시절이 살고 햇순 같은 두 살 언니가 산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는 갈무리해 둔 씨앗처럼 삼신할미의 점지를 기다리는 중일까. 사진 속 사람들에게 나와 두 동생이 아직은 오지 않은 미래이듯, 우리에게 그들은 이미 흘러간 시간이다. 오십 년이란 시차를 두고 이렇듯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목련꽃이 눈물처럼 지는 봄, 부고를 접했다. 둘째 당숙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그는 열 살이 채 못 되어 고향을 등졌다. 남대문시장에서 지게질로 뼈가 굵은 뒤 꽤 재산을 모았다는 그다. 그런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칭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서 ‘부자’를 느껴본 적이 없다.

 

과한 생의 멍에와 혼자만의 여윈잠이 열 살 아이를 일찌감치 애늙은이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까맣고 주름이 깊은 얼굴에서 나는 그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과 외로움을 만나곤 했다. 결코 크지 않은 표정과 다문 날이 많았던 입술, 그런 그가 웃는다. 국화처럼 환하게, 영정사진 속에서.

 

친지들이 속속 도착했다. 큰 당숙 내외와 오빠들과 연배가 엇비슷한 셋째 당숙들, 고모와 당고모, 고모할머니의 아들과 육촌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딸과 손자들. 핏줄에서 유전한 DNA엔 시간을 거스르는 힘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초면임에도 어디선가 꼭 한 번쯤 만난 것 같은 기시감. 데면데면한 수인사가 오간 뒤 분위기는 금세 유연해진다. 느릿하면서도 차진, 고향 사투리가 고명 역할을 톡톡히 했겠지만 끈끈한 느낌의 출처는 바로 한 장의 사진이었다.

 

1967년에 찍었다는, 사진 속 풍경은 아직 겨울이다. 날이 추워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잔치의 주인공인 당숙 내외도 얼어붙었다. 그러나 사진을 들여다보는, 주름진 얼굴마다 자꾸 웃음이 벙근다. 사진 속 누군가가 채 못 살고 간 봄을 무려 쉰 번이나 누린 당신들이다. 그들에겐들 겨울 같은 한때가 없었겠냐만……. 혹한 끝에 오는 봄은 나날이 생의 꽃밭 아니겠는가. 진자리 마른자리를 두루 돌아온 그들에게 죽음이란 어쩌면 생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신랑, 신부를 겹꽃잎처럼 에워싸고 있다. 엷게 푼 먹물 같은 흑백사진 속에서. 잿빛 두루마기에 동정을 맵시 있게 단 할아버지와 누비옷의 할머니, 두 분 사이에서 빠끔, 고개를 내민 엄마, 쌍둥이 단추가 세 줄 달린 잠바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큰오빠, 한 뼘쯤 접은 바지(필시 형에게 물려 입었을)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니 먼산바라기 중인 작은오빠. 한쪽 귀퉁이만 떼 내고 보니 영락없는 우리 집만의 가족사진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저 풍경 너머에서 ‘아주 찐~하게’ 한잔 하고 계실 거란 내 말에 모두 자지러지는데…. 언니가 돌연 둘째손가락을 입술에 곧추세운다. 돌아보니 문상객들이, 영전을 지키던 육촌들이, 영정 속 고인도 우리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오촌이라지만, 유난히 언틀먼틀한 생애가 애통하지만, ‘망극’까지는 아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이른 죽음을 몇 차례나 겪은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평균 나이 지명임에도 아직, 우리 세 자매에게 죽음은 낯설다. “이 사람들아, 초상집은 원래 잔칫집처럼 떠들썩해야 하는 거야.″ 그새 여동생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큰오빠가 하는 말이다. “그럼, 그래야 돌아가신 양반도 편하게 먼 길 가시는 겨.” 불과 얼마 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 나온 막내 고모까지 가세한다. 그러고 보니 조문객들 또한 나름의 방법으로 고인을 추모 중이다.

 

닮거나 닮지 않거나, 낯익거나 혹은 낯설거나…. 학연이든 지연이든, 그 외의 것이든 한때 고인과 연이 닿았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밥을 먹고, 누군가는 통화 중이고, 누군가는 술잔을 기울이기에 바쁘다. 눈도, 입술도 방울토마토처럼 둥근 사람들은 당숙모네 피붙이겠고, 희푸른 손목 위 큼지막한 시계의 주인들은 고인 생애 가장 빛나는 때 함께한 지인일 게다. 연방 술잔을 주고받는 중년들은 육촌동생의 친구일 테고…. 톤도, 표정도 구술 방식도 다르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고인이 있다. 생전 건네지 못한 말들은 결국 사후에야 꽃씨를 뿌리나 보다. 그들의 회억 안에서 고인은 아직, 봄이다.

 

그쯤 일어서려는 우리를 숙모가 기어이 붙잡아 앉힌다. 어찌 밥 한술, 국 한 모금을 뜨지 않고 가느냐며. 엉거주춤 둘러앉아 당숙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려주신 밥상을 받는다. 숙환 중임을 알면서도 찾아뵙지 못했다. 내가 겪은 죽음마다 늘 그가 있었는데. 후회란 왜 매번 늦어서야 오는가. 육개장에 뜬 기름처럼 한 생이 식었는데, 모두 말없이 밥을 먹는다. 식욕과는 무관한 이 한 그릇의 슬픈 본능, 모든 생의 마지막엔 이렇듯 잘 차려진 밥상이 있었다.

 

마중하고 배웅하는 사람들로 주차장이 왜자하다. 그렇지만 누구도 ‘전화를 드리겠다거나, 언제 한번 찾아뵙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또 이렇게 마주할 날이 꼭 한 번 있으리란 것을 알기에.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난 사람들은 딱 두 부류였다. 사진 속에서 걸어 나왔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렇다 하여 어찌 사진 속 사람들을 그저 흘러간 시간이라고만 치부하겠는가. 지금쯤 그들은 먼 은하 강,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 못다 한 삶을 꾸려 갈지도 모를 일이니. 어쩌면 그곳은 내가 오래전 떠나온 바로 그곳일 테니…….

 

내 생의 마지막도 저러하면 좋겠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이면 좋겠다. 밥이든 술이든 양껏 먹고 마시며 한 사흘, 축제 같은 날이면 좋겠다.

 

한 장 손수건 같은 하루가 또 이울고 있다. 저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돌아갈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 조현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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