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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舞)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6.01|조회수67 목록 댓글 0

 

무(舞) 

 

 

 

 

 

 

 

 

 

춤꾼도 아닌데 풍악이 울리면 내 몸은 저절로 움찔거린다. 흥겨운 리듬일 때는 경쾌하게 뛰고 싶고 조용한 리듬일 때는 유연한 몸놀림을 하고 싶어진다.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곧잘 집안 식구들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그것이 특기가 되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학예회 때마다 무대를 누볐다. 방학이 되면 특별 지도를 받고 서울 무대까지 진출하기도 하여 한때는 무용가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동적인 무용보다 정적인 글쓰기와 붓글씨 쓰기로 세월을 불사르고 말았다. 먹을 갈아 이따금 춤 무(舞)자를 쓰면서 춤에의 향수를 달래본다. 초서로 풀어쓴 무자를 가만히 바라다보노라면 춤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일필휘지로 유연하게 15획을 맥락을 이으면서 풀어쓰다가 마지막 획은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려 긋는다. 묵선의 강약과 갈필로 춤의 리듬이 살아난 舞자는 마치 한쪽 까치발로 서 있는 발레리나를 연상하게 한다.

 

나는 그동안 흙을 상징하는 갈색 종이에 舞자를 여러 각도로 연구해 써보았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필의를 담아 쓴 작품을 개인전 때 출품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문은 바로 상형문자여서 모든 사람에게 그 뜻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또 우리의 한글 궁체의 '춤'자도 흘림체로 쓰면 흡사 춤추는 모습과 같아 그 자형에서 꿈틀거리는 율동미를 느낀다.

 

춤은 육체를 소재로 해서 감성과 의지, 사상을 나타내는 조형예술로 육체의 꽃이라고 할까.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 몸으로 마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춤사위는 활짝 핀 꽃과 나비를 부르듯 환상적이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의 무희들은 청초한 백합꽃 같고 원삼 족두리에 버선발로 우리 전통 춤을 추는 모습은 탐스런 모란꽃이 아닌가. 그 꽃의 의미는 아름다움 이전에 살아 있음의 생동감이고 정열적 율동미를 말함이리라.  그 속에는 항상 일관된 동경이 있어 이것이 춤의 꿈일 것이다.

 

춤은 원시인들이 소원을 하늘에 바치는 가장 진실한 동작으로 땅에서 발을 떼면서 하늘을 향해 기원하는 몸짓이었다. 그때의 춤은 농경 수렵사회의 전통을 이어서 단순한 오락이 아닌 풍작을 비는 종교적 의식이면서 씨족사회 이래의 전통을 잇는 축제로 발전해 간 것이다. 우리나라 춤의 시초는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등의 제천의식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더 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대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미역국과 우유가 든 큰 주전자를 들고 산 밑 한증막으로 찜질하시는 어머니를 찾아갔었다. 미역국을 훌훌 마신 어머니는 다시 거적을 쓰고 굴속으로 들어가셨다. 폭삭 타버린 생솔가지 냄새가 진동하는 굴속에서 땀을 흘려야 병이 낫는다니 신기하기만 하고 모두 원시인들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주 흥미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증막에서 나온 어떤 할머니가 빨갛게 익은 몸에 흰 수건을 두른 채 심각한 얼굴 표정으로 더덩실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수건 밑으로 드러난 구리 빛 다리를 구부리고 펼 때마다 늘어진 젖무덤이 흔들거렸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신명나게 춤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 가장 원시적인 반라의 춤에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 말씀이 그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자 외아들마저 병으로 잃어 한이 많은 여자라 했다. 그때는 한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토속적인 춤은 서민의 삶 속에 뿌리내려 살아있는 깊은 슬픔의 몸동작이었다는 것을.

 

그 춤의 묘한 매력 때문에 나는 자주 굿판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 시절, 우리들 구경거리는 굿 보러 가는 것밖에 없었다. 두두 둥 북소리와 함께 징 치는 소리가 나면 잽싸게 그곳으로 뛰어갔다. 많은 사람들로 웅성거리고 있는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맨 앞에 앉아 구경을 했다. 삶은 돼지머리와 칼이 꽂힌 떡시루 판 앞에서 무당의 주술에 따라 주인은 두 손을 비비며 소원성취를 빌다가 종국에는 무당을 따라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이 춤이 굿판의 하이라이트였다.

 

굿판이 무르익으면 구경꾼들도 나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돼지 입에 지폐를 물리고 흥이 오르면 손가락에 낀 금반지도 빼어주고 신바람 나는 춤사위로 바뀌었다. 이러한 즉흥적 독무(獨舞)들은 종국에는 호흡들이 하나가 되는 군무(群舞)가 되어 절정을 이루었다.

 

지금도 나는 붓을 들어 무(舞)자를 써서 들여다보면 전설 같은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할머니 춤과 무당춤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여 그 리듬이 강하게 가슴을 흔든다. 백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버리던 그 생동감이.

 

삶의 고뇌를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글쓰기. 그리고 먹빛과 선으로 일필휘지 감정을 드러내는 붓글씨 쓰기. 명 수필을 읽을 때 춤의 리듬 같은 박진감 넘치는 생명력을 전잘 받을 때 기쁨이 솟는다. 명필을 감상하면서 춤 같은 강렬한 율동미를 발견할 때도 삶의 환희를 느낀다.

 

이러한 수필을 쓰고 싶다. 그러한 붓글씨를 쓰고 싶다. 눈으로 감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공간예술인 춤의 리듬이 깃들인 작품을. 모든 예술의 뿌리는 하나이므로.

 

 

 

- 고임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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