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 게시판

운명의 함수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6.20|조회수91 목록 댓글 0

 

 

운명의 함수 

 

 

 

 

 

 

 

 

내가 운명에 대하여 가장 큰 감동을 받은 때가 중학생 시절, 음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첫 음으로 나오는 "따따따따아"하는 비장한 소리는 운명이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운명이 무척 무섭게 느껴지면서 평생 그에게 한 번도 도전장을 던져보지 못했다.

 

선생님은 그 곡의 정식 이름이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이라는 것도, 그 곡 속에는 젊은 베토벤의 도전, 거센 숨결, 갈등, 슬픔, 좌절과 그 좌절을 딛고 성숙된 자아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엮여져 있다는 것도, 또 고뇌를 통한 자아확립의 의지와 그 성취에의 기쁨들 그대로 나타냈다는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따따따따도 피아노나 음향기기로 들려 준 것이 아니라 입으로 불러주면서 겁을 주었다.

 

그 날 이후, 운명이 나를 짓누르는 무게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지금도 운명이 느닷없이 "따따따따아"하고 달려들 것만 같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운명의 함수는 나의 행동과 보이지 않는 운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행동에 조심을 하고, 그의 눈에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그래서 항상 저만치 운명과 거리를 두고서, 그가 내 가까이 오는 것을 피하고 있다.

 

운명의 함수는​ 아무도 모른다. 평소 내가 쏟은 정성이 그 함수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 함수 방정식은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수 x에게 정성을 쏟아도 y가 꼼짝도 하지 않는 불합리한 관계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거나 질투를 한다. 그러면서 내 운명과 비교하고 공평하지 못한 부분을 탓한다. 운명은 각기 다른 함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불행했​던가를 강조한다. 그 노력이 함수에 영향을 주었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은 오로지 남보다 백배 천배 더 노력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둔한 사람들은 그 함수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고생과 나의 고생의 무게만 비교하고, 거기에 대한 대가의 차이가 불공평하다고 따진다.
 
운명의 함수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단정 지어 놓은 것이 명심보감 첫머리의 계선편繼善篇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이에 보답하고, 착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재앙으로써 이에 보답한다.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그래서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이 내 앞에 닥쳐오면 선한 행동으로써 그 불행을 예방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오래 전, 아들이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안전에 무척 신경을 썼다. 혹시 멀쩡한 운명에 마귀의 손이 그를 해코지할까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기도도 하고, 남을 돕기도 하고, 구걸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꼭 적선을 했다. 지하철 입구, 시장터 앞, 번화가 네거리에서 고개를 파묻고 엎드려 있거나 꿇어앉아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얼마씩의 돈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공손하게 통 속에 담아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무사히 귀국했다. 나의 위선(爲善)은 이복(以福)으로 효험이 나타났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교활하고 이기적인가. 나의 적선 행위는 아들이 무사히 귀국하자 천연스럽게 사라졌다. 가끔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는 아주 조금, 통 속에 동전을 그냥 던져 주었다. 선자(善者)와 불선자(不善者)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아주 민감했다. 선자가 되는 것보다 불선자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뒷날 아내에게 들은 얘기로는 아들이 학비가 부족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몰랐다. 더구나 위험한 일을 하다가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의 앞니는 임시로 치료해 놓고, 아직 새 이를 해 넣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사고 전의 아들의 앞니가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다고 노래처럼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뾰족한 송곳이 불선자(不善者)가 된 내 양심을 콕 찔렀다.
 
어느 시인이 믿을 수 없는 운명에 대해서 처연하게 노래했다. ​

산은/ 찾아가는 사람에게 열리고/ 운명도 그러하리라 나는 믿는다./ 눈물 몇 줌 흘린다고/ 당신께/ 세상이 안겨 오리라 믿었는가…/ 그저 그리움만 태운다고. 당신 가슴에 꽃이 피던가, 어디?

운명은 제멋대로 가고, 나는 그 풍랑에 휩쓸려 지금까지 떠내려가고 있다. 평생 운명을 피해 조심조심 다녔지만 알 수 없는 함수를 지닌 운명의 꽃은 나를 위하여 한 번도 활짝 웃어주지 않았다. ​


- 견일영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