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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6.23|조회수89 목록 댓글 0

 

우리는 모두 흘러가고 있다

 

 

 

 

 

 

 

 

 

아파트 11층에서 유유히 흐르는 아침 강을 바라본다. 한바탕 장맛비가 휘젓고 간 강물은 이제야 제 색을 찾았다. 찻잔을 들고 서서 제 속도대로 천천히 흐르는 강을 내려다본다. 오늘은 내 마음도 저 강물처럼 고요하다.

흐르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가 그 흐름 속에 있어 느끼지 못할 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절망도 흘러갔다. 나를 짓눌렀던 그와의 이별도 지나갔다.

저 강처럼만 살아도 좋겠다. 흐르다가 잠시 침묵하고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주변의 변화에 불평하지 않고 흐름에 순응하는 강, 가끔은 뒤척이는 물고기에게 품을 내주고 멀리 산 그림자에 한눈을 팔 줄 아는 그런 강이고 싶다.

나는 가끔씩 그것을 잊어서 슬펐던 것이다. 먹구름이 내게만 머무르는 줄 알았다. 눈 앞에 늘 캄캄했다. 오늘을 붙들고 있으면 내일은 반드시 온다던 위로의 말이 옹색한 변명쯤으로 들릴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은 하나같이 흘러갔다. 머물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저 강물처럼.

내 황금기였던 30대도 그랬다. 세상의 돈이 그냥 내 손으로 굴러들어오고, 멋지게 일한다는 칭찬에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내가 가장 잘 났고 내가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처럼 자만에 빠져있지 않았던가. 그것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흐르고 남는 것은 빚 뿐, 그것을 갚느라 오늘도 나는 어렵게 흐름을 계속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나에게 변했다고 말했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성을 내고 돌아섰지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정말 내가 변한 것인가. 변했다면 무엇이 나를 변하게 한 것일까. 또 얼마만큼 변했단 말인가? 한동안 그 말이 내 안에서 덜거덕거렸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변한 것이 아니고 그냥 흐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흐르다가 허우적거리며 뭔가를 붙들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젖은 몸과 마음을 볕에 자주 널어두기도 했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흘러오면서 부딪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변한 것은 어쩌면 그였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변명으로 일관한 그. 애초에 나를 위해 몸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했던 고백을 잊었다. 불덩이 같은 내 이마를 짚으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던 자신의 혀를 접어버린 지 오래다. 더는 이마를 짚어주지도 않았다. 몸을 다 바치기엔 내가 너무 시시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도 흐르다보니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일 테니까.

우리 중 누구도 변한 게 아니다. 단지 흘러왔을 뿐이다. 제 몫의 부러진 나무짚단을 지고 오느라고 잠시 상대의​ 어깨가 무겁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변한다는 것은 흐른다는 것의 또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흐르는 것에서 빗겨나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흐르고 있다'는 그것뿐이 아닐까. 아파만 할 일도, 그렇다고 안도할 일도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내가 보는 시선에서만 바라봤을 뿐이다.

침묵으로 흐르는 저 강은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을 뿐 속으로는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여기까지 흘러온 내안의 강물처럼.

강을 바라본다. 들고 있던 찻잔은 식었다. 아니 식은 것이 아니라 찻잔의 온기가 흘러가버린 것이다. 오래전 따뜻했던 그의 손이 흘러가버린 것처럼.​

 

 

 

- 한복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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