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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의 사랑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7.12|조회수70 목록 댓글 0

 


은어의 사랑 

 

 

 

 

 

 



고달 강나루, 지리산을 훑고 나온 섬진강은 눈부터 시리다. 강은 유연한 몸으로 산 구석구석을 씻고, 한가한 산은 촉탁을 하고 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걸음, 내 시선은 강변 건너편에 머문다.

 

하얀 모래, 고운 자갈밭, 올망졸망 작은 바위 무더기, 좁은 산자락 군데군데 몇 안 되는 집들이 소담하다.

 

거기 마음을 준 지 오래.

끝없이 이어지는 강변, 햇살만 따갑다. 바람도 건너편을 택했나 보다. 바람의 간질임에 수양버들은 연방 애교를 떤다.

 

간절함도 이렇듯 사무칠까? 누굴 만나자 함도, 어디로 가자 내친걸음도 아닌데 한낮의 햇살이 쉽잖은 상대다. 자꾸 건너편으로 눈이 간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 강변을 가로질러 줄이 쳐졌다. 나루터다. 필경 앞마을로 이어지는 줄이리라. 서둘러 고개를 내미니 물색도 창연타. 아니나 다를까? 조그만 배가 바람에 출렁인다. 크지 않은 마을이니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을 터. 서너 사람은 족히 탈 성싶은 나룻배가 햇살에 졸고 있다. 단걸음에 내려간 나는 그만 깜짝 놀라 제자리에 서고 만다. 빈 배려니 여겼는데 인기척이다. 누군가 팔베개를 하고서 곤한 잠에 뻐져 있다.

 

'늙숙한 할아버지다'

 

배는 요람처럼 물결에 흔들리고, 웃음은 할아버지 얼굴에서 출렁인다. 꿈을 꾸는 모양이다. 사공의 곤한 잠을 깨울 수는 없는 법, 나도 바위 하나 택해 오붓하게 자리를 잡는다. 강물에 씻겼는지 세월에 깎였는지 여기서는 돌도 바위도 한껏 보드랍다. 엉덩이를 붙이니 물보다 포근하다.

 

피안과 치안.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몇 아니 되는 사람. 

그 위로 한낮의 햇살은 은어처럼 반짝인다. 노인의 꿈은 은어를 따라 여울을 헤엄친다.

 

바구니 속 재첩은 굵기도 하다. 모래를 헤집던 소녀가 고운 돌로 물수제비뜨면, 청년은 갓 건진 참게며 쏘가리를 버쩍 들어 화답한다. 향긋한 재첩과 싱싱한 물고기, 넓디넓은 섬진강나루, 둘만의 만남에 어찌 재첩과 물고기만 오갈 것인가! 어찌 손길이 닿지 않으랴! 쏘가리 같은 기운찬 사내 손과 은어처럼 빛나는 소녀의 하얀 손이 부딪치면 잔잔한 강물도 한바탕 풍랑이 일고, 수줍게 어지럼이 인 것을, 심한 몸살이 나는 것을….

 

아버지를 졸라 노를 잡았을 것이다. 앞마을 소녀를 태울 때마다, 멋진 사랑가 한마디 없었을까? 청년은 신랑이 되고 아가씨는 신부가 되던 꿈을 꾸며 이 강변을 걸었을 것이고 강은 오롯이 둘만의 속삭임을 지켜 주었을 것이다.

 

노인은 그래서 이 강을 떠나지 못하나 보다. 노를 저을 때마다 일렁이는 물결에 되살아는 소녀의 방싯 웃는 모습. 어쩜 그 유년의 아름다운 꿈에 흠뻑 젖었나 보다. 소녀를 찾아 금방이라도 노를 저을 기세다. 꿈결에도 웃음이 튀어나온다. 온몸 구석구석 은빛 비늘이 돋는다.

 

그러기를 한참, 할아버지는 굽은 등지느러미와 꼬리를 흔들어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향긋한 소녀의 체취가 여태껏 남아 있는 섬진강 맑은 물. 소녀가 속삭여 주는 따스한 목소리가 여울물에 실려 온다. 할아버지의 가슴은 뜨겁고 몸짓은 바쁘기만 하다.

 

그것도 잠시, 지쳤나 보다. 강변 한쪽에 이내 몸을 놓고 만다. 섬진강에 몸을 푼 지리산에 오수에 취했다. 지나는 구름도 지친 지리산의 하루를 이불인 양 덮는다.

 

은어는 쉬 출발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저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꿈을 꾸고 있을 게다. 맑고 깨끗한 여울에 집을 짓고 사랑을 했던 그 옛날, 그 아름다운 꿈을….

 

 

 

- 박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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