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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청량산(淸凉山)​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7.20|조회수78 목록 댓글 0

 

겨울 청량산(淸凉山)​





겨울 청량사(淸凉寺)에 가서 만났다.
소복단장하고 뒷머리채도 치렁치렁
버선발 내밀고 살 냄새 피며
사뿐 큰절 올리는
고 비릿한 처녀 계집애
두 눈에 눈물 잔뜩 고여 할 말 있다며
불쑥 내 잠자리 파고들었다.

식은땀 등에 흘리며 잠자리 걷어차고
아침에서야 대중들의 공양 상머리
이 얘기 털어놨다.

우리들의 공양주 어진 보살님도
혀끝 말아 쥐며
우얄끼나 우얄끼나……
아직도 승천을 못 했나빔

작년에도 서울서 왔다카는 한 총각아이
그 뒷골방에서 처녀기집 만났다는디,
걸려도 깊이 걸렸던지
부모들이 내려와 청량사의 산신각에
씻김굿을 올렸더라는디
우얄끼나……

그 처녀 계집 공비토벌 때
젊은 산 손님을 따라 돌다
절문 밖 고목나무에 목을 매고
고목나무도 이젠 처녀애의 형상대로 말라 비틀어져
우리들의 가슴을 쥐어뜯지만

그녀 아직도 살아 이 깊은 계곡 육륙봉을 서성이며
살 냄새 그리웠던지
내 잠자리 불쑥 파고든 것이리라.

그러나 그대, 이 땅의 젊은이들아
내년에도 내명년에도 그 후명년에도
한 시인이 만났던 자리, 그 시인도 가고
겨울 청량사에 눈이 쌓여 구들을 달구거든
그녀 성큼 불러들여
그녀의 치맛말을 풀어 천도를 시켜달라

네 살아 있음의 끝이 그녀 죽음 위에 숨쉬고
네 젊은 혼이 그녀 맥박 속에 살아 있음을 알아
너는 여름날 달맞이꽃 또는 이 산기슭에 피어나서
밤이슬로만 소복단장한
그녀 모습 보고 울리라. 

 

 

- 송수권 - 

 

 ※ 청량산 : 6. 25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경북 봉화군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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