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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담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9.19|조회수73 목록 댓글 0

 

죽담

 

 

 

 

 

 

 

 

담에도 성격이 있다. 글자나 꽃그림을 넣어 쌓은 화초담은 화려하고 꼼꼼한 성격에 귀족적이고 싸리나 갈대를 엮어 만든 바자울은 소박하고 엉성한 성격에 서민적이다. 흙에다 잘게 썬 짚을 섞어 쌓은 흙담은 소극적이며 여성스럽고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와 얼키설키 쌓은 돌담은 적극적이고 남성적이다. 흙과 짚 그리고 돌을 적당히 섞어 쌓은 죽담은 흙담과 돌담의 성격을 잘 어울러 만든 담이다.

 

호젓한 시골길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담은 죽담이다. 흙에 듬성듬성 박힌 돌과 꼬리를 마저 거두어들이지 못해 삐죽 나온 짚은 꾸미지 않아 풋풋함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옛 친구를 만난 듯 정감이 간다.

 

죽담의 흙과 짚과 돌은 서로 억누르는 듯하면서 치켜세워 주는 사이이고 밀어내는 듯하면서 보듬어 주는 사이이며 이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질적인 향수가 있다. 우리 삶에서도 이와 같은 만남이 허다하니 이것이 내가 죽담을 좋아하는 이유다.

 

죽담의 흙은 물과 불가분관계다. 흙에게 물은 편이 되기도 하지만 적이 되기도 한다.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간 반죽은 흙다짐을 할 때 물러서 주저앉아 버리거나 흘러내린다. 또, 물이 너무 적게 들어간 반죽은 담이 완성되고 난 뒤 건조될 때 균열이 많이 생겨 무너질 수도 있다. 흙과 물의 적당한 만남으로 쌓아진 담은 긴 세월 비바람도 이겨내고 담 아래로 흙가루를 조금씩 내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만남이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싫은 사람도 없고 딱히 좋은 사람도 없다는 사람이 있다. 어느 곳에서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제 일도 한 권의 역사책으로 만들어내며 엉덩이에 세월을 깔고 앉아 반죽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시간을 난도질해가며 아껴 쓰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도 있다. 너무 무른 사람은 정이 넘쳐 퍼져버릴 우려가 있고 너무 된 사람은 인간미가 없어 삶이 빡빡해질 수도 있다. 사람의 만남도 흙과 물의 만남 같아서 적당한 반죽은 그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또 다른 인연의 싹을 틔우게 한다.

 

죽담의 흙은 짚과 끈끈한 관계다. 흙으로만 담을 쌓았을 때보다 짚을 잘게 썰어 흙과 충분히 섞어 담을 쌓으면 좋은 점이 많다. 서로 오래 만지고 섞여가다 보면 친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런 담은 갈라짐이 거의 없어 튼튼하다. 짚은 흙과 물 사이에 접착 역할을 해서 흘러내릴지도 모를 흙을 잡아 준다. 그러나 너무 많은 짚을 섞어 넣으면 물과 만나 가끔 좋지 않은 냄새를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비가 와서 물기가 많은 날은 냄새가 심하다. 흙과 물과 짚의 적당한 만남은 균열을 방지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지저분해진다.

 

세 사람이 만날 기회는 많다. 두 사람 사이가 서먹하거나 매끄럽지 못할 때 접착 역할을 하는 짚 같은 사람이 더러 있다. 그로인해 분위기가 좋아지고 정이 돈독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간혹 그 사람이 너무 말이 많거나 행동이 과해서 예상치 못한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흙과 짚의 만남처럼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 적당하게 주고받는 마음 씀씀이는 서로의 기운을 높여주고 끈끈한 정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죽담의 흙은 돌과 만남을 최고의 어울림으로 친다. 반죽 된 흙 사이사이에 알맞게 박힌 크고 작은 돌은 담의 중심이다. 담의 중심은 중앙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산시키는 것이다. 담 전체에 골고루 박힌 돌들이 담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반듯한 돌을 일렬로 맞추어 담을 짜는 것보다 울퉁불퉁한 돌을 적당하게 심는 것이 멋있고 힘이 있다. 돌은 부드러운 흙의 기울기를 조절해서 담이 주저앉지 않게 중심을 잡아 준다. 이때 흙은 돌의 냉기를 흡수하고 따뜻이 안아준다. 가장 약한 흙과 가장 강한 돌이 만나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풋풋하고 온유한 죽담이 되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때때로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들과 만나게 될 때는 기울기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중심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고 이끌기 시작하면 십중팔구 문제가 생긴다.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하기보다 주변사람들에게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오히려 중심을 잡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너무 번듯한 많은 사람보다 울퉁불퉁한 몇 사람에게서 그 쓰임을 찾아내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죽담 속에는 숨이 죽지 않은 뻣뻣함도 있고 이미 풀이 죽은 부드러움도 있다.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적을 만나 인생의 고비 하나를 지혜롭게 넘기고 나면 정말 좋은 사람들이 죽담처럼 곁에 서 있다.

 

이렇게 죽담이 완성이 되면 죽담위에 암키와와 수키와를 안팎으로 얹어 빗물로부터 담을 보호한다. 기와를 얹을 때는 빗물을 염려하여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게 한다. 수키와가 등으로 빗물을 받아 암키와의 널찍한 배로 넘겨주면 암키와는 받은 빗물에 죽담이 젖지 않도록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암키와와 수키와의 세심한 배려와 흙과 짚과 돌과 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죽담이 되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세월에 빛이 바래고 기와에 돌버짐이 핀 죽담을 만나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 듯 매려되고 만다. 죽담은 단순한 담이 아니라 긴 인연이다.

 

사람은 죽담을 만들고 죽담은 사람을 가르친다. 이웃집의 시멘트 담장위에 꽂힌 유리의 경계심을 허물게 하고 누구든 안아주게 만드는 죽담. 엄마한테 꾸중 듣고 쫓겨나서 아버지가 데리러 나올 때까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등을 맞대고 위로를 가르쳐 주었던 죽담. 봉선화와 가을 국화에 눈높이를 맞춰 주는가하면 항로 없는 밤 비행을 나서는 반딧불이의 꽁무니에도 시선을 놓지 않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죽담. 적당하게 받아들이고 화합하면 더 부드러워질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으니 약함도 강함도 쉽게 흘려보내지 말고 아울러 만나라고 가르쳐 준 죽담이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것들을 만나게 되면 속으로 죽담을 떠올린다. 흙으로만 일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돌을 만나 밀고 당기며 짓누렬 섞이더라도 죽담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음을 어쩌랴.

 

 

- 주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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