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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시

희망이란 것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5.21|조회수63 목록 댓글 1

 

 

 

 

 

희망이란 것

 

― 이규리

 

 

 

 

부레옥잠은 팔뚝에 공기주머니 하나 차고 있다

탁한 물에서도 살 수 있는 건

공기주머니 속에 든 희망 때문이다

 

가볍게 떠있던 물 속 시간들

희망이 꼭 미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팔뚝에 희망 하나 차고 다닌 적 있다

 

잊을 수 없는 일마저, 건널 수 없는 세상마저

그 속에 밀어넣었던 적 있다

그런 희망이 텅 빈 주머니란 걸

언제라도 터뜨려 질 수 있는 눈물이란 걸

나는 몰랐을까

 

부레옥잠이 떠 있는 건

희망 때문이 아니다

속을 다 비워낸 가벼움 때문이 아니다

 

잎잎마다 앉은 한 채씩의 승가람

그 자리는 서늘해서 누구나

바람 소릴 노래처럼 안고 가는데

옥잠이란 이름에 부레 하나 더 얹은

쓸쓸한 감투가 그의 이름이듯이

 

 

 

 

부레옥잠은 외떡잎식물 분질배유목 물옥잠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아메리카 원산이다. 연못에서 떠다니며 자라는데, 밑에 수염뿌리처럼 생긴 잔뿌리들이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몸을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 잎은 달걀 모양의 원형으로 밝은 녹색에 털이 없고 윤기가 있다. 특히 잎자루는 공 모양으로 부풀어 있는데 그 안에 공기가 들어 있어 수면에 떠 있을 수 있게 한다. 꽃은 8∼9월에 피고 연한 보랏빛인데 6개의 갈래조각 중에서 위의 것이 가장 크며 연한 보랏빛 바탕에 황색 점이 있다. 가정에서 수반을 만들어 관상용으로 키우기도 한다.

이규리의 시 <희망이란 것>은 이 부레옥잠의 공기주머니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분명 부레옥잠이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공 모양으로 부푼 잎자루 - 바로 공기주머니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희망주머니로 파악한다. 즉 ‘부레옥잠은 팔뚝에 공기주머니 하나 차고 있’는데 부레옥잠이 ‘탁한 물에서도 살 수 있는 건 / 공기주머니 속에 든 희망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는 물 위에 떠 있게 하는 공기주머니 속 공기를 시인은 ‘희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흔히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한다. 이 때에 꿈은 바로 희망이지 않는가. 희망이 없다면 무엇을 바라고 삶을 이어가겠는가. 화자는 부레옥잠이 살아가는 것은 ‘가볍게 떠있던 물 속 시간들’ 때문이라는데 이는 바로 공기주머니 속에 희망이 들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런데 ‘희망이 꼭 미래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화자도 ‘팔뚝에 희망 하나 차고 다닌 적 있다’고 한다. 화자는 ‘잊을 수 없는 일마저, 건널 수 없는 세상마저’ 팔뚝에 찬 그 희망 속에 ‘밀어넣었던 적’이 있단다. 그런데 훗날 깨달은 모양이다. 희망이 있다고 해서 잊을 수 없는 일이 잊혀지고, 건널 수 없는 세상을 건널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즉 화자가 팔뚝에 차고 있는 희망이란 것이 실은 ‘텅 빈 주머니’였고 ‘언제라도 터뜨려 질 수 있는 눈물이란 걸’ 그동안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화자는 그동안 희망이 있으면 살아낼 것이라 믿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화자는 다시 부레옥잠을 생각한다. 즉 ‘부레옥잠이 떠 있는 건 / 희망’이나 ‘속을 다 비워낸 가벼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즉, 희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공기주머니가 실은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깨달음 뒤에 화자는 다시 생각한다. 부레옥잠이란 ‘옥잠이란 이름에 부레 하나 더 얹은’ 것이요 이때 ‘부레’ 즉 공기주머니는 ‘쓸쓸한 감투’에 지나지 않으며 바로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화자는 부레옥잠의 잎자루가 부풀어 오른 것 - 공기주머니요 그 안에 희망이 들어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실은 공기주머니가 아니라 ‘잎잎마다 앉은 한 채씩의 승가람’이란 것을 인식하게 된다. 승가람(僧伽藍) -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곳은 서늘한 자리이요 ‘누구나 / 바람 소릴 노래처럼 안고 가’는 곳, 바로 고요하고 쓸쓸한 곳이다.

희망인 줄 알았던 것이 쓸쓸하고 고요하고 서늘한 자리였다는 깨달음 - 즉 희망이란 헛된 꿈에서 어서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리라. 그렇다고 ‘승가람’이 부정적인 곳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바람 소릴 노래처럼 안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소리를 노래처럼 안고 갈 수 있는 곳 - 인식의 전환이겠지만 결코 ‘희망주머니’는 아니라는 뜻이다.

살아가며 희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꿈대로 희망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희망으로만 알고, 이루어질 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훗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간 희망으로만 알았던 그 자리 - 공기주머니가 얼마나 서늘하고 쓸쓸하고 고요한 곳이었는지를, 즉 현실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부레옥잠의 부레, 다시 말해 공기주머니.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그리고 상상력이 독자로 하여금 부레옥잠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시의 제목이 ‘부레옥잠의 공기주머니’ 혹은 ‘부레옥잠’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희망’을 말하기 위해 부레옥잠의 공기주머니를 차용했을 뿐 결코 부레옥잠이나 그것의 공기주머니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즉 희망이라는 것, 절대 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희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 꼭 명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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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결같이요 | 작성시간 24.05.2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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