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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시

문학이라는 팔자(八字)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8.12|조회수73 목록 댓글 1

 


 

 

문학이라는 팔자(八字) 

 

 

 

 

어느 날, 아르튀르 랭보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시를 

자신에게서 산 채로 잘라내 버렸다.

 

로베르트 발저는 

스스로 헤리자우의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가 

27년간 아무것도 쓰지 않고 

죽을 때까지 종이봉투만 접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꼼짝없이 사로잡힌 시라는 괴물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가스레인지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아 넣었다.

 

아틸라 요제프는 

먹고살기가 너무 막막해 

달려오는 화물열차에 몸을 던졌다.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둔 28세의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그들에 의해 

생체실험을 당했다. 

 

산도르 마라이는 

조국을 등지고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세상에 아첨하느니 사색하는 인간으로 사멸하겠다”며 

권총 자살을 했다. 

 

하트 크레인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쫓고, 또 쫓다

무너진 탑이 되어 푸른 카리브해 깊숙이 가라앉았다. 

 

프리모 레비는 

그 지독한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았으나,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랑한 문학,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문학, 

세사르 바예호의 시구처럼 ‘神이 아픈 날 태어난’ 

팔자(八字)들이다.

 

나는 내가 나 같지 않고,

삶이 삶 같지 않고,

문학이 문학 같지 않고, 

친구나 동료가 친구나 동료 같지 않고, 

 

내가 알던 

정의,

신념,

가치,

사랑 같은 숭고한 단어들이 

내가 모르는 비릿한 단어들로 변해 세간에 마구 유통될 때,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져 

온몸과 온 마음에 비통과 회한뿐일 때, 

이 8명의 작가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의 팔자를.

 

문학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더럽게 불운하고,

더럽게 치열하고, 

더럽게 품격 있고,

더럽게 자존이 강했던 그들의 팔자. 

 

나 자신이 위로 받으러 갔는데, 

오히려 내가 감화되어 

울고 나오게 되는 그들의 팔자. 

 

그런 팔자임에도 

그 지독한 불운과 죽음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들의 문학. 

그 시퍼런 도끼날에 세례를 받고 오면,

 

내 팔자 또한 

더럽게 춥고,

어둡고, 

외롭고, 

고달파도,

 

그들과 함께 

계속 문학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뜨거운 피가 솟구친다. 

 

그 어떤 곳보다도 팔자 사나운, 

문학이라는 한 장소에서, 

동시에 !

 

 

- 김상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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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결같이요 | 작성시간 24.08.13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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