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닐 것이다
원래부터 그런 피가 흘렀을 것이다
한쪽 편에 부르카를 쓴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검은 부르카 속 눈마저 감은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 편엔 뱀을 두른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뱀의 혀를 가진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두 여인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가 마주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닐 것이다
원래부터 그런 피가 흘렀을 것이다
그런 피가 온몸을 흐르고 흘러
몸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 피를 보고 자기가 제일 먼저 놀랐을 것이다
그 피를 보고 자기가 제일 많이 겁이 났을 것이다
팜므 파탈
자기도 그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기가 그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 한명희 -
시집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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