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얼굴 ♡
나이 들수록 시간은
두려움이 무게로
다가서지만 이제 그와는
못할 말이 없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도,
미움도 그에겐 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시간이 내게 보낸
한 장의 속달 엽서를 읽는다
나를 그냥 보내 놓고
후회한다면 그건
네 탓이야, 알았지?
나를 사랑하지 않은 하루는
짠맛 잃은 소금과 같다니까
알았지? 내가 게으를 때,
시간은 종종 성을 내며
행복의 문을 잠거 버린다.
번번이 용서를 청하는
부끄러운 나와 화해한 뒤
살며시 손을 잡아 주는
시간의 흰 손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내가 깨어 있을
때만 시간은 내게 와서
빛나는 소금이 된다.
염전(鹽田)에서 차례의
수련을 끝내고 이제는 환히
웃는 하얀 결정체 내가
깨어 있을 때만 그는 내게
와서 꼭 필요한 소금이 된다.
한 마리의 자벌레처럼 나는
매일 시간을 재며 걷지만
시간은 오히려 넉넉한 눈길로
나를 기다릴 줄 아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곱게
피었다 지는 한 송이
보랏빛 붓꽃처럼 자연
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조용한 시간이여
시간은 날마다 지혜를 쏟아
내는 이야기책
그러나 책장을 넘겨야만
읽을 수 있지 살아 있는
동안 읽을 게 너무 많아 나는
행복하다 살아 갈수록
시간에겐 고마운 게
무척 많다.
시간이 내게 와서 말을 거네
슬픔 중에도 마음을 비우면
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미래는 불확실해도 죽음
만은 확실한 것이니 잘
준비하라고...
~ 이해인 수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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