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가난한 것만이 불행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의과대학장을 퇴임하신 저명한 칠십대 노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돈과 명예가 있다고 노후가 행복한가요?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가난한 의대생이었어요. 부자 집 딸과 결혼했죠. 처가에서 작은 의원을 차려줬어요. 매일 번 돈을 아내에게 바쳤죠. 아내도 의사였죠. 저에게 밥 한번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없어요. 제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와도 역할이 식모였어요. 어느 혹독하게 춥던겨울날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찬물로 며느리의 빨래를 하는 걸 봤어요. 가난이 죄였죠. 아내는 제가 번 돈으로 땅과 건물을 샀는데 칠십년대 부동산 경기를 타고 엄청나게 값이 올랐죠. 난 돈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내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려고 곁눈질을 하지 않고 살아왔죠. 나는 노력해서 대학병원장이 됐어요.”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셈이었다. 칠십대 노인이 된 그가 어느 날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가출을 했다. 병원장자리도 그만두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내게 그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느 날 단골로 다니던 한 식당에서였어요. 수더분해 보이는 주인여자가 생선의 뼈를 발라주고 국이 식을까봐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졌어요. 그리고 따뜻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산 건 산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건 삶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집을 나와 작은 방을 하나 얻었죠. 저녁이면 내 방으로 돌아와 빨래판에 팬티와 런닝셔츠를 놓고 빨래 비누를 개서 문댔어요. 노년에 비로서 평안을 찾은 것 같아요.” 그를 보면서 노년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았다. 아직 젊을 때, 더 늦기 전에 노년의 삶을 미리 그려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고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노년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삶은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주위 사람과 사회까지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출처: 엄상익 변호사 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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