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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
나의 생이란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고 하자,
꽃도 별도 아니고. 밤도 새벽도 아니고
전갈도 거미도 인어도 아니고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 하자.
너를 마주치지 못해서 허무의 포말, 신기루 같아도
네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밤이어도
다 너 만나러 왔다가 가는 일
나의 생이란 여름 소낙비도 아니고
소쩍새 울음도 물총새 울음도 아닌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 하자.
만나러 가다가 마주치는 고목뿌리까지 뽑는 태풍,
지상의 모든 간판을 휘날릴 것 같은 태풍도
총성이 다슬기처럼 귀에 다닥다닥 붙던 5 월도 만나지만 정말
만난다는 것은 내 생을 한 보따리 짐으로 싸 너 만나러 왔다 가는 것
전생의 기억마저 말처럼 몰아 너 만나러 왔다 가는 생이라 하자
허탕 쳐 뒤돌아서 가는 것조차 다 너 만나러 왔다 가는 길
목숨 수없이 갈아 신으며 온 이번 생은
너 만나러 왔다가는 생이라 하자.
- 김왕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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