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서방 길들이기
— 나팔꽃
애초부터 더듬이가 긴 건 아니었어요
내 놓을 것 하나 없는 몸뚱아리 지탱하려고
허방다리 짚다 수없이 넘어지고
꼿꼿한 기둥하나 걸리기만 해라 아침마다 되뇌이다
길가에 서있는 당신을 처음 만났지요
당신은 걸어서 오라고 했지만
나는 기어서 갔지요
한 발 한 발 허공에 늘인 줄을 따라
집 한 채 들이고 세간을 풀었지요
행간에 창을 내고
한 땀 한 땀 문패를 새겼지요
새벽이면 피멍든 이슬
창 아래로 쏟아 내며 내민 촉수
당신의 허리를 친친 감았지요
몸을 뒤틀어야 피어나는 꽃
나중에 알았지요
당신에게 나를 묶는 일이 한나절이면 지고 마는
보라색 교태를 흘리는 일이란 걸
- 김양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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