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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장(葬)

작성자초원의 꽃향기|작성시간24.05.23|조회수293 목록 댓글 2

 

 

 

 

 

모래장(葬)

 

― 송재학

 

 

 

사막의 모래 파도는 연필 스케치풍이다

모래 파도는 자주 정지하여 제 흐느낌의 상(像)을 바라본다

모래 파도는 빗살무늬 종종걸음으로 죽은 낙타를 매장한다

 

모래장(葬)을 견디지 못하여

모래가 토해낸 주검은 모래 파도와 함께 떠다닌다

 

모래 파도는 음악은 아니지만

한 옥타브의 음역 전체를 빌려 사막의 목관을 채운다

 

바람은 귀가 없고 바람 소리 또한 귀없이 들어야 한다

어떤 바람은 더 많은 바람이 필요하다

 

모래가 건조시키는 포르말린 뼈들은

작은 처럼 길고 넓적하다

 

그 뼈들은 모래 속에서도 반음 높이 노를 저어갔다

뼈들이 닿으려는 곳은 모래나 사람이 무릎으로 닿으려는 곳이다

 

고요조차 움직이지 못하면 뼈와 노(櫓)는 증발한다

물기 없는 뼈들은 기화되면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너무 가벼워 사라지는 뼈들은,

 

 

 

 

종종 시를 읽다가 시인의 사유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풍광이나 사물을 소재로 쓴 시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시인이 직접 가서 본 것일까 아니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만난 것일까어느 경우든 독자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고에는 제한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그러니 작가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송재학의 시 <모래>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모래이라면 모래 속에 시신을 안치한다는 것인데우리나라의 경우 수목장(樹木葬)이라면 몰라도 모래을 치를 곳이 있던가혹시 시인이 고비사막이나 아라비아 사막 아니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던가아니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봤을지도 모른다그냥 사막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봤을 수도 있을 터이고어쨌든 시의 제목이자 소재가 되는 모래을 치를 만한 사막을 시인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했을 것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사막 혹은 숲이나 들판 한 가운데 놓인 동물들의 사체를 보게 된다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 뒤쳐진 혹은 수명을 다한 동물들이다그런데 살점을 뜯어 먹힌 다음에는 썩은 고기도 먹는다는 새들에게 먹히고 이윽고는 뼈만 남는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뼈들이 삭아 바람에 날려 아예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자연의 섭리일 것이다송재학의 시는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사막에서 낙타가 죽어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혹은 죽음으로의 여행이라 할 시인의 사유를 보여준다.

​사막에 일어나는 모래 파도는 희미한 연필 스케치풍이다그만큼 고정되지 않은자주 변하는 모습이다. ‘모래 파도는 자주 정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 움직인다그 사이사이 제 흐느낌의 을 바라보는 것이다바람이 불어오면 모래파도는 빗살무늬 형태로 움직여 나가며 죽은 낙타를 매장한다.’ 모래 속에 묻혀 있어야 할 뼈들은 모래파도와 함께 떠다니는데 마치 모래가 토해낸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고그 바람이 모래를 스치며 혹은 낙타의 뼈를 스치며 여러 소리를 낸다어쩌면 사막의 바람 혹은 모래 파도가 만들어 내는 음악이리라이런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눈으로 듣는다왜냐하면 바람에 따라 모래가 일으키는 파도의 움직임과 함께하기 때문이다때때로 어떤 바람은 더 많은 바람이 필요한데 이는 낙타의 뼈를 삭게 만든다그렇게 뼈가 삭아가는 과정에 모래가 건조시키는 포르말린 뼈들은 작은 처럼 길고 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뼈들은’ 부는 바람이 스치며 내는 소리에 마치 노를 저어가는 것 같은 모양이다.

그렇게 낙타의 뼈가 바람과 모래에 삭아 끝내 다다르는 곳은 어디일까맞다. ‘뼈들이 닿으려는 곳은 모래나 사람이 무릎으로 닿으려는 곳’ 즉 죽음의 세계이다그곳에 다다르면 고요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이내 뼈와 는 증발한다.’ 노처럼 생겼던 뼈가 삭아 점차 사라지는 것을 증발한다고 표현한다즉 물기 없는 뼈들은 기화되는 것이다그럴 때에 그 뼈는 이제 낙타의 것이 아니다. ‘너무 가벼워 사라지는 뼈들은’ 낙타의 뼈가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가버린 것이리라.

 

시 속에 서술된 내용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죽은 낙타가 사막의 모래에 파묻히는 과정 이어 모래에 파묻힌 낙타의 사체가 바람과 모래에 의해 뼈만 남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뼈마저 삭아 사라지는 과정이다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막을 터벅터벅 걸었을 낙타는 그 형체는 물론 뼈마저 안보이게 되는 것이다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사라지는 것이다실은 낙타는 사막의 모래바람과 하나가 된 것이리라그러니 낙타는 살아 있을 때의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사막의 모래 속에 그리고 바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세 단계 속에 시인의 사유가 엿보인다바로 죽음을 대하는 시인의 상념이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세 번째 단계이다바로 모래바람에 처럼 변했던 뼈들이 증발하는 과정 사막에서는 물기 없는 뼈들은 기화가 되어버린다살아 있는 동안은 몸이 무거웠지만 죽고 뼈만 남고 그리고 그 뼈마저 삭아 너무 가벼워 사라지는 뼈가 되는 것바로 낙타가 모래바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흔히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시인은 죽음자연으로 돌아감이라고 직설적인 어휘를 쓰지 않지만, ‘모래이란 제목 그리고 사막의 모래바람에 묻힌 낙타의 모습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직접 사막에 갔건 아니면 영상으로 접했건사막의 모래 속 낙타의 주검을 통한 시인의 사유는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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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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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섬기는자 | 작성시간 24.05.24 좋은글 즐감합니다..
    금욜 좋은아침입니다.
    새날 주심에 감사드리며 기쁘게 오늘을 맞습니다.
    새아침 즐겁게 열어가요..
    오늘부터 부산 해운대 모래축제가 개최된다네요..
    불금 골든데이..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주말 즐겁게 맞아요..
    행복이 가득하시고요..~^^
  • 답댓글 작성자초원의 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2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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