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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자작글

황진이와 지족선사 1

작성자이칠|작성시간24.06.08|조회수121 목록 댓글 1

오늘같이 비가오는 날에는 그 옛날의 풍류와 웃음이 있는 야그가 제격이라.

그래 황진이와 임제의 야그로 시작하여 보자.

 

冬至(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춘풍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가시나가 시는 잘 지어요.

천한 신분이었기에 스스로 기생이 되어 양반이라 일컫는 사내들을 그녀의 치마폭 앞에 무릎 꿇리면서 농락했다는 조선 제일의 명기.

오늘은 황진이를 만나러 떠나 볼가.

 

조선의 한양 땅을 밟아 본지가 어언 500년이 다되어가는 구나

 

아니, 여기가 그 옛날 한양이 맞는 감.

완전 천지개벽을 해야 버렸어.

그란디 조선 천지에서 황진이 그 가시나를 어찌 찾는단 말이냐.

 

어이, 니 혹시 백호 임제 아이가?”

, 이게 누구냐? 니가 말로만 듣던 황진이구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조선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뛰어난 시인.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렸던 황진이가 아니냐. 그란디 내를 어찌 알고 퍼뜩 알아보느냐?”

, 염라대왕께서 내게 휴가를 줌시로 해동조선에 나가면 백호 임제를 만나 보라카든데 보면 척 알 수가 있다고 하시더라.”

 

. 염라대왕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셨구나. 얼마나 만나보고 싶었던 너였냐! 그랬구나. 그란디 내가 오면서 들은 야그인데 조선의 남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인이 죽은지가 500년이 다되어가는 황진이 너라고 한다더라. 참으로 놀래 자빠질 일이 아니냐. 누구하나 너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기는 하냐. 허긴 황진이 너를 소재로 한 영화며 드라마, 소설까지 나오면서 오늘날까지 너의 명성이 인구에 회자되고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빼어난 용모에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거문고면 거문고, 시조면 시조가 다 메이저급이었으니 대한 남아들이 세월을 뛰어 넘어 반할 만도 할것이야.

어디 이것뿐이겠냐. 지난 세월 이어령 교수와 각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의 주선(酒仙) 10을 뽑는 행사가 있었다. 이 날 고금을 통틀어 추천된 주선은 모두 140여명이나 되었는데, 주량과 풍류가 특출한 당대의 호걸들이 총망라 되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최고의 주선으로 황진이 너가 선정 되었다는 구나. 한국의 석학들 까지 너를 짭게 알아주고 오래도록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비록 짧은 생을 살았을 지라도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너는 너무나 유명하여 조선 천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나 나 같은 사람은 한갓 전라도 나주에서나 알아주는 정도이니 너와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같다.”

 

아이다. 니 시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고 해서 너의 명성도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기고, 그라고 해동조선의 3대 풍류객하면 김삿갓 김시습 임제가 아니냐. 가히 시대의 호협이라 조선 천지에 소문이 파다하더라.

기런데 내 진작 너한테 물어 볼라고 한게 있는 데...

니가 내 무덤에 술 한 잔을 부어놓고 제사를 지냈다가 파직이 되었다고 해 샀던데 우에 된 기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 너의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지은 시조이다. 한번 들어 볼랴?

 

청초(靑草)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을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평소에 너를 사모하여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마침 평안도사(平安都事)가 되어 임지에 부임하기 위해 송도를 지나게 되었다. 이거이 얼마만의 기회냐. 그래 내가 너를 안 만나고 갈수가 있었겠니?

그러나 너는 이미 영결종천 해야 뿌렸고 니 이름자 앞에 고()자가 붙어 있으니 그 때의 내심정은 문자 그대로 필설로 다할 수가 없었더니라. , 너와 나는 이 세상 인연이 아니구나 하면서…….

그 허탈감을 안고 니 무덤에 가서 보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기라.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너 얼굴이 삼삼하이 떠오르는데 술 한 잔을 올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니…….

헌데 이 소문이라는 것이 무섭게 조정에 알려지자 천기(賤妓)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다고 조정중신들이 난리가 아인기라. 지넘들은 기생들을 끼고 살면 시리. 그래 나를 파직 시키겠다고 하는 것을 참았다 아이가. 아니꼬웠지만 공직을 수행하고 나서 미련 없이 관직을 던져 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주유천하를 하며 호걸남아로 살다가 40을 바라보던 나이에 생을 마쳤지.“

 

니가 지은 시를 보면 나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 것 같다. 헌데 호걸남아 답게 여성편력은 알아줘야 할 것 같더라. 한 때는 한우라는 기생한테 빠져 염문을 퍼트리고 댕기고 평양에 있는 기생 일지매를 보고 싶어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 환심을 산 뒤에 운우의 정을 나누었다는 소문은 이미 송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하하하, 맞다. 내느마 그 가시나들을 내 장기인 시를 써서 완전히 녹여 버렸다. 그런데 그 여인이 아무리 사랑스러운들 너만 하겠느냐. 아쉽게도 우리는 서로가 인연이 되지 못하고 니나 내나 둘 다 40이라는 깔닥고개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해 버렸으니 쪼매 아쉽다.”

 

그러게

그런데 너의 명성이 하도 유명하기에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실려 있을 랑가하여 디비 봤는데 눈 닦고 봐도 없더라.”

 

조선시대에 기녀는 천민이라 누가 왕조실록에 내 역사를 기록해 주겠느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야사(野史)에 보이 너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더라.

이덕형의 송도기이, 허균의 성옹지소록,

서유영의 금계필담, 김택영의 황진전. 임방의 수촌만록.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 등... 너의 출생 신분과 뭇사내들과의 교분관계를 기록해 놓았더구나.

그런데 야사에는 너를 황진사의 서녀라고 하는가 하면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던데 어떤 것이 맞느냐? “

하이고 남의 족보 검사까지 해요. 그래 내가 황진사의 딸이면 어떻고, 맹인의 딸이면 어떠니? 그런다고 나 황진이가 뭐 달라지는 것이라도 있냐?

이제보이 너거 애비가 제주목사를 지내고 머스마 니도 이조정랑까지 벼슬살이를 했다고 시방 나를 무시 하냐? 몇 년 전에 황진이란 드라마를 보이 내 엄마가 맹인으로 나오던데 사실 나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울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지. 그러나 성씨는 아비의 성을 따르는 것이 그시대의 전통 아니었나? “

오해는 말더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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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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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곰돌이 | 작성시간 24.06.09 오지랍도 넓네 그려
    조선팔도 이름난 기생은 다 품어보고도 모자라 죽어버린지 오백년이나 된 황진이를 못잊어 찾아 왔더란 말이요
    나야 요즘 잡지에 나오는 기집년하나 모 꼬시어 안달이 났는데 말이오
    내 술이나 한 판 살태니 기집 꼬시는거 좀 가르처 주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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