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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자작글

[단편] 달맞이꽃

작성자난폭한오라|작성시간24.09.23|조회수140 목록 댓글 1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삶을 절망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내가 주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분야를 탐구했던 데 비해

친구라는 녀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실현가능한 분야에 천착했던 거였지 않았나 싶다.

 

말하자면 녀석과 나는 그 나이에 비해 제법 진중한 염세주의자였던 셈인데,

다른 게 하나 더 있다면 녀석은 나와 달리 언제나 무척 쾌활한 생활태도를 견지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녀석이 염세주의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랬어도 나는 녀석을 사이비 염세주의자로 취급했다.

 

염세주의자는 안팎으로 충실하게 염세해야 한다는게 그때 내가 갖고 있던 철학이었다.

그게 얼마나 조잡한 잣대인지 나중에는 깨달았지만-_-.

내가 녀석에게 담배 피우는 방법을 전수받은 건

고등학교 1학년 초의 어느날 방과 후 학교근처 작은산에서였다.

그 때 피웠던 담배가 '청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자리까지 가게 된 경위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후 녀석이 자기 지인들에게 나를 ‘짝꿍’이라고 소개하고

그러는 바람에 한동안 이름 대신 짝꿍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걸 생각해 보면

우연히 반에서 짝꿍이 된게 계기였던 듯하다.


나무등걸에 앉아 제법 골초다운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녀석은 말했다.

이딴거 배워서 좋을거 하나 없다고....

 

난 그게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그런 소릴 하나 싶었다..

 

나 역시 좋을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염세주의자에게 담배는 필수품 일거라 여겼다.

 

첫 한 개비는 뻐끔이로 태워 없앴다.

야야, 담배가 아깝다!

 

녀석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이런 걸 왜 피우냐 하고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오기가 생겼다. 한 개비를 더 피워 물었다.

첫 모금부터 폐부 깊숙이 들여마셨다.

 

담배를 처음 피우는 사람들이 기침을 한다는 건 쌩거짓말이였다.

나는 기침커녕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반쯤 피우다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면서 쓰러져 버렸을 뿐.-_-;;

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빨개지다 노래지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기침을 한건 오히려 녀석이었다.

기침을 하면서 녀석은 키들키들 웃어댔다.

눈물이며 콧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너 같은 녀석 처음 본다며. 그렇게 담배를 배웠다.

 

그 당시의 일반적인 수식어로 녀석은 ‘까진 놈’이었다.

까진 놈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예비 폭력배로서 싸움질을 하고 다니던 놈들,

 

또 하나는 예비 제비족으로서 여자만 집적대고 다니던 놈들,

나머지 하나는 이도 저도 아니거나 둘 다이거나 하던 놈들이었다.

녀석은 글쎄,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다.


그래도 녀석은 까진 놈으로서 까진 놈다운 제 나름의 세상을 착실하게 구축하고 있었다.

먼저, 싸움을 곧잘 했다.

 

녀석이 주로 구사하는 싸움의 기술은 이른바 ‘아스발이’라는,

상대의 하체를 걸어 넘어뜨린 다음 올라타 줘패는 거였다.

팰 때는 무자비하게! 녀석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싸움의 자세였다.

 

아스발이 다음으로 잘 써먹는 게 소위 ‘하이방’으로서

상대가 자기보다 세 보이거나 여럿일 때 써먹는 기술이었다.

 

뭔가 했더니  다리 아래서 방울소리가 울리도록 달아나는 것이였다.

녀석은 운동회 때 반 대표로 나갈 만큼 달리기를 잘 하긴 했었다.

그랬어도 녀석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에겐 아는 여자가 무지 많았다.

그 시절의 사회문화적 관용도로 볼 때,

그리고 순수한 염세주의자의 길만 걷고 있던 내 눈으로 볼 때

녀석의 인맥은 정말 획기적이고도 파격적인 것 이상이었다.

 

어쩌다 녀석과 함께 번화가를 걸을라치면 나는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얼마나 아는 여자가 많던지 당최 목적지에 제대로 닿기가 힘들 정도였다.

또래의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학교 윗 학년, 아래 학년 여학생들에다가

심지어 화장 고운 다방 아가씨들, 술집 아가씨들에 더해

커피숍이며 술집 여사장님들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면,

 

10분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려 가곤 했다-_-.

녀석과의 번화가 동행을 그만둔 건 몇차례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였다.

아는 여자가 뭐 그리 많냐고 물을때마다 녀석은 말했다.

다..쓸데없어, 다... 무슨 뜻인지 알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녀석에겐 아는 남자도 많았다.

초중학교 동창생들은 물론이고 까진 놈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각종 다방, 술집, 음식점, 음악감상실의 디제이들과

온갖 폭력서클의 싸움꾼들이 이채로웠다.

 

디제이들은 대개 대여섯살 많은 남자들이었는데

대타가 필요할 때 그들은 녀석을 불렀다.

녀석이 그런 일을 싫다 않고 해준것은 얻어먹는 술도 술이었지만

나중에 그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기는 힘들었다.

음악에 대한 녀석의 조예는 나랑 견주어도 손색이 많이 날 정도였으니까-_-

 

그렇게 우리는 2 학년때 다른학교 학생들과 패싸움뒤에 10일씩 정학을 맞게되면서

그뒤 학교생활을 그만두게된 사건이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약 삼년이 흐른뒤 녀석을 다시 만날수 있었다.


그 즈음은 폭력서클이 유행처럼 결성되던 시기였다.

결코 크지도않은 도시에...

T파  N파, W파, 무슨무슨 파 라는 따위의 이름을 내걸고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도 W파와 N파는 싸움꽤나 했다는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런 서클에 많이들 가입하고 있던 친구들의 줄기찬 섭외를

녀석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는 얼굴들이 각 서클마다 고루 포진해 있다는 거였지만

정작 녀석이 그랬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녀석은 그날도 그랬다.

 

다..쓸데 없어, 다.... 그 역시 무슨 뜻인지 알수 없었다. 

 

담배 말고도 녀석에게 전수받은 것중 하나가 술이었다.

담배와 달리 술은 내가먼저 전수했는지도 모른다-_-

녀석과 첫 술자리에서 내 주량에 놀란 녀석이 떡 벌어진 입으로 그랬다.

 

"너 같은놈 처음 본다."

 

그럴 법도 했다.술 만큼은 녀석보다 내가 선배였으니까..

 

녀석의 단골집이었던 중앙시장통 닭내장탕 집에서 막걸리로 시작한 음주는

네 주전자를 넘기고부터 소주로 바뀌었다.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계속 막걸리로 달렸을 것이었다.

 

소주잔을 엎어 두고 막걸리잔으로 쓰던 대접에 소주를 부어 마셨다.-_-

 

그러나, 아무리 체질이라고 해도 술에 장사 없는 법.

더구나 소주 알콜도수가 25c인가였을 때였다.

다섯 병을 거의 비울즈음, 나는 결국 방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아, 정신은 말짱한데, 그런 것 같은데 왜 이리 몸이 말을 안 듣나.

마음 속으로는 몸을 일으켜 마지막 잔을 비우겠다고 줄기차게 되뇌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 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게슴츠레 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녀석의 모습이 내 눈속에서 흔들렸다.

잘못 들었나? 노랫소리가 물에 젖은듯 축축해지고 있었다.

 

잘못 보았나?

녀석의 뺨이 물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찬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 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녀석은 고개를 아래로 꺾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취한 눈을 가누며 녀석을 바라보았지만

더이상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눈을 감았다.

 

녀석과 나는 거기서 그렇게 잠에 빠져 있다가

주인 할머니가 흔들어 깨웠을 때에야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거리로 나섰다.

 

색햐 왜 처울고 지랄인데?

내가 묻자 녀석은 몰라 게색햐 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녀석 어머니의 애창곡이었고

술에 취하면 녀석은 그 노래를 부르며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저 색히 또 시작이네  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항상 쾌활한 표정 뒤에 감춰 둔 염세주의자의 얼굴을 녀석이 내보이는 건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녀석이 술에 취하면 <달맞이꽃>을 부르며 우는지는 모른다.

몇해 걸러 한번씩 만날뿐인지라 확인할길도 없었다.

그리고...그 뒤로 나도 이 노래를 좋아하고 술을 일잔 마시고

집에와서 기타를 잡고 애창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녀석 나이 23세때 끝내 조직이라는 세계에 발을 담근게..  

"첩" 의 자식이라는

지놈만의 굴레 때문이었는지도 알수없다.

 

다만, 만날 때마다 여전히 쾌활한 모습의 그가

진정한 염세주의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깨닫는다.

 

정작 사이비 염세주의자는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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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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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소슬바람 | 작성시간 24.09.24
    좋은글 즐겁게 감상 했습니다
    고운밤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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