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루 누대에 올라 / 정순준
죽서루 누대에 올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오십천을 바라본다
천년 세월도 저 물결 따라 흘렀을까
깍아지른 절벽 아래 맑은 물은 쉼없이
흐르는 데
머뭇거리며 살아온 내 삶은 아직도
강위에 서 있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귀 기울이면
옛 선비들의 시 한 수 묵객들의 풍류
한 자락이
푸른 잎 새 사이로 은은히 살아나고
한때는 나도
저 강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가고 싶었으니
세상은 모난 돌마저 둥굴게 만들어
이제는 흐름보다 머무름의 뜻을 먼저
알게 하는구나
노을은 강물 위에 내려 앉고
산 그림자 길게 누으면
지나간 날들의 웃음과 눈물도 물결따라
번져간다
죽서루에 기대고 선 저녁
문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 하나 떠오르고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 바람이 되어
대숲 사이로 지나간다
그리움이란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월이 깊어질 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오늘도
오십천은 말없이 뱌다로 가고
나는 죽서루에 올라
흐르는 물보다 먼저
흘러온 생을 바라본다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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