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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감동글

보름달, 2021년 3월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8.20|조회수65 목록 댓글 0

보름달, 2021년 3

 

 

 

그래잘 했어잘 했어!

난 지금도 너만 믿어 향단아!

 

꽁지머리 흔들며 어디 가니 향단아

뚱띵이 안방마님 심부름 가냐?

일부종사 굳은 절개 칼 같이 곧은 마음

어찌어찌 쓰는지 곁에서 잘 살펴 봐

누구는 아무한테나 술 따르고 수청드냐?

궐 밖으로 못 나가는 네 마음도 난 다 알아

형틀에 목 걸어놓고 피 나게 우는 이 보다

육자배기 한 가락이 얼마나 더 서럽겠냐

천천히 가 향단아배봉산 바람이 차다

바람 앞에 촛불이면 꺼진 불은 불 아니냐?

천금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내 사랑

귀 꽂이에 꽃송이 걸은 네가 나는 더 좋아

부엌에서 장독대안방에서 건넌방대청에서 뜨락으로

종제기 써먹듯이 향단아향단아하고 불러 쌌는디

광한루 그네 줄도 낮으로 싹둑 잘랐어 야

입 앙다물고 대답하지 말라니께?

난 네 맘 다 알아

 

오늘 따라 왜 그렇게 자꾸 울먹이는지

종년이라고 어느 대감이 구박하고 괄시하든?

어사출두니 서방님이니 요지가지 떠는 저네들

허리띠 풀어 보면 양반 표 뚱띵이 뿐

너야말로 치렁치렁 머루다래 산딸기랑게?

이목구비 다 마스크 썼다고 내가 너 모를 줄 알고?

기죽지 말고 깨금발 뛰지 말고 문틈으로 보지 말고

백신주사 맞으면 기차 타고 가마 타고 너 데리러 갈랑게

옷고름 단단히 매고 벙어리 시늉 하고 있어 알았지?

?

 

먹구름 써레질 하며 향단이가 가고 있다.

김문억 시조집<양성반응>중에서

 

 

 

어느 독자가 나에게 질문하기를 출신이 전라도냐고 묻는다

나는 충청북도 출신인데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

홍어 목포 보름달 호남평야 같은 전라도 이야기가 작품에서 많이 나오니까 출신을 그렇게 알았나 보지만

내가 말하는 전라도는 지역적인 전라도 이야기도 되지만 생각 한 바 의미가 있는 全裸島 라고 말하고 싶다

헐벗고 배고픈 외딴 섬이다. 즉 소외받아 춥고 외로운 지역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출발하는 작품의 기저에 그런 문학사상이 깊게 깔려 있는 것으로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 입장에서 말을 한다면 문학은 돈 없는 사람이 하는 학문이라는 것이 나의 확고한 인식이면서

더불어 시문학을 시작한 시기가 하필이면 군사문화가 시작되는 80년대 초였기 때문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러면 나에게는 왜 삐딱한 뼈 하나가 가슴 속에 박혀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막내로 태어나서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울 이라고 하는 대도시에 무작정 방목되면서 쌓여 온 기질 탓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늦은 가을 날 오후 방과 후였다.

담임 선생님이 학비(이름이 뭐였지? 공낙금?)를 내지 못하고 있는 마지막 학생 나에게 집에 가서 돈을 가져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입장도 매우 곤란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이웃집에서 꾸어 온 발간 색 돈 한 장을 들고 다시 학교로 뛰어서 갔다. 집에서 학교는 좀 먼 곳이다

선생님은 현관에 나와서 돈을 받아 들어가시고 나는 그 때부터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작은 벌판이 있는데 어둑어둑한 논둑길을 혼자서 뛰어 오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우대 참나무 숲 고개를 넘어 올 때는 정말 무서웠다.

가끔 그 날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날 이 후에 내 가슴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금파리 같은 뼛조각 하나가 자랐는지도 모른다

귀뚜라미 제목으로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작품도 많던데 나는 평화시장 미싱공들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들려오는가 하면 보름달 역시 광한루로 그네 타러 나가는 춘향이쯤으로 봄직한 일이지만 오히려 향단이의 외로운 나들이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한 모든 작품의 중심은 사상이나 진영 얘기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잘못되거나 부정한 일에  대한 정의로운 표출일 뿐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침소붕대되어  오해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이 70들어 무소유를 공부하면서부터 작품은 많이 반전되고 있다

아픔과 부정을 노래하기 보다는 긍정과 함께 감사하는 무소유를 배우고 있다

천국과 지옥을 같이 경험 하면서 이 세상은 한 번쯤 살아볼만한 좋은 곳이다. 

재수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부자가 못 된 중에 시를 쓰게 된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다.

2021년 3월에 뜬 향단이의 보름달은 지금도 구름밭을 써래질 하면서 훨훨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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