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향기 ♡ 감동글

오늘 혼자 있어요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3.08.23|조회수140 목록 댓글 0

오늘 혼자 있어요/김문억

 

낮에는 주로 나 혼자 있지만 확실히 혼자 있는 날이 또 따로 있다

그런 날은 마음에서 또 다른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낀다

혼자라는 것이 한 없이 좋으면서도 괜시리 마음까지 설레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무엇인가 일을 저지르고 싶다는 심사가 아니면 괜시리 들뜬 마음으로 여기 저기 안 하던 전화도 해 보게 된다. 무엇인가 좋은 징조가 있을 것만 같지만 부재불통이 대부분이고 지나고 보면 그 날이 그 날 같이 빈 쭉정이로 가는 날이 많다

어쩌다가 통화하는 목소리가 평소 보다는 좀 크게 나오는 것 이상으로 딴 일은 없고 기껏해야 이웃 집 만만한 동아리를 불러서 씁쓰레한 차 한 잔을 나눈다거나 거리낄 것 없이 막걸리 파티를 하는 정도다. 자신 있게 만들어 내는 부추 전 맛도 일편단심이어서 이제는 식상하게 되었고 뭔가 느끼하지 않고 칼칼한 맛을 낼 줄 아는 메뉴 하나쯤 개발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실천되지 않고 있다. 그 쪽도 시조 쓰듯이 오랜 기간 수련이 필요 할 텐데 갑자기 마구잡이로 무슨 안주거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맛 나는 무엇이 나올 리가 없다.

엉뚱하게 끊어지지 않고 줄줄이 나오는 그 공상 때문에 잠이 모자라는 경우가 흔한데 이렇게 한가한 날 릴리리 기와집도 한 채 올려 보고 허물어 보고 해 보면 딱 좋으련만 그런 공상도 도깨비가 물어 갔는지 멍멍하기만 하다. 공상이라는 검은 그림자도 귀신 닮았는지 벌건 대낮에는 얼씬도 안 한다.

얼마 전에는 너무 더워서 집안에서 입을 짧은 바지를 찾아보는데 마땅치가 않다. 젊은 시절에는 반바지도 입은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나이 들고부터 반바지를 입고 나가기가 싫어졌다.

양반치레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 값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문득 마누라가 침대에 벗어놓고 나가는 그 얼룩무늬 치마가 생각나서 찾아 입어 보았다. 치마가 바지 보다는 훨씬 입기도 편하고 벗기도 현하고 헐렁해서 더 시원할 것 같다. 마누라 키가 작은 편이라서 치마가 짧아 정갱이 아래서 그쳤지만  실내용으로는  상관이 아니었다. 

마누라 치마를 입고 내려다보고 돌아보고 거울 앞에도 가서 달라진 패션을 감상 해 보니 집 안에서 입기는 괜찮은 것 같다. 치마하나 몰래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마누라랑 더 친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편하기는 편하다

여자들이 앉을 때는 치마를 가운데로 여며 넣으면서 앉는 자세가 멋져 보이기도 했다

마누라 치마를 입고 몇 시간을 혼자 왔다 갔다 해 보면서 집 안에서 입기는 괜찮은 것 같아 내 것으로 치마를 하나 구입 해 볼까 하다가 혼날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그 뒤로는 회룡역 굴다리에 즐비하게 내 걸어 놓은 얼룩무늬 긴 치마를 볼 때 마다 눈빛이 더 밝아진다

 

밖에 비는 내리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 있는 날이라고 해서 무슨 유익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가거나 들어오는 일 없이 오늘은 전화기도 혼자다.

우산도 없이 비닐 봉다리를 들고 저 아래서 삐딱한 걸음으로 올라오던 그 분이 생각나는 날이다.

“저승도 중랑천이 있으면 술주전자 집도 있을 것이고 한 잔 하면서 또 시나 써야지 뭐!”

“초정선생 기다리고 있을랑게 많이 안 기다리게 혀”

혼자 있는 날 오시면 그 분이 하던 부질없는 말씀이다.

저승 가서 소설을 몇 편 더 썼는가  말씀으로 종일 비가 내리고 막걸리가 내리고 소주가 내리고 있다.  

 

혼자 있는 날이 좋다 해 놓고 나는 또 누굴 기다리고 있는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