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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좋은 시조3/서태수의 강이 쓰는 시

작성자고쿠락|작성시간24.02.06|조회수103 목록 댓글 0

강이 쓰는 시.-낙동강.415/서태수

 

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굽이마다 시 아니랴

긴 물길 두루마리에 바람으로 시를 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서태수의 강이 쓰는 시 전문

 

자유시가 나온 뒤부터 현대에 와서도 정형시에 대한 특장은 지금도 현재형이며

앞으로도 전통성이나 확장성에 대한 끝없는 논의가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급격하게 변모하는 사회문화의 다양성 속에서도 고수 되어야 하는 민족문학의 전통과

시조 미학의 특장성이 갖는 효율적 가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조는 태생적으로 노래를 뿌리로 갖고 있다 때문에 자유시 보다는 더 많은 음악적 리듬과 함께 형식구성을 근간으로 하는 율격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시와 시조를 구분해서 읽을 수 있는 극명한 조건이 된다.

거기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자양분은 작가의 천착으로 얻는 고도의 미학적 언어에 감동할 수 있고 매력을 느끼는 감미로운 은유다

시에서 은유는 직접비유 보다는 다양하면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의 품격을 한 층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그냥 비유가 아니다 작가의 내시경에 포착되는 매우 다양한 색상으로 떠오르는 언어예술의 극치다

그러면서도 아무하고나 소통 되어야 한다는 확장성을 염두에 둔다

채굴되는 언어를 어느 위치에 앉혀야 하는가에 따라서 조화로운 형식구성으로 독자와의 소통이 원할 해진다

그것이 작품의 주제나 소재 선택에 있어 시대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시조의 현대성에도 크게 영합하는 일이다

시조라고 하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보다 더 작품을 탐닉 하고자 할 때는 시조미학이 갖는 언어적 유희와 쾌락

그리고 전통적 형식이라는 이중적 장치 속에서 읽어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서태수의 ‘강이 쓰는 시’를 추천 해 본다

서 시인이 쓰는 낙동강 연재 시 415 수만에 만난 작품이다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 온 시가 오래도록 가슴에서 흘러가지 않고 출렁이고 있다

낙동강 연재 시를 500 수나 썼다고 하니 길게 누워서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만큼이나 작가의 호흡도 길고 지구력이 대단하다

우리는 흔한 말로 인생을 종종 강물의 흐름으로 비유하고 있다. 순행의 긴 몸짓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람과 구름 비 같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생살이도 엮어지기 때문이다

자연풍은 바깥에서 불어오지만 사람이 겪어야 하는 바람은 내 안에서 늘 같이 서식하는 동행자이기 때문에 수시로 사람을 펄럭거리게 한다

이 작품은 본인의 수필 집<조선낫에 벼린 수필> 이라고 하는 책 끝에 올라있는 글로 수필 작법의 교과서적 의미까지 포함한 다중성을 갖고 있다

이 시를 더 맛깔나게 읽자면 아무래도 수필쓰기 라고 하는 비유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수필은 강물의 긴 흐름이고 그것은 곧 인생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은 세월을 끌고 아래로만 내려가는 인생살이의 몸통이고 바람은 삶의 희노애락 물결을 일으키는 심상이며 도정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바람과 같이 더불어 살기 때문이다 어찌 수필작법 뿐이겠는가

모든 문예작품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 쓴다면 이는 자칫 신변잡기의 여기에 불과하지만

부서지고 꺾어지는 기쁨과 슬픔까지도 바람이라는 속내를 탐색 할 때에 얻는 작품이라야 한다는 말이다

외롭다거나 슬픔 따위가 결코 불행은 아니기 때문이며 속이야기가 없는 강물은 녹조현상으로 썩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강물의 생애가 모두 긍정적이다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흘러야 하는 까닭은 하구에 가서 삽을 씻으며 조용한 평화를 얻기 때문이다

글감이나 주제 제목에 비해서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역동적이다 그것은 시의 성공을 얻는 내시경의 강도 높은 시력詩力의 결과다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가구佳句다.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삶의 여정을 저렇듯이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수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생의 관조가 강물의 하구만큼 깊어졌기 때문이다

파도치며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의 언어를 바람의 붓놀림에 따라 서체로 표현한다는 일이야 말로 시조문학만이 갖는 특장이다

일필휘지 초서체로 형식구조 마저 휘감치고 넘어간 종장의 수려하고 장중한 맛이라니......

그것은 3장이라는 미적 형식 속에서 더욱 가능한 것으로 사물패의 역동적인 울림과 다르지 않다

언어의 균제미학에서 들을 수 있는 울림의 파장이다

작품은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한 숨 쉬고 있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그래서 ‘강이 쓰는 시’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지 않는다고 서운 해 한다

시조문학 이해가 부족하다거나 습작을 하는 이를 향한 외침이면서 간곡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ㅁ 달섬문학 제12집에서.-글: 김문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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