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김문억
석양은 호화로운 수의 한 벌 걸치고
관 속으로 누우면서 임종 삼매를 즐기고 있다
하관의 나팔 소리가 조용하게 꺼지고 있다
설핏 해 기울고 마음까지 컴컴해진다
씨 뿌림도 못해보고 탕진했던 세월은
목화씨 한 알 씨방도 몸 풀 곳이 없어라
내일은 또 무엇으로 해 하나를 띄우랴
서녘 한 번 못 가보고 중천에서 늘 사그라지던
그래도 작심삼일의 해 하나를 품을밖에.
-김문억 시조집<나 오늘 밥 먹었음1998선우미디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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