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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s And Overview of Colombian Music - 콜롬비아 음악의 기원과 개요

작성자해송.|작성시간24.05.11|조회수114 목록 댓글 0

Origins and Overview of Colombian Music  - 콜롬비아 음악의 기원과 개요

콜롬비아 (Cumbia, 쿰비아) 음악

 

라틴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또하나의 중요한 나라가 콜롬비아이다. 쿰비아는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전통음악 및 춤이며, 스페인어 원어 발음으로는 "꿈비아"에 가깝다. 콜롬비아 지역의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흑인적 요소, 그리고 스페인적 요소가 혼합되서 만들어진 음악으로, 혼종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그런데 지금 쿰비아가 활성화된 곳은 멕시코이다.

 

Rafaga - Noche De Estrellas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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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GPngYMkihI

 

콜롬비아 출신의 8인조 꿈비아 그룹 '라파가'의 2000년 작품. 별밤이란 의미의 이 노래는 콜롬비아 꿈비아 리듬이 가미된 월드 뮤직. 라파가는 콜롬비아 민속적인 음악인 꿈비아로 중남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봄바, 플레나 뮤직은 푸에토리코의 전통적인 댄스 리듬이다. 이 음악이 60년대 쿠바의 전통 댄스 리듬인 살사와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이 더해져 생긴 장르이다. 이 장르는 6.70년대 푸에토리코에서 큰 인기를 끈 후 90년대 후반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 마크 앤소니 등에 의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사


내 사랑, 밤이 푸르군요
우리 산책하러 나가요
하얀색 튤 드레스를 입어요
밝은 달과 어울리도록
이웃은 잠들었고 두 사람은
별들이 떠는 걸 바라보면서
함께 걸어요
내 사랑, 꿈을 꾸도록.

 
함께 공원으로 걸어요
같이 앉아서 거기서 얘기해요
우리의 달콤한 이야기, 맹세들
밤하늘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달리는 걸 보며, 두 사람은
푸른 밤하늘에 뜬 별이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달라고 바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언제까지나, 죽어서도

 
눈 아래
수많은 별들의
당신의 빛이 빛나게 하는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 껴안을 거예요
같은 사랑으로.

 

밤에 교회에서
이 아름다운 하늘빛 건물 아래
우리는 어김없이 입맞춤을 할 거예요
달콤한 평화 속에서

 

 

콜롬비아 출신의 8인조 꿈비아 그룹 '라파가'의 2000년 작품. 별밤이란 의미의 이 노래는 콜롬비아 꿈비아 리듬이 가미된 월드 뮤직. 라파가는 콜롬비아 민속적인 음악인 꿈비아로 중남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콜롬비아(Colombia)의 전통 춤 인 쿰비아와 바예나토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카리브 문화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 한다. 민속학자들에 의하면, 카리브문화가 아프리카를 원조로 하는 흑인 문화와 동일시될 수는 없지만, 쿠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그리고 아이티를 위시

 

한 안티야스 제도의 카리브 문화는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물라토(mulato)적 성격이 두드러진 반면, 원주민 문화는 전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콜롬비아, 파나마, 베네수엘라, 페루 그리고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는 카리브 문화는 흑인과 원주민의 결합체인 zambo가 mulato, mestizo와 여타 종족과의 공존으로 빚어진 문화여서 매우 의미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Colombia의 경우,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산간 문화에 막달레나 강과 같은 강이 교차하며 빚어

 

진 문화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의 낭만적 성격이 곁들여진 독특한 카리브 문화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콜롬비아에는 여러 곳에서 기원된 춤과 리듬이 산재해 있다. 즉, 안데스 지방에서는 강한 스페인 적인 요소로 인해 bambuco, sanjuanero, guabina 같은 리듬이 태동하며, 태평양 연안에서는 아프리카 조상의 색채가 강하게 배어있는 currulao, danza chocoana, caderona 등이 돋보이고, 동부 평원에서는 메스티소 색채가 강한 joropo, galer n, seis와 같은 리듬이 등장하며, 대서양 연안에서는 cumbia, porro 등과 같은 zambo와 mestizo 색채가 어우러진 리듬과 춤이 두드러진다.

 

쿰비아 Cumbia

삼바를 제외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듣는 남미 라틴 음악의 대부분이 쿰비아 라고 할 만큼, 쿰비아는 중남미 라틴 음악의 커다란 뿌리를 이루고 있다. 쿰비아(Cumbia)는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지역에서 유래된 음악 스타일이다. 전통적인 쿰비아 음악과 춤은 콜롬비아의 상징이다. 라틴 팝 가수 리키 마틴의 음악에서도 쿰비아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쿰비아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전통타악기 리듬과 유럽인들의 멜로디, 그리고 인디오음악이 혼합돼 완벽하게 재탄

 

생된 음악이다. 초기의 쿰비아는 보컬과 퍼커션으로만 구성돼 있었지만, 트럼펫과 트롬본, 색소폰 같은 관악기와 키보드 등 여러 현대악기들이 보태어져 대편성으로 발전한다. 특이한 점은 인디오들이 서양악기를 자신들에게 맞게 개조해 거친 소리를 내는 `플라우토 데 미요'란 클라리넷과, `가이타'란 날카롭고 높은 소리를 내는 피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Mariana Seoane & La Sonora Dinamita - Escándalo

(마리아나 서안느 & 라 소노라 디나미타 -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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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RFLv29K__o

 

 

1940년대 들어 쿰비아는 콜롬비아 도시중산층과 상류층의 대중적인 댄스 음악이 되었고, 이 시기에 클라리넷 연주자 루초 베르무데스(1912-1994)에 의해서 쿰비아는 미국의 빅 밴드재즈음악과 쿠바의 맘보가 혼합된 음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중산층을 위한 세련된 음악을 만들다보니 단순하고 부드러운 쿰비아의 원형이 파괴된 리듬을 만들어 냈다. 70년대 접어들어 쿰비아는 살사리듬과 합쳐져 다시 한번 새롭게 변모했다. 이 때의 쿰비아는 초기에 들을 수 있던 전통적인 엇박자 리듬 대신에 리드미컬한 피아노 반주를 반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쿰비아와 살사의 혼합은 호에 아로요 같은 뮤지션에 의해 보다 대중화됐다. 쿰비아의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여가수 토토 라 몸포시나가 꼽힌다. 그는 자신의 밴드를 구성해서 쿰비아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발생: 아프리카 흑인문화, 인디오, 백인문화 등 3가지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고 흑인문화로부터 리듬과 타악기에 영향을 받았다. 인디오 문화에서는 관악기 (수수대롱, 뿔나팔)와 멜로디부분에 영향을 받았고 백인 문화로부터 화성과 안무를 도입했다. 그러나 관악기가 토착 원주민들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Cumbia에 도입시킨 것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이었고 그 후에  인디오와 백인 사이의 혼혈인 메스띠소와 극소수의 인디오들이 연주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인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리듬부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요소들이 전적으로 어떤 특정한 문화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쿰비아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 신분으로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곳이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던 곳에서 태어났음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장소들은 흑인이 노예 신분으로 도착했던 항구 근방이었다. 따라서 대서양 연안에서 벌어졌던 성모 마리아(La Candelaria, Los Remedios, La Inmaculada)를 찬양하는 스페인의 종교음악 또는 원주민이나 흑인을 교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la Cuaresma, el Corpus Cristi, San Juan, Navidad과 같은 음악이 이들의 잔치와 뒤섞여 혼합된 음악으로 태동하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 식민 시대 때 해마다 2월2일에 카르타헤의 포파 언덕에서 개

 

최되었던 Calendaria 축제에서 쿰비아가 탄생되었다고도 전해지며, 의식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Magdalena의 El Banco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또 다른 설도 있다.쿰비아가 최초로 태어난 곳이 어디이든, 중요한 것은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산타마르타나 카르타헤나 근처인 콜롬비아의 카리브 연안에서 쿰비아가 태어났단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스페인 영향을 받았던 zambo 문화의 전통 춤으로, 바로 이것이 콜롬비아의 색깔이라는 점이다. 이 춤은 후에 Bolívar, Atlántico, Sucre, Córdoba, Magdalena, César 지역으로 유포되고 막달레나 강 연안과 안티오키아의 북부까지 퍼진다. 쿰비아는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변화를 겪지만, 악

 

사들 주위로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는 전통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종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축제동안에도 신분의 분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난 형태라 할 수 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더불어 노예제도가 사라짐으로써 귀족계급이 차지했던 단상은 음악가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쿰비아의 기능도 종교적인 성격에서 세속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되어 축제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며 즐기게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인디오들과 흑인들이 서로의 관습을 공유하며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음과 같은 춤의 주제와 직결된다.

춤: 원형으로 모여 한쪽방향으로 추는 일반형, Barranquilla 축제에서 추는 춤으로 두 줄로 길게 양쪽에 늘어서서 항상 앞을 향해 움직이며 추는 그룹 Grupo형, 가장 최근의 춤으로 El Banco 축제 때 추는 춤인 커플형 (Pareja), 그리고 실내에서 짝을 지어 자유롭게 추는 흐름형 (Reguero) 등이 있으며, 실제 중남미 각지에서 개인이 사사롭게 파티할 때에는 Pareja와 Reguero가 많이 쓰인다.

 

 

 Cumbia - Omar & Stella

(콜럼비아 - 오마르 &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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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RpquJSd25g

 

Cumbia

(멕시코 콜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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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ZOG8P4CJUE

 

안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남자의 율동은 흑인들의 춤을 빼 닮은 반면 여성의 율동은 인디오와 흑인 그리고 백인들의 춤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민속 음악학자들은 여성의 춤동작 중 허리와 히프의 움직임은 인디오의 것이 아닌 흑인들의 동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Cumbia의 원류가 어디에서 왔던지 간에, 초기 Cumbia를 발전시킨 주체는 노예제도 하에서 생활하던 흑인들과 토착 원주민들이었으며 나중에 유럽인들도 Cumbia의 발전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Cumbia는 Colombia의 혼혈문화를 보여주는 분명한 증인인 것이다.


음악: 4박자의 리듬으로 구성되어있다. 주요 라틴 음악 중 하나인 만큼 수많은 음악가들을 양산해냈으며, 대개 여러 로컬 음악가들을 모아 그룹으로 만들어서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 이외에도 셀레나 킨타닐야 페레스 (Selena Quintanilla Pérez), 쿰비아 킹스 (Kumbia Kings)와 아론 이 수 그루포 일루시온 (Aaron y Su Grupo Ilusión) 등이 유명하다. 멕시코는 쿰비아의 원산지는 아니나 콜롬비아 이외 지역에서 쿰비아가 가장 활성화된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파티현장 등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악이 쿰비아이며, 멕시코 내에서도 쿰비아 음악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쿰비아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현재는 작고했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레나 킨타니야 페레스 (Selena Quintanilla Pérez)도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El Tao Tao Control

(엘 타오 타오 컨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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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3FvpR2K3Y

 

발생지: 민속음악으로서의 Cumbia를 연구하면서 또 하나의 관심거리는 발생지에 관한 질문이다. jos  Barros씨 (la Piragua 라 삐라구아, Navidad Negra의 작곡가)와 같이 Cumbia가 콜롬비아 막달레나의 방꼬 지역에 거주하던 Pocabuy(뽀까부이) 인디언문화에서 탄생하였다고 보는 의견도 있고, 다른 민속 음악학자들과 음악가들 중에는 Santa Marta (콜롬비아 북부의 해안도시) . 근방의 Ci naga 씨에나가 나 Atl ntico 아뜰란띠꼬의 Barranquilla 바랑끼야 근처인 Soledad 솔레닫 또는 Cartagena 까르따헤나와 같은 지역들이 초기 스페인 정복자들과 식민지배자들이 콜롬비아에 들어왔던 항구 Santa Marta와 Cartagena들과 근접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 지역에서 Cumbia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Cumbia가 흑인과 인디오 문화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당연히 흑인들이 자유롭게 내면의 것을 표출할 수 있고 인디오들과 접촉할 수 있었던 흑인노예지역에서 발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흑인노예지역은 흑인노예가 도착한 항구들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록 Cumbia의 발생지를 어느 곳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Santa Marta나 Cartagena와 같은 카리브해 항구지역과 가까운 어느 곳에서 Cumbia가 발생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쿰비아의 기원

쿰비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콜롬비아 민속학자인 Delia Zapata Olivella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녀는 쿰비아가 "아메리카 칵테일의 종합판"이라고 말한다. 즉, 쿰비아는 우리 세 조상의 뿌리와 닿는 것으로, 이 세 요소는 각기 다른 농도로 혼합되어 있고 서로가 모여 콜롬비아라는 나라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쿰비아를 연주하는 악기의 요소만 살펴보아도 이것이 증명된다. 즉, 리듬을 주도하는 북(Tambores)은 흑인적 요소이다. 반면에 인디오 풍의 흐느끼는 소리에 가까운 애조의 피리는 멜로디를 담당하며, 이 피리는 가이타, 혹은 flautas dulces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춤을 추기 위해 입는 무도복과 노래는 스페인 풍이다. 그런

 

데 이 부분에서 강조할것은 초기의 쿰비아에는 노래가 없었고 단지 멜로디만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쿰비아가 여러 문화 혼합체임을 증명해준다. 혼성과 혼합이 결코 쉽게 용인된 것은 아니다. 특히 서구에서는 모든 면에서 순수한 형태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자연이 배태한 괴물이 아닌 이상, 혼합된 모든 것을 경멸해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쉽게 이해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혼합이 우리의 근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스페인 왕실은 문화적·인종적 통합에 반대했으며, 심지어는 인디오나 흑인들 간의 혼인도 막기 위해 아메리카의 흑인들에게 그 유명한 보호 지역이나 노예지역을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비록 이 지

 

역에서 상권을 확보하기 위해 16세기부터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있었기는 하다. 혹은 이 지역에서 복음화를 추진하기 위해 대서양 횡단에서 지칠 대로 지친 흑인들을 위해 간호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예가 바로 카르타헤나에 있던 성 라사로, 성 세바스티안 병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뒤에는 아메리카에 아프리카적인 요소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인디오들의 민간 신앙 전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콜롬비아 역사가 Nina S. de Friede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세기 식민지에서 노예들의 사도라 불리던 페드로 클라베르가 흑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장례식, 노래, 북을

 

치며 추던 춤은 민간 당국과 교회 당국 사이에 큰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북소리가 들리면 페드로 클라베르 신부가 노예들의 집으로 뛰어가 채찍을 휘둘러가며 망자에게 바치려고 준비한 제사상의 음식을 뒤엎은 후에 북을 압수해 갔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전쟁, 폭동, 도망자가 있음을 알리는 도구로 북을 사용했다. 그러나 실상 더 중요했던 것은 북소리가 신이나 성인들, 아니면 자신들과 닮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끄는 길, 혹은 다른 곳에 거하는 선한 영혼들이나 조상들이 있는 곳의 문을 여는 소리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어울리는 이들의 세계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약 100

 

년 전에 쿠바에서 일어난 사건이 말해주듯이, 아메리카 흑인 문화의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북이 지금도 콜롬비아와 아메리카에서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불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콜롬비아의 태평양 연안에서도 역시 아프리카에서 온 마림바와 같은 악기가 수난을 당하며, 이들 악기 각자에는 악마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다. 그 까닭은 바로 이 리듬이 신과 천사들의 영혼이 살아있는 천국의 문을 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Cumbia라는 단어가 사전에 정식으로 등장되어 있는 않는다는 사실은 이런 면에서 보아야지 않을까? 이에 대해 Alberto Londo o는 그의 새로운 저서 『춤추는 콜롬비아: 교육을 위한 춤 Baila Colombia: Danzas para la educaci n』에서 쿰비아에 대한 여러 가지 어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kumba: 아프리카 언어. 인류학자 Fernando Ortiz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2. cumbe: 아프리카 기원의 춤. 스페인 아카데미 사전에 의하면 스페인령 기네아의 흑인 춤이라고 등록되어 있다.

3. cumbancha: 쿠바에서는 소란 혹은 시끄러운 잔치를 의미한다.
4. cumbaiamba: 라루스 사전에 의하면, 오락을 뜻한다.

 

​Cumbiamba는 콜롬비아 북부 지역에서 쿰비아나 이와 유사한 춤을 추는 축제, 모임, 잔치의 뜻으로 사용된다. 바로 이 의미로 "오늘 밤에 cumbiamba 있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일반적인 축제에 해당한다. 또한 유명한 바랑키야 축제에서 한 줄로 길게 양쪽에 늘어서서 항상 앞으로만 직선으로 움직이며 춤추는 그룹 혹은 단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Cumbia가 어디서 태동했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

 

예 신분으로 일시적으로 머물렀던 곳이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던 곳에서 태어났음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장소들은 흑인이 노예 신분으로 도착했던 항구 근방이었다. 따라서 대서양 연안에서 벌어졌던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스페인의 종교음악 또는 원주민이나 흑인을 교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la Cuaresma, el Corpus Cristi, San Juan, Navidad과 같은 음악이 이들의 잔치와 뒤섞여 혼합된 음악으로 태동하게 되는 것이다.

 

 

Selena - Como La Flor

(셀레나 -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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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wZTgDjRLM0

 

스페인 식민 시대 때 해마다 2월2일에 카르타헤의 포파 언덕에서 개최되었던 Calendaria 축제에서 쿰비아가 탄생되었다고도 전해진다. 그것은 이 축제에 각지의 원주민과 흑인이 플루트나 북을 가지고 참가하며, 이들은 지위가 높은 특권층을 위해 만들어 놓은 단상의 주위에 자리 잡았다. 또한 카르타헤나의 노예들도 집 주인이 빌려 준 유럽식의 옷을 입고, 거들먹대는 주인가족과 함께 축제에 참석하였다. 이 지론에 의하면, 이렇게 신분이 다른 종족들이 자신들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전통 춤을 추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행해졌으므로 그 소리와 몸짓 때문에 대단히 혼란스러웠다한다. 특히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종교 의식 내에서 벌

 

어진 일이어서, 성스런 요소와 세속적 요소가 서로 결합되게 되며, 그로 인해 쿰비아는 의식적 요소와 살롱적 요소가 결합된 춤이라는 것이다. Magdalena의 El Banco에서 태어났다고 보는 또 다른 설도 쿰비아의 의식적 요소를 강조한다. 이 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 쿰비아는 원형으로 둘러서서 추는 춤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Chimilas 인디오들의 관습에서 유래된다. 즉, 추장이 죽으면, 관의 주위를 시계 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춤을 추었으며, 반대방향으로 도는 까닭은 죽음이 '되돌아 올 수 없는 여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설에 동조하는 사람이 바로 그 지역 출신으로 가장 훌륭한 쿰비아 작곡가로 추앙 받는 Jos  Barros이다.

 

Antonio Garc a도 이 설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례식에서, 특히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밤이 되면 모두들 모닥불 주위로 모인다. 사람들이 원을 형성하고, 그 가운데에는 새로운 생명의 상징인 임신한 여자를 세운다. 그녀는 은은하고 애조를 띤 피리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이 의식은 몇 시간이나 지속되고, 그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최고의 희열의 순간을 맞아야 끝이 났다. 쿰비아가 최초로 태어난 곳이 어디이든, 중요한 것은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산타마르타나 카르타헤나 근처인 콜롬비아의 카리브 연안에서 쿰비아가 태어났단 사실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스페인 영향을 받았던 zambo 문화의 전통 춤으로, 바로 이

 

것이 콜롬비아의 색깔이라는 점이다. 이 춤은 후에 Bol var, Atl ntico, Sucre, C rdoba, Magdalena, C sar 지역으로 유포되고 막달레나 강 연안과 안티오키아의 북부까지 퍼진다. 쿰비아는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변화를 겪지만, 악사들 주위로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는 전통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종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축제동안에도 신분의 분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난 형태라 할 수 있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더불어 노예제도가 사라짐으로써 귀족계급이 차지했던 단상은 음악가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쿰비아의 기능도 종교적인 성격에서 세속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되어 축제에 참

 

가한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며 즐기게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인디오들과 흑인들이 서로의 관습을 공유하며 통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음과 같은 춤의 주제와 직결된다. 쿰비아 춤의 테마는 '사랑의 정복'이라는 특징을 지닌 춤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남자는 흑인 종족을 대표하고, 여자는 원주민을 대표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당시에는 흑인 여자들이 숫자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였기 때문에, 흑인 남자가 가지는 유일한 선택권은 원주민 여자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사실 원주민 남자들이 자기네 여자들을 지키려고 경계했기 때문에 이것은 쉽사리 실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흑인 남성들은 춤을 통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원

 

주민 여자들에게 끊임없는 상냥함과 친절함으로 일관하며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그녀들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쿰비아의 전통 춤을 보면 그 동작과 부드러움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여자는 처음에는 항상 우아하고 자존심이 세며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만, 항상 여자의 주위를 맴돌며 남자가 보여주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집요함에 여자는 남자에게 미소와 더불어 요염한 교태를 부리게 된다. 중요한 것은 유연성에 있어서, 여자는 항상 부드러운 동작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전통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육체적인 접촉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잰걸음으로 춤을 추며, 몸을 이동할 때는 뒤꿈치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발은 함께 모으고, 무릎은 가볍게 굽히며 하체를 끊임없이 움직여야한다. 또한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시선은 항상 정면을 주시해야 한다. 몸은 오로지 앞으로만 이동시키며, 방향을 바꿀 때는 뒤꿈치를 축으로 하여 파트너의 접근을 경계한다. 상대가 너무나 가까이 다가오면, 여자는 자신을 촛불로 방어한다. 어떤 이들은 이 모습을 그리스도적인 스페인의 영향으로 보고, 다른 이들은 혼혈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본다. 이것은 주인과 노예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특히 노예는 조심스럽게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의식적 성격으로 본다면, 촛불의 출현은 쟁점의 대상이 된다. 쿰비아가 카르타헤나

 

에서 탄생되었다는 설을 지지하는 이론은 빛의 필요에 의해서 촛불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쿰비아 춤은 전통적으로 밤에 추는 춤이기 때문이라 한다. 처음에는 모닥불 주위에서 춤을 추었고, 이어서 횃불 주위에서 춤을 추다가, 나중에는 한 묶음의 촛불 주위를 맴돌며 추는 춤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반면에 불의 출현을 휴식 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자들도 있다. 이것은 흑인과 원주민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11 킬로미터에 달하는 성곽을 쌓다가 쉬는 시간에 불을 밝

 

히게 된 데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그들 중의 하나인 Delia Zapata Olivella는 "쿰비아가 돌과 관련 있다"라고 말한다. 즉, 초석을 놓던 성 아래에서 태어난 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간에, 촛불은 단순한 불이 가지는 가치에서 상징적인 교환의 의미로 변하게 된다. 촛불은 사랑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통하기도 하고,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춤에 초대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한편으로 Magdalena 주의 El Banco 주민들은 불과 관련지어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추장의 장례 때 손에 드는 횃불은 '저 너머의 빛'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촛불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1) 초상집에서 밤을 새운 것과 관련된 장례의 의미
2) 저 너머 세상과 불과 관련된 신성한 의미
3) 쿰비아가 밤에 추었고 과거에는 불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능적인 차원의 의미, 혹은 사용 가치 차원의 의미

4) 사랑의 표현으로 짝에게 바친다는 의미에서의 사랑을 상징한다는 의미

감정을 좀처럼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 쿰비아 춤은 언제나 연인 관계와 결부되어 있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어부의 작업이나 강에서 카누나, 찰루파, 피라과 같은 배를 타고 운송하던 것과 관련짓기도 한다. 이와 관련짓는 사람들은 뱃사공의 역사가 등장하는, Jos  Barros의 유명한 쿰비아인 "La piragua" "El alegre pescador", ""Navidad negra", Eduardo Arias의 "La luna y el pescador"를 예로 든다. 또한 Senen Palacios의 "La subienda", Enrique Bonfante Castillo의

 

"Soledad"은 그들의 애환이 주제로 등장한다. 물론, Trio los Inseparables의 "Soledad"처럼 역사나 전설을 주제로 한 것도 있고, 1928년의 바나나 노동자들과 United Fruit Company사이에 일어난 일을 주제로 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쿰비아 자체의 역사를 노래한 Mario Garde a의 "Yo me llamo cumbia"라는 노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쌀, 옥수수, 목화재배와 연관짓기도 한다.

 

 

 Aarón Y Su Grupo Ilusión - Te Vas​ 

(아론과 그의 환상 그룹 - 테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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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pfm5xClJkM

 

쿰비아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

 

1. El tambor macho: 큰북. 높이는 70센티미터 (흔히 치는 부분은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Gaita hembra와 멜로디를 이룬다.

2. El tambor hembra: 중간북이며 'alegre'라고 불린다. 높이는 30센티미터 가량 되며, 양쪽 끝 부분이 가죽으로 덮여있다. Gaita macho와 함께 리듬을 맞춘다. 

3. El bombo o tambora: 두 겹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북. 저음을 낸다.

4. La gaita o flauta dulce: 긴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수직으로 연주된다. 머리 부분은 말벌의 밀랍이나 숯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입을 대는 부분은 칠면조나 오리의 깃털로 만들어진다. 1개의 구멍부터 5개의 구멍까지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암컷' 혹은 '수컷'으로 불린다. 기원은 쿠나 원주민의 'tolos'와 코기 원주민의 'k isi'라고 알려져 있다.


5. La ca a de millo: 길이가 30센티미터 가량 되는 조그만 플루트. 비스듬히 연주된다. 끝부분에 4개의 구멍이 있으며, 다른 끝부분에는 길이가 3센티미터 되는 소형 진동판이 있다. 고대 크레타 섬에서 연주되는 플루트와 동일하다.


6. Maracas: 흔들면서 연주하는 악기. 악기 안에 들어있는 씨앗이나 돌, 혹은 마른 과일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흔들어야 소리를 낸다. 그러나 쿰비아가 발전함에 따라, 어떤 지역에서는 raspa 혹은 guacharaca로 또는 유럽이 원산지인 Arcode n으로 쿰비아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심지어 현대는 신서사이즈로 쿰비아를 연주하기도 한다.

 

Cumbia의 형태:

1) 전형적인 쿰비아: 원형으로 모여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며 춘다

2) Grupo 혹은 cumbiamba: Barranquilla 축제에서 추는 춤으로 두 줄로 길게 양쪽에 늘어서서 항상 앞을 향해 움직이며 추는 춤

3) Pareja: 가장 최근의 춤으로 El Banco 축제 때 추는 춤이다
4) Reguero: 실내에서 추는 춤으로 짝을 이루어 자유롭게 추는 춤, 등이 있다.


*** 한편 복장은 기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복장이 있다.


- 여자: 폭이 넓은 치마. 치마와 블라우스는 같은 색깔. 띠로 장식한다. 치마는 길고 넓으며, 치마의 밑 부분 가장자리를 띠를 대어 장식한다. 가슴 부분도 장식하며, 소매는 3/4정도이다. 소매 끝도 장식하며, 허리 부분은 생생한 빛깔의 꽃으로 장식한다. 남자로부터 선물로 받은 촛불은 오른 손으로 든다.


- 남자: 바지와 목의 깃이 높은 군대식 긴 팔 와이셔츠 착용. 어떤 지역에서는 플라넬로된 와이셔츠를 사용하기도 함. 남성에게 사용되는 장식으로는 여러 색깔의 배낭, sombrero sabanero, 목에 두르는 삼각형 모양의 얇은 수건, 어떤 지역에서는 guarda del machete를 더하여 장식하기도 한다. 민속학자 Delia Zapata는 쿰비아 춤을 이러한 복장으로 춘다면 땀은 나겠지만 체면은 살아있다고 한다. 최근의 이런 복장에 대하여 매우 좋은 호응을 얻고 있으며, 특히 남자의 허리 동작과 관련되어 성적으로 터부시 된 사회적 문화적인 어려움과 자연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바예나토 Vallenato

쿰비아와 마찬가지로 전통음악인 바예나토는 오늘날 콜롬비아 민속음악의 가장 순수한 형식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 역시 혼혈과 혼합으로 점철된 열대의 콜롬비아를 표현하고 있다. 바예나토 노래는 민속학자들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콜롬비아의 아주 특별한 지방에서 탄생했으며, 인종적·음악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지리적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시에라 네바다 남쪽 지역의 산지를 포함하며, 막달레나 강 오른쪽부터 펼쳐지는 지역과 과히라 남쪽 지역까지도 포함한다. 동쪽으로는 사막이, 북서쪽으로는 늪지가, 남쪽으로는 울창한 정글로 에워싸인 이 광활한 지역은 "육지안의 섬" 혹은 고립된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익히

 

알려진 메타포를 사용하지만, 일종의 마콘도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역의 핵심 도시였던 바예두파르나 - 1550년 스페인 인들이 우파르 혹은 에우파리로 알려진 추장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 인근의 모든 마을들은 일찍이 인종과 음악이 융합되었던 곳이다. 그곳은 치밀라 원주민 부족의 요람이었고,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치밀라 부족은 우리가 쿰비아의 의식적 기원에 관한 가정을 설명한 대목에서 보았듯이, 콜롬비아의 민속의 뿌리를 이루고

 

있었다. 음악을 몹시 사랑했던 치밀라 부족은 다양한 악기를 알고 있었고 (다양한 북과 피리, 마라카스와 심지어 현악기까지도), 응답송가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음악을 이용해 수많은 종교적 축제와 행사를 벌이곤 했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연구자들은 이 지역에 음악이 혼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정체성을 유지하고 인종 혼합과 유럽에서 건너온 기타나 아코디언과 같은 악기의 혼합을 보다 의연한 자세로 거부하던 알타 과히라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그래서 콜롬비아의 북부의 대도시 주민들은 이 고립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촌놈"이라는 경멸적인 말로 불렀던 것이다.

 

El Binomio De Oro De América - Olvídala

(미국의 황금 비노미야 - 잊어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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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ry3rgGlRUw


"바예나토"의 어원에 관해 살펴보자면, 콘수엘로 아라우호 데 몰리나는 이 단어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종종 "사회적 신분이 아주 비천한 남자나 여자, 혹은 매독의 희생양을 의미하며, 이것은 오랫동안 바예두파르 사람들을 괴롭힌 말"로써 부정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Ara jo, p. 50) 한편 이 말은 고립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바예나토 노래가 널리 퍼지자, 매독에 걸린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는 희석되고, 이 지역의 노래를 일컫는 말로만 사용되게 된다. 바예나토를 연구한 대부분의 민속학자들은 이 지역의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바예나토 노래는 목동과 음유시인에게서

 

태동된 음악이라는 점에 일치한다. 그들은 사랑의 슬픔을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저 지역을 오가면서 소식을 전하고 특정 지역의 일화나 전설적인 사건들을 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노래는 유럽 중세시대의 고대 로망스처럼 길거리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광활한 지역 내에서 영향권을 확대하면서 환경적인 이유로, 아주 특이하고 색다른 음조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가령, 바예두파르 지역에서 바예나토의 음은 아주 명랑하다. 반면에 쿰비아와 다른 아프리카 리듬의 영향을 직접 받았던 평원지역의 음조는 느리고 우수에 차 있다. 또한 이런 환경적 특성은 지역마다 다른 바예나토 학파를 낳았는데, 몇몇 학자들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 원조 바예나토(Vallenato a secas): 바예두파르와 그 인근 지역.
2. 남부 바예나토(Vallenato bajero): 막달레나 주와 아틀란티코 및 산타마르타 주의 남쪽 지역
3. 평원 바예나토(Vallenato sabanero): 수크레, 코르도바, 볼리바르 주의 북부 평원지역

이 세 가지 종류의 바예나토들은 네 가지 리듬을 가진다. 그것은 메렝게(merengue), 파세오(paseo), 푸야(puya)와 손(son)이다. 그러나 이런 바예나토의 구분은 내용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이다. 가령 원조 바예나토는 4행의 연들로 구성되지만, 남부 바예나토는 7행과 5행의 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원 바예나토는 불규칙적이다. 이미 말했듯이, 바예나토는 군중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방랑가수에게서 탄생한 음악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그것은 듣기 위한 것이지 춤추기 위

 

한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1940년대와 50년대의 콜롬비아 음악사에서도 확인된다. 이 시기에 78회전 디스크로 처음으로 바예나토를 녹음하기 시작했으며, 전국에 라디오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한 사람들은 콜롬비아 내륙지방 사람들이다. 그것은 바로 바예나토가 태어나고 발전된 곳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행위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정통한 연구자들이 '바예나토의 가장 성스러운 악기'(아코디언, 바예나토 박스, 과라차)가 구

 

성되기 이전에, 기타는 아코디언이 들어오기 오래 전부터 평원과 산지를 떠돌아다니던 음유시인이 즐겨 사용한 악기였다는 사실도 강조해야 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바예나토 음악에 끼친 유럽의 영향은 아코디언(혹은 기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예나토 노래의 운율이나 음유시인의 전통을 이어받은 시적 형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전통 속에서 아코디언이나 기타를 연주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시를 노래한 사람들이었다. 이 점에서 남의 작품을 노래한 중세의 가수(juglares)와는 차이를 지닌다. 이런 유럽 전통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1) 많은 노래 속에는 작곡가나 작사가의 이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이름을 오래 지속하기 위함이엇다.

(2) 그 노래 속에서 언급하는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사람들이다.(추상적인 인물들이 난무하는 궁정의 시와는 반대다)

(3) 특정 지역의 민중 언어를 보존하고 전파한다. 그것은 중세에 로망스 언어에서 일어났던 현상과 동일하다.


주제적 측면에서 '원조 바예나토'로 알려진 학파는 구전 전통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준다. 가령 아주 소박한 노래 가사 속에서 깨이지 못한 음유시인들의 장난과 기지와 노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반면에 서술적·묘사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사실주의적 작품은 그 지역의 요리나 최근의 정치적 사건들뿐만 아니라, 흉작이나 이웃들끼리의 싸움과 같은 실제 민중들과 관련된 것들도 이야기한다. 이런 종류가 형식적으로 가장 세련된 바예나토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로는 레안드로 디아스Leandro D az와 라파엘 에스칼로나Rafael Escalona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과 다른 두 개의 종류가 더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음유시인의 마음과 기분 상태를 표현하는 낭만적 바예나토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음유시인들이 발전시킨 현대적인 바예나토인데, 그들은 현대의 문제와 블랙 유머 심지어는 사회 저항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산탄데르 두란Santander Dur n, 니콜라스 마에스트레Nicol s Maestre, 아르투로 몰리나Arturo Molina를 들 수 있다.

 

 

Los Diablitos - Los Caminos De La Vida

(작은 악마 - 삶의 길)

 ▼

https://youtu.be/5L9itEadUCE

 

 

가사

 

인생길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Los caminos de la vida no son como yo pensaba,

내가 상상한 대로는 내가 믿었던 것과는 다르다
como los imaginaba no son como yo creía

인생의 길은 걷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Los caminos de la vida son muy difícil de andarlos

걷기도 힘들고 나가는 길도 찾을 수가 없어요
difícil de caminarlos y no encuentro la salida

인생은 다를 줄 알았는데
Yo pensaba que la vida era distinta

나는 어렸을 때 믿었어요
Cuando estaba pequeñito yo creía

어제처럼 쉬웠던 일
Que las cosas eran fáciles como ayer

우리 착한 할머니가 열심히 노력하고 계셨다고
Que mi viejita buena se esmeraba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줘서
Por darme todo lo que necesitaba

그리고 오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깨달았습니다.
Y hoy me doy cuenta que tan fácil no es

우리 아줌마는 이미 피곤하니까
Porque mi viejita ya está cansada

나와 내 동생을 위해 일하기 위해
De trabajar pa´ mi hermano y pa´ mi

이제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Y ahora con gusto me toca ayudarla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Y por mi vieja, luchare hasta el fin

그녀를 위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Por ella lucharé hasta que me muera

그리고 나도 그녀를 위해 죽고 싶지 않아요.
Y por ella no me quiero morir tampoco

내 늙은 여자가 죽게 해주세요
Que se me muera mi vieja

그런데 어쩌지 운명이 이렇다면
pero que va, Si el destino es así

인생길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Los caminos de la vida no son como yo pensaba,

내가 상상한 대로는 내가 믿었던 것과는 다르다
como los imaginaba no son como yo creía

인생의 길은 걷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Los caminos de la vida son muy difícil de Andarlos

걷기도 힘들고 나가는 길도 찾을 수가 없어요
difícil de caminarlos y no encuentro la salida

인생은 갑자기 끝나야 한다는 걸 안다
Uno sabe que la vida de repente ha de acabarse

그리고 너무 늦었으면 좋겠어
y uno espera que sea tarde

이별이 오길
Que llegue la despedida

친구가 나에게 장로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말했어요
Un amigo me decía recompensare a mis Viejos

그들이 나에게 준 양육에 대해
por la crianza que me dieron

그리고 인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y no Le alcanzo la vida

그러므로 내가 하늘에 계신 나의 하나님께 구하노니
Por eso te pido a ti mi Dios del cielo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Para que me guíes al camino correcto

나의 예쁜 노부인을 보충하기 위해
Para a mi viejita linda compensar

그 괴로움의 바다를 잊도록
Para que olvide ese mar de sufrimientos

그리고 그녀에게서 모든 고통이 제거되기를 바랍니다
Y que de ella se aparte todo el tormento

우리를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지
Que para criarnos tuvo que pasar

예쁜 아줌마, 날 이해해야 해
Viejita linda tienes que entenderme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No te preocupes, todo va a cambiar

엄마 볼 때마다 너무 괴로워요
Yo sufro mucho madrecita al verte

가난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Necesitada, y no te puedo dar

가끔 무력감을 느껴 울기도 해요
A veces lloro al sentirme impotente

너에게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Son tantas cosas que te quiero dar

그리고 나는 쉬지 않고 싸울 것이다
Y voy a luchar incansablemente

왜냐하면 당신은 더 이상 고통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Porque tú no mereces sufrir más

인생길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Los caminos de la vida no son como yo pensaba,

내가 상상한 대로는 내가 믿었던 것과는 다르다
como los imaginaba no son como yo creía

인생의 길은 걷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Los caminos de la vida son muy difícil de andarlos

걷기도 힘들고 나가는 길도 찾을 수가 없어요
difícil de caminarlos y no encuentro la salida

 

 

바예나토 음악의 전파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특히 바예나토 파란다(parranda vallenata), 피케리아(piquer as), 콜리타스, 그리고 이주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파란다는 바예나토를 듣기 위해 조직된 모임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파티와는 달리 춤을 추지 않는다. 최초의 파란다는 19세기 말 혹은 20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석자들은 아코디언이나 기타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음유시인을 바라보면서 원형으로 둘러앉았다. 이런 행사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바예나토 박스와 과라차 그리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들을 대동한 가수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면서 하룻밤이나 여러 날 동안 계속되기

 

도 한다. 한편 피케리아에서도 춤을 추지는 않는다. 이것은 민속풍의 바예나토가 유행하던 시대는 각광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이것은 가수들끼리 서로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으면서 말싸움하는 행위로,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행해진다. 그러면서 얼마나 즉흥적으로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지, 대답을 얼마나 멋지게 하는지, 얼마나 적당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그리고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피케리아를 통해 많은 바예나토 가수들이 유명해졌

 

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즉흥적으로 고안해 낸 가사들은 거의 보존되어 있지 않다. 이런 피케리아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은 1938년경에 에밀리아노 술래타Emiliano Zuleta와 로렌소 모랄레스Lorenzo Morales의 말다툼이다. 이것은 카를로스 비베스Carlos Vives의 목소리로 전 세계에 유명해진 "차가운 물방울"(이 말은 말다툼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라는 바예나토 노래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그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자.

 

 

 

​Emiliano Zuleta Baquero - La Gota Fria

(에밀리아노 술레타 바케로 - 식은 땀, Original )

 ▼

https://youtu.be/cRAMeMKAxQ8

 

가사

 

그날의 모랄리토를 기억하라
Acordate Moralito de aquel día

당신은 우루미타에 있었고 멈추고 싶지 않았다는 것
Que estuviste en Urumita y no quisiste hacer parada

당신은 아침에 떠났어요
Te fuiste de mañanita

같은 분노일 텐데
Sería de la misma rabia

아, 아침에 떠나셨군요
Ay, te fuiste de mañanita

같은 분노일 텐데
Sería de la misma rabia

내 노트에는 광범위하다.
En mis notas soy extenso

아무도 나를 고쳐주지 않아
A mí nadie me corrige

내 노트에는 광범위하다.
En mis notas soy extenso

아무도 나를 고쳐주지 않아
A mí nadie me corrige

로렌조와 놀아요
Para tocar con Lorenzo

내일 토요일, 성모의 날
Mañana sábado día 'e la Virgen

로렌조와 놀아요
Para tocar con Lorenzo

내일 토요일, 성모의 날
Mañana sábado día 'e la Virgen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오 사기는 날 받아들이지 않아
Ay Morale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는 날 데려가지 않아
Moralito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어떤 문화,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e cultura, que cultura va tener

Lorenzo Morales 같은 Yumeca 흑인
Un negro yumeca como Lorenzo Morales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e cultura va tener

카르도날레에서 태어났다면
Si nació en los cardonale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e cultura va tener

카르도날레에서 태어났다면
Si nació en los cardonale

모랄레스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Morales miente a mi mama

단지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Solamente pa' ofendé

모랄레스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Morales miente a mi mama

단지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Solamente pa' ofendé

그 사람도 기분이 상하도록
Para que él también se ofenda

이제 나는 그녀의 이름을
Ahora le nombro la dél

그 사람도 기분이 상하도록
Para que él también se ofenda

이제 나는 그녀의 이름을
Ahora le nombro la dél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오 사기는 날 받아들이지 않아
Ay Morale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는 날 데려가지 않아
Moralito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 모랄리토는 믿었다
Moralito, Moralito se creía

그 사람이 나를 이길 거라고, 그 사람이 나를 이길 거라고
Que él a mí, que él a mí me iba a ganar

그리고 그가 내 연주를 들었을 때
Y cuando me oyó tocar

차가운 방울이 떨어졌다
Le cayó la gota fría

그리고 그가 내 연주를 들었을 때
Y cuando me oyó tocar

차가운 방울이 떨어졌다
Le cayó la gota fría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것을 공유했습니다
Y al cabo él la compartía

슛이 잘못됐어
El tiro le salió mal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것을 공유했습니다
Y al cabo él la compartía

슛이 잘못됐어
El tiro le salió mal

로렌조 미구엘을 위해 강철의 반격을 가져오겠습니다
Yo traigo un recao' de acero para Lorenzo Miguel

로렌조 미구엘을 위해 강철의 반격을 가져오겠습니다
Yo traigo un recao' de acero para Lorenzo Miguel

그 사람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대했어요
Él me trató de embustero

그리고 그 사람은 더 거짓말쟁이야
Y más embustero es él

그 사람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대했어요
Él me trató de embustero

그리고 그 사람은 더 거짓말쟁이야
Y más embustero es él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포드가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오 사기는 날 받아들이지 않아
Ay Morale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는 날 데려가지 않아
Moralito a mí no me lleva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Porque no me da la gana

 

 

Carlos Vives - La Gota Fría (1993)

(카를로스 비베스 - 더 콜드 드롭)

 ▼

https://youtu.be/Nmb80HXWsFQ

 

 

가사

 

그날의 모랄리토를 기억하라
Acordate Moralito de aquel día

당신이 우루미타에 있었다고
Que estuviste en Urumita

그리고 넌 파티하고 싶지 않았지
Y no quisiste hacer parranda

당신은 아침에 떠났어요
Te fuiste de mañanita

같은 분노일 텐데
Sería de la misma rabia

당신은 아침에 떠났어요
Te fuiste de mañanita

같은 분노일 텐데
Sería de la misma rabia

내 노트에는 광범위하다.
En mis notas soy extenso

아무도 나를 고쳐주지 않아
A mí nadie me corrige

내 노트에는 광범위하다.
En mis notas soy extenso

아무도 나를 고쳐주지 않아
A mí nadie me corrige

로렌조와 놀아요
Para tocar con Lorenzo

(내일 토요일, 성모의 날)
(Mañana sábado, día 'e la Virgen)

로렌조와 놀아요
Para tocar con Lorenzo

(내일 토요일, 성모의 날)
(Mañana sábado, día 'e la Virgen)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칼집이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칼집이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오, 모랄레스는 날 데려가지 않아
Ay, Morales a mí no me lleva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는 날 데려가지 않아
Moralito a mí no me lleva

(기분이 안 좋으니까) upa
(Porque no me da la gana) upa

어떤 문화,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é cultura, que cultura va a tener

로렌조 모랄레스 같은 추메카 인디언이요?
Un indio chumeca como Lorenzo Morales?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é cultura va a tener

만약 그가 카르도날레에서 태어났다면?
Si nació en los cardonale'?

어떤 문화를 갖게 될까요?
¿Qué cultura va a tener

만약 그가 카르도날레에서 태어났다면?
Si nació en los cardonale'?

아, 어빠
Ay, upa

모랄레스, 우리 엄마는 거짓말을 해요
Morales mienta mi mama

단지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Solamente pa' ofender

모랄레스, 우리 엄마는 거짓말을 해요
Morales mienta mi mama

단지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Solamente pa' ofender

그 사람도 기분이 상하도록
Para que él también se ofenda

이제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Ahora le miento la de él

그 사람도 기분이 상하도록
Para que él también se ofenda

이제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Ahora le miento la de él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칼집이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그 사람이 나를 데려가거나 내가 그를 데려가거나
Me lleva él o me lo llevo yo

(칼집이 끝나도록)
(Pa' que se acabe la vaina)

오, 모랄레스는 날 데려가지 않아
Ay, Morales a mí no me lleva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Porque no me da la gana)

모랄리토는 날 데려가지 않아
Moralito a mí no me lleva

(기분이 안 좋으니까) Hey
(Porque no me da la gana) jey

모랄리토, 모랄리토는 믿었다
Moralito, Moralito se creía

그 사람이 나를 이길 거라고, 그 사람이 나를 이길 거라고
Que él a mí, que él a mí me iba a ganar

그리고 그가 내 연주를 들었을 때
Y cuando me oyó tocar

차가운 방울이 떨어졌다
Le cayó la gota fría

그리고 그가 내 연주를 들었을 때
Y cuando me oyó tocar

차가운 방울이 떨어졌다
Le cayo la gota fría

결국 공유했어요
Al cabo e' la compartía

(슛이 잘못됐어요)
(El tiro le salió mal)

결국 공유했어요
Al cabo e' la compartía

(슛이 잘못됐어요)
(El tiro le salió mal)

이런
Upa

 

 

콜리타 즉, 상류층의 결혼식이나 세례식 파티의 끝은 바예나토를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 즉 유럽의 것이 아니면 악기건 음조건 무조건 거부하던 계층에 널리 퍼지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들이 즐기는 동안, 그 공간(즉 부엌이나 마당)에서 하인들은 처음에는 북과 과라차를 가지고 축제 분위기에 동참했지만, 콜롬비아인들이 아코디언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장 대표적인 악기로 만든 이후부터는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런 악기들의 소리에 맞추어 그 지방의 역사나 일화

 

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큰 거실이나 살롱에서 파티가 끝나면, 부자들은 '콜리타'라는 것으로 하곤 했다. 이것은 하인들과 서로 뒤섞여 그들의 분위기 속에서 파티를 연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예나토가 널리 보급되고 여러 종류가 생기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이주에 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프로빈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유나이티드 프루츠 회사가 자리잡고 있던 현재의 막달레나 주인 바나나 농장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프로빈시아의 노래를 들었고, 나중에는 유나이티드 프루츠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자신들의 땅으로 그 노래를 가져갔던 것이다. 바나나 회사가 파산한 후 바예두파르 지역에는 면화를 대량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 효과는 바나나 농장과 같았다. 즉, 면화 재배기와 수확기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나중에는 바예나토의 리듬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색채에 맞게 바예나토를 변형시킨다.

 

 

Binomio De Oro - Niña Bonita

 ▼

https://youtu.be/DR6ED6lvkb4

 

 

악기들

*** 바예나토의 전형적인 악기들은 다음과 같다.

아코디언: 비엔나에서 유래한 악기. 그것이 어떻게 콜롬비아로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악기를 처음 본 사람들은 1850년경이었으며, 그 형태는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음을 냈지만 음이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3줄로 나열된 31개의 버튼으로 고음을 내며, 아래의 두 줄에 있는 12개의 버튼으로는 저음을 낸다.

바예나토 박스: 아프리카 기원의 타악기. 사슴이나 동물 가죽으로 2중의 가죽으로 만든 북이 발전한 것이다. 또한 스틱으로 치는 스페인식이 아니라 아프리카 식을 따라 손으로 치며 연주한다. 재료의 발전으로 현재의 바예나토 박스는 아주 작은 북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판이 하나 있고, 쇠테가 둘러져 있어서 연주자의 취향에 따라 판을 늘일 수도 있고 조일 수도 있다.

 

과라차: 아메리카 기원의 악기이며, 치밀라 원주민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곤 했다. 이 악기는 '플라욘 사탕수수'라고 불리는 나무줄기로 만든다. 이 사탕수수줄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작은 흠을 내고, 그 위에 한쪽 끝에 철사가 달린 나무 조각을 비비면서 소리를 낸다. 과라차의 음은 과차라카 새의 소리와 흡사하게 긁히는 소리가 난다. 결론적으로, 콜롬비아라는 국가 안에 지리적, 인종적, 정치적, 행정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쿰비아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콜롬비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편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쿰비아는 우리나라 혼혈의 상징이며, 소박한 형태, 순수한 소리의 고귀함으로 특징 지워

 

지는 이 전통 춤이 음악의 영역을 금속과 신서사이저 악기가 지배하는 오늘날, 국제무대에서도 각광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바예나토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오늘날 이 음악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또한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바예나토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콜롬비아 민속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1968년에 '바예나토의 전설 축제'를 창립했으며, 이 행사에는 해마다 수 천 명의 관중들이 몰려든다. 이 음악 덕택에 콜롬비아의 아코디언 연주자들은 세계 음악제에서 여러 번 일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Kuisitambo a Ritmo de Galta

 ▼

https://youtu.be/vc7Mb8cZBAM


Gaita 란 악기는  밀랍과 오리깃털로 만든 head를 사용하는 긴 뿔피리이다. 5개의 운지공을 사용하여 멜로디를 연주한다. 콜롬비아의 전통 리듬인 쿰비아 리듬을 연주 하고 있는 영상은 가이타란 악기와  탐보란 이름의  북, 그리고 양철 덩어리 처럼 생긴 Guache 또 라틴 연주에 빠짐없이 등장 하는 마라카스( 곤봉처럼 생긴것) 등으로 연주를 한다. 아프리카 노예의 리듬과  남미 인디언  그리고 백인 정복자 들의 합성된 콜롬비아 전통리듬인  쿰비아이다. Cumbia가 흑인과 인디오 문

 

화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흑인들의 내부로 부터 터져 나오는 내면 표출  그리고 인디언 과의 교화 일것이다. 콜롬비아 항구도시인  콜롬버스가 찾아낸 Cartagena , Santa Marta 같은 카리브해 항구지역과 가까운 어느 곳에서 Cumbia가 발생했다는 설이 분명하다. 이 영상은  젊은 백인도 있고, 물라토도 있고, 메스티조도 있다 그들이 연주하는 전통이라 묘한 감정이 든다. 가이타(gaita) 란 악기는 동유럽 불가리아, 그리스, 터키, 마케도니아 등등 에서 연주되는 양 창자로 바람통을 만든 악기와 영문 표기 이름이 같은 악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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