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 / 김별
나무가 있지요
은행나무 호두나무 능소화 때죽나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사는
콩배나무 화살나무 조팝나무 족제비싸리
돌틈마다 가득한 영산홍은 꽃이 졌지요
잔디밭 가에는 멍석딸기가 많기도 하고
종가시나무 곁에는 늠름한 층층나무 섰지요
그리고 합혼목이라고 불리는 자귀나무 있지요
집중 호우 끝에 십 년 만의 더위라고
사람들은 미리부터 야단법석으로
붕붕거리며 매연을 남기며 떠나고
텅 빈 단지 내에는 나무들만 죄다 더위에 지쳐
개 혓바닥처럼 이파리를 늘어트리고 오수에 취했는데
잠결에 뒤척이던 자귀나무
어쩌다 지나는 홀씨만한 바람에 눈을 뜰 때에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하물이 있어
얼떨결에 가지를 뻗어 받고 보니 이럴 수가
자귀나무가 받은 것은 나비 같은 소녀
조금 전에 제 그늘 밑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뿌리에 쉬... 까지 하고 간
B동 1512호 아빠 없이 사는 다섯 살 계집애 나래가 아닌가요
코를 골던 이씨가 달려오고
뒤늦게 투덜투덜 경찰이 오고
오리무중이던 엄마가 영문도 모른 체 빨간 입술로 나타났지만
아이는 팔꿈치만 살짝 긁히고 어디 하나 다친 데가 없었네요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하늘이 도왔다고
혀를 차며 곧 그늘을 찾아 흩어졌고
잠시 후 따가운 매미 울음 속에 다시 이어지는 가마솥더위
9시 뉴스에는
마이크를 잡은 기자 뒤로
붉은 꽃을 든 자귀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었지요.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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