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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 시인방

땅끝 마을에서 보길도를 가다

작성자김별|작성시간14.03.04|조회수112 목록 댓글 13

땅끝 마을에서 보길도를 가다 / 김별

 

땅끝 마을에서 보길도를 간다

선착장에 배안에

차도 사람도 장날처럼 풍성하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이 안개 자욱한 바다를

배는 길을 내며 달린다

굉음 속에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풍선이라도 탄 것일까

소녀들은 인어를 닮아 있다

노인들은 백 년은 살 것 같이 홍안이다

아이들은 보물지도를 들고 미지로 떠나는 탐험가 같다

40분에 출발한다는 배가 10분이 더 늦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이 없다

멍텅구리배에 굴삭기며 방축돌을 싣고

손을 흔드는 인부들의 검은 얼굴에

하얀 이가 드러나는 웃음이 있을 뿐 피로가 없다

 

바다 위에 흰 꽃잎처럼 뿌려놓은 끝없는 부표들

이따금 마주치는 배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안개가 걷히는 곳에는 아득히 뜬 기선

`장보고호`에는 정말 장보고가 탄 것인지도 모른다

객실은 비어 있고 문까지 걸어놓았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슬픔은 없다

눈은 빛나고 모두가 손을 꼭 잡은 행복 행복 행복한 얼굴들뿐이다

 

아! 그 행복한 얼굴들 틈으로

가슴 가득 해일이 되어 몰려드는 그리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람을 떠올리다가

가만히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잠시 눈앞이 아득해져

눈물 참고

부서지는 물보라에 마음을 던져보다가

나도 그만 뱃사람이 되어 먼 항해의 길을 떠나고 싶었다

 

세상과의 경계를 지나 어느 먼 동화의 나라에라도 온 것일까

배가 도착하고

노자도 없이 낯선 먼 길을 지쳐 돌아 온 나그네처럼

갑자기 몰려드는 시장기

섬아낙이 칠이 벗겨진 소반에 내온 늦은 점심을

황석어젓갈로 먹었다

잡곡을 섞은 밥과 묵은장에 몇 가지 밑반찬이 전부건만

정은 듬뿍 맛은 가득

어느 재벌의 식사가 이 반만이나 하겠는가

마을에 거리에 미역냄새가 난다

고기 말리는 냄새가 난다

숲에서도 바다 냄새가 난다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안식과 새 삶을 얻듯이

도시를 버리고 아득히 달려 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섬 어느 바다로 흩어져

연어의 자유를 얻었는지 모른다

더러는 어부와 인어가 되었는지 모른다

몇몇은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 속 환상의 섬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아! 그러나 아름다움은 정녕 무지개 같은 건가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다시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고단한 내 삶도

수줍은 소녀가 낯을 가리는

포구 어디쯤에 정박한 채

소라의 노래를 들으며

섬처럼 머무를 수는 없겠느냐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저 별처럼 꿈꿀 수는 없겠느냐

 

섬아!

너는 바람을 맞으며

파도에 깎이며

나를 맞아

잠시 잡은 손으로 다는 못 풀 마음을 달래고

기약 없이 다시 보내기 위해

여기 이렇게

그 멀고 험한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떠나야 할 배표를 끊고

방파제에 앉아 시를 쓴다

아득바득 살아온 세월 동안 몇 번이나 나를 들여다보았던가

여기에 앉아 돌아보거니

지난 삶이 순간으로 끝나버린 물거품이지만

이루지 못한 다짐조차 아름답구나

 

나를 내려놓았던 배는 어느 바다를 돌아

다시 이곳에 정박했을까

ㄹ자로 줄지어 선 차량의 행렬을 따르며

눈부신 햇볕 아래 혼자 바쁜 주차보조원 아이에게

돈 10,000원을 주고

"더위에 음료수라도 사 먹으렴"

"지친 너도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하회탈처럼 웃으며

물마루 가득한 눈으로 말해주었다

 

세상으로 돌아오는 길은

지고 온 짐에 몇 곱을 더한 듯 무거워

객실바닥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무너지고 마는데

몸도 마음도 천근은 되는 듯

바다 밑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깊고 어두운 해저에 누운 것만 같다

 

안녕! 안녕! 안녕!

내 청춘 허공에 빛난 별아

이제 내가 쉬어야 할 곳은 어디냐

치열한 세상의 어디에서 언제까지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꿈을 다시 쫓아가야 하느냐

 

이윽고 섬은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 작은 점으로 멀어지다가

지상에서 사라지듯 안개에 가려지고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 어디에 둘 곳 없는 시선은

자꾸만 흐려지는데

여기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노라고

기다리겠노라고 다짐하며

손을 흔들던 소녀의 모습만

비수처럼 박혀 와 오래 오래 지울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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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4 이평산인님 안녕하세요.
    10년 전에 보길도를 다녀오셨군요.
    지금도 여전히 눈에 삼삼히 감기지요? ^^*
    아름다운 건 소금 같아서... 아무리 오래되어도
    빛이 바래지 않고, 오히려 쓴맛은 빠지고... 단맛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더 보람있기를... 감사합니다.

  • 작성자겨울공주 | 작성시간 14.03.04 보길도란 섬 이 그림처럼 펼쳐지는것 같아요.
    작은 배가 통통 거리며 물고기와 김 미역 같은 것들을
    연신 실어나를 것만 같은
    배에서 소금기와 뱃 내음 가득한
    부둣가에서 고단한 어부들이
    작은 생선으로 만든 찌게를 앞에 두고
    소주 잔을 기울일것만 같은 상상을 해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4 겨울공주님 안녕하세요.
    바다와 섬의 풍경이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또한 같은 것도 없겠지요.^^*
    물씬 풍기는 비릿내 미역냄새, 소금냄새...
    젓갈 냄새... 그런 것들은 싱싱합니다.
    살았는 생명의 냄새지요. 그 냄새에
    주인도 나그네도 힘이 나지요.
    그리고 파도는 쉼없이 출렁이지요.
    회며 찌개며 먹을거리 풍성한 부둣가에서
    기울이는 소주 한 잔... 그 멋, 낭만은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겠지요.
    님의 여정이 어느 섬에서 인어가 될지...^^*
    기대해 볼게요.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14.03.04 세상으로 돌아가는길은 천금같이
    무거운길..어떤 것으로 그마음이
    가벼워 질수있을까요 우리의 어떤 말 로도
    가벼워 질수도 위로가 될수 없겠지요
    다만 그마음을 느껴줄뿐 손흔들며
    물끄러미 바라봐주는 소녀의눈빛일뿐..
    손 내밀어 잡아줄수 없다면..
    저물어 가는 오후 별님의마음이
    편안함으로 전해져오네요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04 혜원님 오늘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은 이토록 차이가 나는 걸까요.
    여행이란 그래서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가 봅니다.
    고단한 삶으로 돌아오는 여정... 그것은 휴가에서 입대하는
    병사의 마음이라 해도 될까요?
    눈보라가 치는 벌판을 지나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는
    병사... 그를 맞는 것은 다시 빡빡하고 숨도 크게 쉴 수 없는
    꽉 차인 환경... 그 환경 아시나요? ^^*
    오랜 병영생활이 처음처럼 낯설어지고 길들여진 적응력을 어느새
    며칠 만에 잃어버린 그 참담함 같은 거 말이지요.
    벌써 해가 질 시간이네요. 남은 시간 편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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