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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 시인방

4월의 법정

작성자김별|작성시간23.04.01|조회수143 목록 댓글 0

4월의 법정 / 김별

 

피와 함성과 꽃들이 뒤섞인 

이곳은 4월의 법정입니다.

 

4월의 법정에서

우리 모두는 피해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또한 가해자였고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정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유죄입니다.

유죄의 취지로 이 재판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하니 

나는 아니라고

부끄럽지 않다고 

이 자리에 설 필요가 없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 억울하다고 항변하실 수 있는 분은

조용히 일어나 법정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4월의 법정에는 문이 없습니다.

 

그리고 4월의 재판정은 정해진 자리가 없습니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배심원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달리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합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주십시오.

아무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택권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선택에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다만 부탁드리노니

한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조상과 자식의 이름 앞에 떳떳한

정의와 선의 이름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말씀 덧붙이자면 

자신에게 합당한 자리가 아닌

거짓 된 마음으로 부당한 자리에 앉는다면

방석에서 가시가 솟아나와 엉덩이를 찌를 것입니다.

그 고통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4월의 법정은 

누구를 벌하고 고발하기 위함이 아닌

진정한 반성과 용서 

화해와 화합

포용과 사랑을 통해

다시는 역사의 죄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단죄가 아닌 단절의 자리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숱하게 반복된 거짓 된 선서를 

이 법정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존엄한 가치에 손을 얹어 선서하십시오.

 

그리고 4월의 법정에서는

가해자의 가책으로

피고인에게 합당한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그래도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없는 부정한 마음이라면

당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진 

속죄와 면죄의 기회

다시 깨끗한 얼굴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 대가로 당신은 머지않은 장래 

위증이 통하지 않는 하늘의 법정에 죄인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미안합니다. 

죄스럽습니다.

나 역시 아직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부족합니다.

 

꽃그늘 아래서 단꿈을 꾸다가

꽃비를 맞으며 눈물을 삼킵니다. 

자다가도 깨어나 아파합니다.

그렇건만 나의 분노는

칼이 아닌 꽃을 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4월에

아주 잠시 피었다 져버린 수많은 꽃들을 향한 

최소한의 양심인 까닭입니다

 

아직 이 땅에는 묻혀 있는 진실이 들꽃처럼 많습니다.

아직 발굴하지 못한 죄악들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풀지 못한 원한이 밤이면 여울물소리처럼 섧게 웁니다.

 

그리하여

이 4월 법정은 아직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기에

우리의 미래 또한 아직은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수만 년 우리 민족이 꿈꾸었던 

인류사에 가장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곧 4월의 문제

4월의 문제가 곧 

혼돈과 갈등

이념과 역사를 극복하지 못한

인류사 전체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하늘의 소리를 듣겠습니다.

당신 가슴속에서 들리는 하늘의 음성으로 대답해 주십시오.

더 이상 침묵의 자유가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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