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다.
(1) 916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하여 요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넓혀 고려를 침입하
였다.
(2) 1차 침입 :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고려는 서희는 당당하게 소손녕을 찾아가서 고구려의 옛 땅은 우
리 땅이니 돌아가라고 하였다. 소손녕은 청천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고려의 영토를 인
정하고 물러갔다.
(3) 2차 침입 : 1009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고려의 강조 장군은
크게 패하고 전사하였으며 현종이 거란에 가기로 하고 끝냈다.
(4) 3차 침입 : 거란의 장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오자 고려군은 곳곳에서
그들을 잘 막아 싸웠다. 이에 소배압은 사잇길로 개경으로 진격했으나 강민첨의
군사에게 패하여 후퇴하게 되었다. 귀주에서 길목을 지키던 강감찬은 그들을 맞아
싸워 거의 전멸시켜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 몽고의 침입 과정
(1) 고종 임금 시대에 몽고에 쫓긴 거란족이 고려에 침입하여 평양 부근에 몰려 있었다. 이
때 고려와 몽고는 이들을 함께 소탕하였다. 이 일을 빌미로 몽고는 고려에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였고 두 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
(2) 몽고의 침입 : 고려에서 공물을 받아가던 몽고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 근처에서 피살되자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국교가 단절되고 이후 6차례나 고려를 침입하였다
<서희>
- 993년, 거란의 고려 침략.
고려군의 반격에 직면한 소손녕은 일단 전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고구려 후계자를 자처하며 "80만 군사가 집결되어 있다.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도륙하겠다"라면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적의 위협 앞에서 왕(성종)을 비롯한 고려의 일부 지배층은 투항적 자세를 드러내었다. 그들 중에는 항복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친할 것을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이 때 서희를 비롯한 애국적 관료들은 항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서희는 위와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