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제17권 말러 / 음악세계> 76~78쪽
교향곡 제8번 E♭장조<천인 교향곡>
작곡 1906 ~ 1907년
초연 1910년 9월 12일 뮌헨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시간 약 80분
편성 피콜로(최저 2대, 제1피콜로는 제5플루트와 겸함), 플루트4, 오보에4, 잉글리시 호른,
작은 클라리넷(최저 2대), 클라리넷3, 베이스 클라리넷, 파곳4, 콘트라파곳, 호른8,
트럼펫4, 트롬본4, 튜바, 팀파니(2주자),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탐탐, 글로겐슈필,
저음의 종(음정의 지정 있음), 만돌린(복수), 첼레스타, 피아노, 하모니움, 오르간,
하프2, 현5부
소프라노3, 알토2, 테너2, 바리톤, 베이스 각 독창, 혼성합창2, 어린이합창
그 외에 무대 밖에서 트럼펫4, 트롬본3(합창 인원이 많을 경우, 목관은 증가됨)
또, 제2부에서는 8명의 독창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역할이 주어진다.
제1소프라노 --- 죄많은 여인
제2소프라노 --- 속죄한 여인의 하나
제3소프라노 --- 영광의 성모
제1알토 ------- 사마리아 여인
제2알토 ------- 이집트의 마리아
테너 ---------- 마리아를 찬양하는 박사
바리톤 -------- 황홀해하는 신부
베이스 -------- 명상하는 신부
(유니버셜 판에 의함)
개설
이 곡은 <천인 교향곡>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말러가 붙인 것이 아니다. 악보를 출판한 사람이 이 곡의 편성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붙인 것이 그 발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상연하는 데에는 엄밀히 말하면 천명이 필요하지는 않지만(약 800명), 어쨌든 대편성인 것인 사실이다.
말러는 <제1번>에서 <제4번>까지의 교향곡에서는 <소년의 마술 뿔피리>와 관계를 지었으며, 특히 가곡과의 접근을 보여 왔다. 그리고 <제5번>부터 <제7번>까지는 모두 성악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기악곡이며 바흐적인 체험을 어우러지게 하여 겹리듬이나 대위법을 교묘하게 즐겨 사용하고, 주제의 취급방식에도 유사성을 보이며 구성도 고전적인 것에 가까워지고, 제1악장을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8번>에서 말러는 칸타타풍 교향곡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말러는 이 <교향곡 제8번>에 대해서, 친구인 지휘자 멘겔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제 작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내용면에서도 형식면에서도 독특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대우주가 울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해 주십시오. 그것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태양이 운행하는 소리입니다.」
또한 다음과 같이 적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내 교향곡은 모두 이 곡의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모두 주관적인 비극을 다루었지만, 이 교향곡은 위대한 환희와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처럼 말러는 이 곡에 대해서는 꽤 자신이 있었던 것 같고, 사상적으로는 <교향곡 제2번>의 부활사상을 정화하여, 피안에서의 불멸의 삶으로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가사로 제1부에 중세 마인츠의 대승정 프라바누스 마울스 작(칼 대제 작이라는 설도 있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라틴어 찬가 「오소서, 창조주이신 성령이여」를 사용하였으며, 제2부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 마지막 막의 파우스트 구제 장면의 대사를 사용하였다. 가사를 보면, 곡은 크게 제1부와 제2부로 이루어진 셈인데, 제2부는 다시 아다지오-알레그로, 스케르초, 아다지시모, 마침곡으로 나뉘어진다. 제1부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역시 전체는 일반적인 4악장제의 교향곡 양식과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 곡은 이전의 제1~4번과 제5~7번의 두 개 교향곡 그룹의 노선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곡 전체는 산만해지지 않도록 동기적, 주제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잘 정리되어 있다. 분명히 이 곡은 종래의 교향곡의 모습을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발전시켜, 극한까지 확대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말러가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한 것은 1905년 여름이었다. 그 다음해부터 <교향곡 제8번>의 작곡에 착수하였다. 말러는 처음에 이 <교향곡 제8번>을 4악장으로 구상하여 계획을 진행시켰지만, 중간의 스케르초와 아다지오의 2개 기악 악장을 취소하여, 2개의 부분으로 만들었다. 그 제2부에 「에로스의 탄생」을 생각하고 있던 것을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막의 장면으로 변경했다. 이 변경과 관련하여, 나중에 말러는 이 교향곡의 리허설 즈음(1901년 6월)에 아내 알마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철학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플라토닉 러브」입니다. 그 본질은 모든 사랑은 발생적, 창조적이며 거기에 이 에로스의 발산인 육체적, 정신적 발생이 있다는 것이 괴테의 사상입니다. 당신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마지막 막에서 그것을 느끼겠지요……」
즉 말러에게 있어서는, 「에로스의 탄생」을 「파우스트」의 마지막 막으로 변경한 것은 내용의 근본적, 본질적인 수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러는 이 교향곡 제1부의 「오소서, 창조주이신 성령이여」를 1906년 초여름, 3주 동안 완성했다고 한다. 그 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출연하면서 그 해 8월 18일에 주로 마이어니히에서 스케치를 마쳤다. 착수하고 나서 8주가 걸렸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해 여름에 전체를 관현악용으로 완성했다.
초연은 1910년 9월 12일, 말러의 지휘로 뮌헨에서 이루어졌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말러의 경우, 초연이 대성공을 한 것은 이 곡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곡은 아내 알마에게 헌정되었다.
악보는 1911년에 빈의 유니버셜사에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