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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탄호이저>... 2008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

작성자서푼짜리오페라|작성시간13.07.04|조회수345 목록 댓글 10

 

원작  탄호이저에 관한 여러 전설

        루트비히 티크 <충직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

        호프만 <탄호이저>

        하이네 <탄호이저>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45년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 극장(드레스덴판)

         1861년 파리 오페라하우스(파리판)

배경  13세기 초 독일 튀링겐 지방의 바르트부르크 성

 <2008년 4월 바르셀로나 리세우대극장 공연 / 201분 / 한글자막>

 

리세우대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세바스티안 바이글 지휘 / 로버트 카슨 연출

 

탄호이저...................음유시인이자 기사......페터 자이페르트(테너)

볼프람 폰 에셴바흐.....음유시인이자 기사......마르쿠스 아이헤(바리톤)

헤르만......................튀링겐의 영주............귄터 그로이스뵉(베이스)

엘리자베트................헤르만의 조카딸.........페트라 마리아 슈니처(소프라노)

베누스......................사랑과 관능의 여신.....베아트리스 위리아-몽종(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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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세계적인 연출가 로버트 카슨이 연출한 바그너의 대표 오페라

 

탄호이저는 13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독일의 미네징거(음유시인기사)다. 1245년에서 1265까지 그의 이름으로 된 시들이 등장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가 베누스의 소굴인 베누스베르크를 발견하여 그 곳에서 환락의 세월을 보내다가 회개하고 교황 우르반 4세의 용서를 받기 위해 로마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며, 이 전설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중심내용이 되었다.

 

라 페니체의 <라 트라비아타>와 파리 오페라의 <호프만의 이야기> 등의 영상물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 연출가 로버트 카슨이 2008년 바르셀로나 리세우의 무대에 올렸던 <탄호이저> 프로덕션이 영상물로 출시되었다. 바그너 가수들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페터 자이페르트, 페트라 마리아 슈니처 부부가 탄호이저와 엘리자베트를 노래하였으며, 팜므 파탈 배역들에서 특히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베아트리스 위리아-몽종이 관능적인 베누스를 열연하였다. 성과 속 사이에서 방황하는 탄호이저와 각각 성과 속을 대표하는 여성캐릭터들인 엘리자베트와 베누스가 함께 펼쳐나가는 이 오페라에는 베누스베르크의 환락, 바르트부르크 대회의 장엄함과 같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순례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전당의 노래, 축전행진곡과 같은 명곡들이 가득하다. 카슨의 상상력 속에서 중세의 미네징거인 탄호이저는 현대의 고뇌하는 화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공연에서 타이틀 롤을 노래한 페터 자이페르트는 명실상부한 현존 최고의 바그너 테너 중 한 사람이다. 1954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그는 뒤셀도르프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1978년 고향의 오페라하우스인 라인 도이치오퍼에서 데뷔를 했다. 초기에는 맑고 가벼운 자신의 목소리를 살려서 모차르트나 베버,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통해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로엔그린, 탄호이저, 발터, 지크프리트 등의 주요 바그너 배역들을 통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헬덴 테너(영웅적 테너)의 한 사람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한 때 15세 연상의 소프라노 루치아 폽과 부부였으며, 현재의 부인은 바로 본 공연에서 함께 공연한 페트라 마리아 슈니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은진 글>


탄호이저

리하르트 바그너


〈탄호이저〉는 서른 두 살의 청년 바그너가 ‘낭만적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이후 그의 음악적 이상을 구체화한 ‘음악극’의 전조들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 아리아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구별 짓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기법은 훗날의 무한선율을 예시하는 듯 하며, 라이트모티브적인 선율재료의 사용도 두드러진다.


독일 오페라와 프랑스 오페라의 결합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아이디어를 하인리히 하이네에게서 얻었던 바그너는, 다시 한 번 하이네의 풍자적인 시를 바탕으로 하여 〈탄호이저〉를 구상하였다. 그는 하이네의 시 뿐만 아니라 루트비히 티크의 소설 《진실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와 15세기의 민담 ‘탄호이저의 노래’, 그리고 벡슈타인이 수집한 튀링겐 설화집을 참고로 대본을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탄호이저〉의 대본은 독일 오페라의 신화적 요소와 프랑스 그랑 도페라의 중세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바그너는 역사적 실존인물인 14세기의 한 음유시인의 이야기와 베누스 신화를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를 하나로 묶었다. 무대의 배경 역시 바르트부르크 성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신화적인 베누스베르크로 양분되도록 연출했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악기편성에 있다. 프랑스의 오페라 양식에 따라 무대 위에 관악기 앙상블을 편성하였으며, 발레 장면도 삽입하였다. 하프를 사용한 것 역시 프랑스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금관악기의 편성에 있어서는 독일의 관습을 따라서 12개의 발트호른을 사용했다.


초연의 실패와 개정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당시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연출과 지휘를 맡아 초연하기로 결심한 바그너는 3막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고민하다가, 탄호이저가 베누스 산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엘리자베트의 죽음 등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환상과 설명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그러나 1845년의 초연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청중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사건이 전개되지 않고 설명으로 이어가는 연출에 지루함을 느꼈고, 바그너는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펼쳐지도록 수정을 가한다.


몇 년 후, 독일에서의 정치적 박해로 피해 프랑스에 자리잡기를 원했던 바그너는 파리에서 오페라작곡가로 성공하리라는 포부를 품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나폴레옹 3세와 친분이 두터웠던 머물던 오스트리아 대사의 아내 메테르니히 공녀의 제안으로 파리 무대에서 〈탄호이저〉를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 바그너는, 오페라가 공연될 파리 오페라극장의 전통을 수용하여 발레 장면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파리 공연 역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메테르니히 공녀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일련의 귀족들이 공연 중에 야유를 퍼부었고, 이로 인해 오페라의 중심지 파리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바그너의 희망은 좌절로 끝나게 된다.


불행한 천재의 초상


〈탄호이저〉는 중세의 음유시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면서도, 동시대의 볼프람 폰 에셴바흐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와는 달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이다. 바그너는 이 인물을 둘러싼 전설적인 설화들을 통해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지 못해 비극을 맞게 되는 탄호이저의 모습 속에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신하면서도, 청중들의 야유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던 바그너는 종교적 금기를 어김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탄호이저의 운명에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탄호이저〉에는 정숙하고 순결한 엘리자베트와, 관능적인 베누스라는 상반된 여성이 등장한다. 전설상의 엘리자베트는 바르크부르트의 영주 헤르만의 조카딸이지만, 바그너는 또 다른 인물의 성격을 엘리자베트에게 투영시켰다. 튀링겐의 영주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한 헝가리의 공주 엘리자베트 폰 운가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흔히 ‘장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에 생애를 바쳤고 훗날 성녀로 추앙받았다.


한편, 베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잘 드러나듯이 관능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여성상이다. 사실 1843년에 〈탄호이저〉의 대본을 완성했을 때 바그너가 붙인 제목은 〈베누스의 산, 낭만적 오페라〉였다. 그만큼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베누스가 상징하는 관능적인 사랑을 중요한 주제로 생각했던 것이다. 평생 동안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했던 바그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누스가 상징하는 감각적인 사랑을 죄악시하는 종교적 관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여성의 희생을 통한 구원


민담과 하이네의 시는 탄호이저가 베누스의 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바그너는 이러한 결말을 탄호이저가 구원되는 것으로 바꿔버린다. 탄호이저의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스러운 엘리자베트의 희생적인 사랑과 죽음이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절망했던 바그너는, 엘리자베트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는 또한 바그너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며, 바그너 자신이 일생 동안 찾아 헤맨 이상적인 여성상이기도 했다. 특히 바그너는 당시 아내 민나와의 불화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1막

베누스 산의 시녀들이 펼치는 화려한 발레에 이어 베누스의 무릎에 누워 있는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인다. 베누스와의 관능적인 사랑에 권태를 느낀 탄호이저는 인간 세계의 자유와 교회 종소리를 그리워하면서, 베누스에게 자신을 놓아줄 것을 간청한다. 베누스는 탄호이저를 유혹하며 그를 만류하려 하지만, 그의 결심이 확고하자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퇴장한다.

바르트부르크로 돌아온 탄호이저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우연히 만난 볼프람 일행에게 노래경연대회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노래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자가 엘리자베트의 약혼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에 탄호이저는 일행에 합류하기로 한다.

2막

탄호이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트는 노래경연대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음유시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한다. 탄호이저가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두 사람이 기쁨의 2중창을 부르는 동안, 남몰래 엘리자베트를 연모하던 볼프람은 단념의 노래를 부른다.

영주가 노래경연대회의 개막을 선포하고, 각각의 민네징어들이 순서대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첫 번째 순서인 볼프람이 노래를 마친 후, 탄호이저는 관능적인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교회에서 악으로 규정한 베누스를 찬미한다. 그가 베누스의 산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노한 청중들이 그에게 달려든다. 볼프람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래를 부르고, 엘리자베트는 탄호이저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영주는 탄호이저에게 로마 순례를 명령하고, 탄호이저는 자신의 죄를 자책하며 순례 행렬에 동참한다.

3막

엘리자베트가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중 바르트부르크로 돌아오는 순례자의 합창소리가 들린다. 엘리자베트는 일행 중에서 탄호이저를 찾으려 하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그의 죄가 용서받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리겠다고 기도한다.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보면서 볼프람은 그녀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잠시 후, 기진맥진한 탄호이저가 절뚝이며 등장하여 ‘로마의 이야기’를 부른다. 죄 사함을 청한 그에게 교황은 그의 나무 지팡이에 잎이 돋을 때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탄호이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베누스의 산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자 베누스의 세계가 사라져 버린다.

곧이어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등장한다. 엘리자베트의 유해 앞에서 비탄에 빠진 탄호이저가 비통하게 용서를 빌고 숨을 거둔다. 이때 한 순례자가 꽃이 핀 교황의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여 탄호이저가 죄를 사함 받고 구원되었음을 알린다.

서곡

너무나 유명한 〈탄호이저〉 서곡은 금관이 숭고한 주제선율을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이 선율은 3막에서 순례자의 합창 선율로 제시된다. 금관을 중심으로 웅장한 진행이 계속되다가, 현악이 이를 이어받는다. 곧이어 트롬본이 다시 한 번 순례자의 선율을 장엄하게 연주한다. 템포가 빨라지면서 베누스 산의 관능적 쾌락을 묘사하는 환락의 모티브가 연주된다. 이 선율은 1막에서 베누스가 탄호이저를 유혹하는 부분에서 사용된다. 후반부에서 다시금 금관이 순례자의 선율을 장엄하게 연주하면서 탄호이저의 구원을 암시한다.

베누스의 노래, ‘사랑하는 이여, 이리 오세요(Geliebter, komm)’

베누스 산을 떠나려는 탄호이저를 만류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고혹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고음의 선율이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오케스트라 반주 역시 시종일관 여성성을 강조하는 현악과 목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성적인 미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탄호이저에 대한 베누스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관능적 사랑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을 음악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Dich, teure Halle)’

2막의 첫 장면에서 제시되는 음악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행진곡이 노래경연이 개최될 전당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묘사한 뒤, 엘리자베트가 노래를 시작한다. 유려한 선율 속에 탄호이저의 우승을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엘리자베트의 노래는 순결한 그녀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순례자의 합창, ‘행복할 지어다, 오 고향이여, 내가 바라보도다(Beglückt darf nun dich, o Heimat, ich schauen)’

3막의 첫 장면에서 제시되는 음악으로, 베누스와 관능적인 쾌락을 즐긴 죄를 사함 받기 위해 탄호이저가 순례를 떠나는 장면에서 연주된다. 순례자 일행이 서곡에서 제시되었던 숭고한 선율을 합창으로 노래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서곡에서 사용된 모티브를 그대로 연주한다. 순례자들이 ‘할렐루야’를 반복하고, 엘리자베트의 비통한 탄식이 들리는 가운데 합창소리가 서서히 멀어진다.

‘저녁별의 노래(O Du, Mein Holder Abendstern)’

엘리자베트를 남몰래 사랑하는 볼프람이, 꺼져가는 엘리자베트의 생명을 염려하면서 별들에게 그녀를 돌보아주기를 간청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바리톤의 깊이 있는 음성과 억제된 감정 표현이 고요하면서도 애조를 띤 반주와 어우러져, 볼프람의 애잔한 사랑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 작품해설 === <2010년 5월 1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바그너, 탄호이저

Richard Wagner, Tannha:user

원제는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노래 경연>이고, 부제는 '3막의 낭만적 오페라"이다

1845년 초연된 드레스덴 판본과 1861년 파리 상연시 수정된 파리 판본이 존재한다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친해지기 쉬운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탄호이저]입니다. ‘순례자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등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어있고, 아직은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인 ‘아리아’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페라이기 때문이죠. 바그너는 ‘오페라’ 대신 ‘무지크드라마(Musikdrama)’라는 형식을 정립해 독일 음악극을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우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후기 대작 [니벨룽의 반지]나 [파르지팔]은 이 새로운 분류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서른두 살의 바그너가 1845년에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탄호이저]는 바그너 스스로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인 작품이랍니다.

 

그러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경계를 없애고 ‘오페라’에서 ‘무지크드라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탄호이저]에서 이미 확연히 드러납니다. 아리아가 끝나는 시점을 명확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계속 연결해 극의 단절감을 없앤 것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본격화되는 ‘무한선율’의 기초작업이며, 앞에 발표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비교할 때 라이트모티프(시도동기)의 사용도 더욱 두드러집니다.

 

[탄호이저]는 중세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였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을 모델로 삼아 ‘사회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초상’을 보여준 오페라로, 바그너는 스스로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 탄호이저에게 투사했습니다. 13세기 문학작품인 [마네스 노래집]과 [바르트부르크 노래 경연], 그리고 하이네, 호프만, 브렌타노, 티크 등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이 이 중세 소재를 토대로 새롭게 쓴 이야기들을 참고해서 바그너는 자신만의 독특한 탄호이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대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지요. 문학적 재능이 각별했던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늘 스스로 썼으니까요.

 

순결한 사랑과 관능적 쾌락 사이의 갈등

 

13세기 초 독일 튀링엔 지방 바르트부르크 성의 기사 탄호이저(하인리히)는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사는 동굴에 찾아간 뒤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세계의 쾌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 의무와 맑은 공기가 그리워 바깥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동료기사들을 만나 다시 바르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합니다.

 

탄호이저가 자취를 감춘 뒤로 줄곧 그를 그리워해 온 엘리자베트는 그가 돌아왔다는 전갈에 기뻐하며 노래 경연의 전당으로 달려가 아리아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를 노래합니다. 기사들과 귀족들이 청중으로 모인 전당에서 영주 헤르만이 기사들에게 준 노래의 주제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중세의 실존인물이었던 기사 볼프람 폰 에셴바흐,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등이 등장해 ‘욕망을 억제하는 정신적 사랑’을 예찬하자 탄호이저는 그들을 비웃으며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고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베누스 여신을 찬미합니다. 그가 이교 여신과 함께 쾌락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 밝혀지자 분노한 기사들은 칼을 빼들지만, 엘리자베트가 목숨을 걸고 막아서서 그들을 설득합니다. 탄호이저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그러자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로마 순례를 명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순례자의 합창’을 노래하지요. 엘리자베트는 순례자들의 행렬 안에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절망합니다.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엘리자베트. 오래 전부터 그녀를 흠모해온 기사 볼프람은 엘리자베트의 삶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저녁별의 노래’를 부릅니다. 밤이 깊자 지친 모습의 탄호이저가 볼프람 앞에 나타납니다. 온갖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순례자들의 대열에 섞여 로마에 도착했지만, 베누스 동굴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교황은 ‘고목에 싹이 돋지 않는 한 용서할 수 없는 끔찍한 죄’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해 절망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 여신을 부르며 쾌락의 세계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때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자 베누스의 세계는 사라져 버리지요. 합창단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알리자 탄호이저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며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그때 고목 지팡이에 푸른 싹이 돋아나고, 순례자들은 탄호이저가 구원받았다고 합창합니다.

 

여성의 희생을 통한 천재 예술가의 구원

 

위의 내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버전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탄호이저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13세기 문학을 기초로 해서 16세기에 쓰여진 [탄호이저의 노래]에 따르면, 탄호이저는 베누스와 쾌락을 즐기다가 그곳을 힘들여 빠져나와, 엘리자베트를 만나지 않고 곧장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가 쾌락에 빠졌던 죄를 용서해주지 않자,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의 동굴로 돌아갑니다. 교황은 사흘 뒤에 고목에 새 잎이 나는 기적을 보고 탄호이저를 찾지만, 그는 이미 베누스에게 돌아간 뒤여서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의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탄호이저]를 보면 한술 더 떠서, 베누스는 돌아온 탄호이저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고 순례 중에 상처 입은 발을 치료해 줍니다. 결국 탄호이저는 베누스 동굴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쾌락을 즐기며 살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분노하고 있던 바그너는 ‘여성의 절대적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강조하려고 결말을 진지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 같은 소재라 해도 작가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중에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취임해 스스로의 연출과 지휘로 [탄호이저]를 초연하기로 합니다. 마지막 3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 바그너는 탄호이저가 베누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탄호이저의 환상’으로 처리하고, 엘리자베트의 죽음과 고목 지팡이에 돋은 새싹 등은 기사 볼프람의 암시와 설명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초연 때 청중은 무대 위에서 사건이 거의 전개되지 않는 이런 방식을 대단히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그너는 이 부분들을 무대 위 사건으로 전환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 판본은 1847년 8월에 개정판으로 발표되었고, 이것이 바로 ‘드레스덴 판본’입니다.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의 성공을 갈망했던 바그너는 발레와 화려한 음악을 좋아하는 파리 오페라 애호가들의 기호에 맞춰 서곡, 1막 1장, 2막 4장을 대대적으로 수정했고, 이것이 1861년 3월 13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파리 판본’입니다. [탄호이저]가 파리 판본으로 공연되기를 작곡가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바이로이트에서도 1891년 이후 파리 판본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경우에 파리 판본과 드레스덴 판본의 절충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누스와 엘리자베트는 관능적 괘락과 순결을 상징하는 이분법적 여성상이지만, 한 여성 안에 내재된 이원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연출가 괴츠 프리드리히는 두 여주인공을 한 명의 가수(귀네스 존스)가 연기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곡부터 ‘순례의 합창’ 모티프에 베누스 동굴 음악이 겹치면서, 이 주제가 뚜렷이 부각됩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탄호이저-엘리자베트-베누스-볼프람 순


[음반] 르네 콜로, 헬가 데르네쉬, 크리스타 루트비히, 빅터 브라운 등,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게오르크 숄티 지휘, 1970년 녹음(Decca)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스튜더, 아그네스 발차, 안드레아스 슈미트 등,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로열오페라하우스 합창단, 주세페 시노폴리 지휘, 1989년 녹음(DG)


[DVD] 르네 콜로, 나딘 세쿤드, 발트라우트 마이어, 베른트 바이클 등,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합창단 및 오페라 발레단, 주빈 메타 지휘, 데이비드 올든 연출, 1994년(스펙트럼)

[DVD] 스파스 벤코프, 귀네스 존스(엘리자베트+베누스), 베른트 바이클 등, 콜린 데이비스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1978년(DG)


[네이버 지식백과] 바그너, 탄호이저 [Richard Wagner, Tannhäuser]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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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7월 21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

바그너 <탄호이저>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독일에 기사문학()의 융성을 초래한 민네징거(Minnesinger, 연예시인)란 오늘의 ‘가수겸 작곡가·작사자’(singersong writer)처럼 시작()과 음악 양쪽에 뛰어난 기사였다. 탄호이저는 독일 전설의 연애시인 탄호이저와 발트부르크 노래 경연대회를 소재로, 육욕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의 대립에서 사랑의 실현()은 죽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평생의 사상을 테마로 한 낭만적인 색채가 짙은 명작이다.


바그너 필생의 주제인 '사랑에 의한 구원'을 노래한 걸작 오페라


13세기의 독일, 튜링겐 지방이다. 중세의 기사는 민네징거(연애시인)로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탄호이저는 영주()의 조카 엘리자베트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관능()의 여신 베누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윽고 간신히 그녀의 애욕의 굴레에서 탈출한 탄호이저는 발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화에 출전한다. 다른 기사들이 청순한 사랑, 높은 덕성()의 사랑을 노래 가운데, 그는 향락적인 사랑을 부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베누스의 사랑을 칭송한다. 기사들이 모두 놀라서 일제히 칼을 뽑지만 엘리자베트가 결사적으로 나서 목숨을 구한다.


영주가 결단을 내려 그는 로마 법왕의 용서를 얻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다. 탄호이저가 떠난 뒤 엘리자베트는 마리아 상()에게 목숨을 걸고 용서를 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친구 볼후람(볼프람, Wolfram) 앞에 초췌한 탄호이저가 돌아온다. 그는 로마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베누스의 관능으로 넘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 그의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그 때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볼후람이 “엘리자베트”하고 외치자 베누스의 모습을 사라지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탄호이저도 순간 깨어나 숨을 거둔다. 엘리자베트의 희생으로 그의 영혼도 구원된 것이다.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모두 자기가 직접 썼다. 그 이전은 대본작가와 작곡가는 분업이 보통이며 직접 작곡가가 쓴 것은 바그너가 처음이다. 이 오페라에는 드레스덴 초연 뒤에 마지막 제3막 제3장에 손을 대 알기 쉽게 한 드레스덴 판과, 1861년에 빠리(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발레를 좋아하는 빠리의 관객을 위해 서곡과 제1막 제1장의 베누스가 사는 산의 동굴 장면, 제2막 제2장의 노래 경연대회 장면 등을 대폭 개정한 빠리 판이 있고, 이 둘을 절충해서 공연하는 일도 많다. 전3막이다.


'저녁별의 노래'


죽음의 예감인양 황혼이 땅을 덮고
골짜기를 검은 옷이 감싼다.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하는 그녀의 영혼에도
밤의 공포를 가로 지르는 길은 두렵다.

여러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여, 빛을 내서
아늑한 등불을 저 멀리 보내어,
부드러운 빛이 밤의 어두움을 헤치고
골짜기의 길을 친히 가리켜 주오.

오 나의 자애()로운 저녁별이여,
나는 언제나 행복한 기분으로 반겨 맞지만,
그녀를 결코 배반할 리 없는 이 마음을,
꼭 전해 주시오, 그녀가 지나갈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애(殉愛)의 찬가


로마로 순례()를 떠난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모상()에 기도를 드리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를 남 몰래 사랑하는 기사 볼후람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건하고 ‘저녁별이 그녀의 영혼을 편안히 하늘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고 수금()을 연주하며 기도하는, 바그너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이다. 가사는 제1절이 저녁 어둠이 다가올 무렵이고 제2절과의 사이에 저녁별이 빛나기 시작하여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다. 바리톤의 억제된 깊은 감정을 담은 노래이며 결코 소리 높이 부를 수가 없다. 경건(), 장엄함이 가슴에 다가드는 아리아이다.


추천할 만한 CD와 DVD


[CD] 자발리쉬 지휘,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합창단 에버하르트 배히터(Br) Philips
빌란트 바그너(R. 바그너의 손자이며 명연출가)가 연출한 1962년도 바이로이트 축제 때의 귀중한 녹음이다. 당시 아직 40세가 안 되었던 자발리쉬(Wolfgang Sawallisch)의 신선하고도 침착한 표현을 들을 수 있다. 이 지휘자 특유의 결벽성과 근엄 솔직한 표현에는 이 음악에 대한 진한 욕구와 열망이 엿보인다. 가수진은 녹음 당시 최고의 캐스트로 짜여 있다. 탄호이저 역의 빈트가쎈(Wolfgang Windgassen)은 그 탄력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음악성에 압도된다. 엘리자베트 역의 질랴(Anja Silja)가 아직 기교적인 면에 미숙한 점이 있지만 신선하고 지적인 노래에 이끌린다. 또 당대 최고의 볼후람으로 꼽히는 배히터(Eberhard Wächter)는 관록 있는 풍성한 노래를 펼친다. 그의 온후()한 기사 역은 이 드라마에서 다시 없이 중요한 액센트가 있다. 음반은 드레스덴 판과 빠리 판을 절충하여 공연한 실황 연주 녹음이다.


[CD] 숄티(솔티, Georg Solti)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 빈 소년 합창단(1970) 빅토르 브라운(Br) Decca
최초의 빠리 판 전곡 녹음이다. 우선 베누스를 틀에 박힌 이교적() 관능의 여신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는 엘리자베트와 대립되는 존재로 그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빠리 판은 그저 불란서의 그랜드 오페라에 대한 관습적인 타협이라고 치부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숄티의 연주가 그 점을 시정해 주고 있다. 그의 지휘는 음 자체의 극적인 의미와 공간감()에 유의하면서 음악의 정서와 분위기를 미묘하고 예리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베누스의 동굴 장면에서 관능적인 오케스트라색채감과 전곡에 걸쳐 세부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쓴 풍성한 연주 표현은 깊은 감명을 준다. 가수로는 꼴로(René Kollo)의 싱싱한 힘이 넘치는 탄호이저 역이 돋보인다. 자발리쉬 지휘 때의 빈트가쎈이 노련하고 분별 있는 탄호이저라면 꼴로는 육욕()의 쾌락과 정신적 고결() 사이를 헤매는 인간다운 설득력을 지닌다. 데르네슈(Helga Dernesch)의 엘리자베트, 메조 소프라노 루트비히(Christa Ludwig)의 베누스 등 모두 수준 높은 가수진이다. 또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의 빼어난 연주와 합창이 이 오페라를 더욱 빛낸다.


[DVD] 구스타브 쿤 지휘,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관현악단/합창단(2000) 루트비히 바우만(Br), 헤르쪼크 연출, Panorama 수입반
지휘자 쿤은 카라얀 밑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탄호이저 역의 우드로우(Alan Woodrow)는 처음 한동안 음조(調)가 불안정하다가 차츰 안정을 되찾아 자신감 넘치는 노래로 일관한다. 그리고 헤르만 역의 실베스트렐리(Andrea Silvestrelli)가 뿜어내는 넓고 깊은 베이스와 볼후람 역의 바우만(Ludwig Baumann)의 저력있는 바리톤도 인상적이다. 엘리자베트 역의 오텐탈(Gertrud Ottenthal) 역시 나무랄 데 없는 노래 솜씨를 보이나, 펜체바(Marianna pentceva)는 보다 요염한 목소리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헤르쪼크(Werner Herzog)의 연출은 전통적인 무대 장치가 아니고 의사() 근대적인 것이지만 별로 위화감()은 없다. 녹음상태와 화질은 우수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난해하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바그너 입문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DVD] 콜린 데이비스 지휘,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합창단(1978) 베른트 바이클(Br) 후리드리히 연출 DG
탄호이저 역의 벤코후(Spas Wenkoff)는 불가리아 태성으로 당시 평판 높던 헬덴 테너이다. 엘리자베트와 베누스 역의 죤즈(Gwyneth Jones)의 노래는 여성의 이면성()을 잡으려는 연출 의도 때문이라고는 하나, 전성기의 그녀다운 열기에 찬 표현이다. 동독 출신의 후리드리히(Gotz Friedrich)의 ‘체제()’를 느끼게 하는 연출은 의식적인 풍자였다. 그가 바이로이트에 처음 등장한 1972년 이후의 프로덕션이다. 이 성공으로 그는 서독에 넘어 왔다. 이 무렵부터 오랜 동안 계속되어온 비란트 바그너의 상징주의적 연출이 없어지고 정치적으로, 성적()으로 대담하고 명확한 해석이 강한 공연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이 실황 연주도 선구적()인 작품이지만 아직 정통파의 격조 높은 면이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저녁별의 노래 - 바그너, [탄호이저]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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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줄거리 대용) === <그림전설집 / 그림 형제 / 안인희>에서 전문 인용

 

 

  

바그너 선생의 <탄호이저>의 원작이 되는 도이치 전설 두 편,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전쟁>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관능과 쾌락의 늪에 빠진 중세기사 탄호이저가 고행과 순례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였고,

또 하나의 이야기 <바르트부르크의 전쟁>은

볼프람 폰 에센바흐를 포함한 실존 인물들이었던 6명의 중세기사 겸 음유시인(민네징거)들의

목숨을 건 노래 경연(그래서 전쟁인 모양입니다...)에 관한 구전이었습니다.

 

* 민담 내지는 민간전승의 설화적 이야기들이라 구성이 엉성한 점 감안하시고,

* 서너 페이지 분량의 전설들 120편을 모아놓은 이야기책이라서 부분부분 번역이 조악한 점도 감안하시기를!

 

 

1. <탄호이저>

 

도이치 기사인 고귀한 탄호이저는 큰 기적을 보려고 수많은 나라들을 떠돌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찾아 베누스 부인의 산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자 마침내 양심이 고개를 들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 휴식을 얻기를 바랐다. 하지만 베누스 부인은 그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온갖 것을 다 제공하였다. 자신의 시녀를 아내로 삼게 해 줄 테니 그는 언제나 즐겁게 웃는 그녀의 붉은 입술만 기억하면 된다고 했다.

탄호이저는 자신은 마음속에 품은 여성(성모) 말고 다른 어떤 여자도 원하지 않으며,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싶지도 않다, 그녀의 붉은 입술에는 관심이 없고,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자신의 삶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악의 여인이 그를 자신의 방으로 꼬여 사랑을 제공하려고 하였지만, 고귀한 기사가 큰 소리로 그녀를 나무라면서 순결한 성모 마리아를 불러서 마침내 베누스는 그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기사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로마로 길을 떠나 우르바누스 교황에게로 찾아갔다. 교황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하고 용서를 얻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1년 동안이나 베누스 산에 있었다고 고백하자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돋는다면 네 죄가 용서를 받을까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  탄호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지상에서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하느님도 불쌍히 여기실 만큼 참회와 반성을 할 텐데."

교황이 자기를 저주하였기에 그는 고통과 비탄에 잠겨 로마를 떠나 다시 마녀의 산으로 가서 이번에는 영원히 그곳에 머물려고 하였다. 베누스 부인은 마치 오래 떠나 있던 애인을 맞아들이는 것처럼 그를 환영하였다.

그러고 나서 사흘째 되는 날부터 교황의 지팡이에서 싹이 돋기 시작하였다. 교황은 심부름꾼을 보내 고귀한 탄호이저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도록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탄호이저는 베누스 산에서 여인을 차지하였으니 최후의 심판이 다가올 때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고, 최후의 심판에서 신이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직자든지 죄 많은 사람을 낙담케 하지 말고 그가 참회와 반성을 보이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2. <바르트부르크의 전쟁>

 

1206년에 아이제나흐 옆에 붙은 바르트부르크에 덕이 높고 분별이 있는 가수들 여섯 명이 모여서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을 뒷날 사람들은 '바르트부르크의 전쟁'이라 부른다. 이곳에 모인 장인가수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하인리히 슈라이버,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라이마르 츠베터, 볼프람 폰 에센바흐, 비테롤프,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 등이다.

 

그들은 노래로 싸웠는데, 태양과 낮을 주제로 삼았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튀링겐과 헤센의 영토백작 헤르만을 낮에 비유하여 그를 모든 영주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세웠다. 다만 한 사람 오프터딩겐만이 오스트리아의 공작 레오폴트를 더욱 높게 여겨 그를 태양에 견주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기들끼리, 노래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로 약속하고, 형리 슈템펠에게 밧줄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가 즉시 그 사람의 목을 매달라는 지시까지 해두었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은 아주 영리하고 능숙하게 노래를 하였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능가하여 간교한 말로 그를 붙잡았다. 다른 가수들이 시기심에서 그를 튀링겐 궁정에서 쫓아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 엉터리 패를 주어 게임에서 졌다고 하소연하였다. 다른 다섯 명은 슈템펠을 불러서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을 즉시 나무에 목매달라고 명하였다.

그는 얼른 백작부인 소피아에게로 도망쳐서 그녀의 보호 아래 몸을 숨겼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조건을 내걸고 자기에게 1년 기한을 달라고 했다. 그러면 즉시 헝가리의 일곱성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마이스터 클링조르를 데려오겠으니 그가 자기들의 싸움에 대해 내려주는 판결을 따르자고 하였다. 클링조르는 당시 가장 유명한 도이치 장인가수로 여겨지고 있었다. 백작부인이 하인리히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이 조건에 동의하였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은 길을 떠나 먼저 오스트리아 공작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들고 일곱성의 마이스터를 찾아가 자기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클링조르는 그의 노래를 매우 칭찬하고 그와 함께 튀링겐으로 가서 가수들의 싸움을 조정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함께 수많은 심심풀이 일로 시간을 보내서 하인리히가 약속 받은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가 다가왔다. 그런데도 클링조르가 도무지 길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기에 하인리히는 두려워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당신이 나를 곤경에 빠지도록 내버려둘까 두렵습니다. 나 혼자서 슬프게 내 길을 가야 할까 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명예를 잃고 평생 다시는 튀링겐에는 못 가겠지요."

그러자 클링조르가 대답하였다. "걱정 말게! 우리는 힘찬 말과 가벼운 마차가 있으니 재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인리히는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이스터가 저녁에 그에게 마실 것을 주어 그를 깊은 잠에 빠뜨렸다. 이어서 클링조르는 그를 가죽 담요에 눕히고 자신도 그 옆에 누워서 자기가 부리는 귀신들에게, 얼른 튀링겐 지방에 있는 아이제나흐로 데려가 가장 좋은 주막집 앞에 내려 달라고 명령하였다. 정말로 그렇게 되어서그들은 날이 밝기 전에 헬그레벤호프에 도착하였다.

아침잠에 빠져 있던 하인리히는 귀에 익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말했다. "꼭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그래서 아이제나흐에 있는 것만 같네." "좋은 꿈이나 꿔라." 클링조르가 말했다. 하인리히는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둘러보고 자기가 정말로 튀링겐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 우리가 여기 오다니 고맙습니다. 이건 헬그레벤하우스 객줏집이구나. 저기 성 게오르크 문 앞에 사람들이 있고, 또 들판을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이네."

머지않아 두 손님이 바르트부르크에 도착한 것이 알려졌고, 영토백작은 낯선 마이스터를 정중하게 맞아들이고 그에게 선물을 주라고 명령하였다. 사람들이 오프터딩겐에게 어떻게 지냈으며 어디 있었느냐고 묻자 "어제는 일곱성에서 잠이들었는데 새벽 미사 시간에는 여기 있더라. 어찌해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장인가수들이 노래를 하고 클링조르가 그들의 노래에 판결을 내릴 날이 오기 전에 며칠이 흘렀다. 어느날 저녁 클링조르는 객줏집 정원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별들을 바라보았다. 기사들이 하늘에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클링조르가 대답하였다. "오늘 밤에 헝가리 왕이 딸을 하나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딸은 아름답고 덕이 높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고, 또 이곳 백작의 아들과 혼인하게 될 것이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헤르만 백작은 기뻐하면서 사람을 보내 클링조르를 바르트부르크로 오게 해서 그에게 큰 명예를 바치고 영주의 식탁에 초대하였다. 식사를 마친 다음 그는 성에 있는 기사들의 홀로 향하였다. 그곳에 가수들이 앉아서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을 없애려 하고 있었다.

클링조르와 볼프람이 서로 노래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볼프람이 하도 의미 있고 교묘한 기술을 보여서 클링조르가 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클링조르는 자기가 부리는 귀신 하나를 불렀고, 귀신이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나는 이야기하느라 지쳤소." 클링조르가 말했다. "그래서 내 하인을 보내니 그가 한동안 당신과 싸울 것이오, 볼프람."

그러자 귀신이 노래를 시작하여 세계의 시작부터 은총의 시간까지를 노래하였다. 그러나 볼프람은 (기독교의) 영원한 말씀이 태어난 일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가 거룩하게 바뀌는 일(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행한 일이며, 미사 드릴 때에도 일어나는 일)을 노래하였기에 악마는 입을 다물고 그곳에서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클링조르는 볼프람이 학식이 풍부한 말로 신의 비밀을 노래하는 것을 듣고 그도 학자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볼프람은 그곳의 시민 티첼 고트살크의 집에 묵고 있었다. 그 집은 도시 한가운데 빵 시장 맞은편에 있었다. 밤에 그가 잠을 자는데 클링조르가 그에게 다시 악마를 보내서 그가 학자인지 문외한인지를 시험해 보았다. 볼프람은 단순히 신의 말씀만을 아는 사람일 뿐 다른 기술(마법)은 알지 못하였다. 악마는 하늘의 별들에 대하여 노래하고, 질문들을 내놓았지만 볼프람은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침묵을 지키자 악마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돌벽이 마치 밀가루 반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돌벽에 글을 썼다. "볼프람, 너는 나불나불 지껄이는 문외한이구나!" 이어서 악마는 사라졌지만 벽에 쓴 글씨는 그대로 남았다. 한데 이 기적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집주인은 넌더리가 나서 이 돌벽을 부수어 호르젤 골짜기에 던져 버렸다.

클링조르는 이 소식을 듣고는 영토백작에게 하직을 고하고 선물을 두둑이 받고, 하인들까지 모두 함께 담요를 타고서 이곳에 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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