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탄호이저에 관한 여러 전설
루트비히 티크 <충직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
호프만 <탄호이저>
하이네 <탄호이저>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45년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 극장(드레스덴판)
1861년 파리 오페라하우스(파리판)
배경 13세기 초 독일 튀링겐 지방의 바르트부르크 성
<2008년 4월 바르셀로나 리세우대극장 공연 / 201분 / 한글자막>
리세우대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세바스티안 바이글 지휘 / 로버트 카슨 연출
탄호이저...................음유시인이자 기사......페터 자이페르트(테너)
볼프람 폰 에셴바흐.....음유시인이자 기사......마르쿠스 아이헤(바리톤)
헤르만......................튀링겐의 영주............귄터 그로이스뵉(베이스)
엘리자베트................헤르만의 조카딸.........페트라 마리아 슈니처(소프라노)
베누스......................사랑과 관능의 여신.....베아트리스 위리아-몽종(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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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세계적인 연출가 로버트 카슨이 연출한 바그너의 대표 오페라
탄호이저는 13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독일의 미네징거(음유시인기사)다. 1245년에서 1265까지 그의 이름으로 된 시들이 등장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가 베누스의 소굴인 베누스베르크를 발견하여 그 곳에서 환락의 세월을 보내다가 회개하고 교황 우르반 4세의 용서를 받기 위해 로마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며, 이 전설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중심내용이 되었다.
라 페니체의 <라 트라비아타>와 파리 오페라의 <호프만의 이야기> 등의 영상물을 통해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오페라 연출가 로버트 카슨이 2008년 바르셀로나 리세우의 무대에 올렸던 <탄호이저> 프로덕션이 영상물로 출시되었다. 바그너 가수들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페터 자이페르트, 페트라 마리아 슈니처 부부가 탄호이저와 엘리자베트를 노래하였으며, 팜므 파탈 배역들에서 특히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베아트리스 위리아-몽종이 관능적인 베누스를 열연하였다. 성과 속 사이에서 방황하는 탄호이저와 각각 성과 속을 대표하는 여성캐릭터들인 엘리자베트와 베누스가 함께 펼쳐나가는 이 오페라에는 베누스베르크의 환락, 바르트부르크 대회의 장엄함과 같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순례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전당의 노래, 축전행진곡과 같은 명곡들이 가득하다. 카슨의 상상력 속에서 중세의 미네징거인 탄호이저는 현대의 고뇌하는 화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공연에서 타이틀 롤을 노래한 페터 자이페르트는 명실상부한 현존 최고의 바그너 테너 중 한 사람이다. 1954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그는 뒤셀도르프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1978년 고향의 오페라하우스인 라인 도이치오퍼에서 데뷔를 했다. 초기에는 맑고 가벼운 자신의 목소리를 살려서 모차르트나 베버, 그리고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통해 주목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로엔그린, 탄호이저, 발터, 지크프리트 등의 주요 바그너 배역들을 통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헬덴 테너(영웅적 테너)의 한 사람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한 때 15세 연상의 소프라노 루치아 폽과 부부였으며, 현재의 부인은 바로 본 공연에서 함께 공연한 페트라 마리아 슈니처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은진 글>
탄호이저
리하르트 바그너
〈탄호이저〉는 서른 두 살의 청년 바그너가 ‘낭만적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이후 그의 음악적 이상을 구체화한 ‘음악극’의 전조들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 아리아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구별 짓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기법은 훗날의 무한선율을 예시하는 듯 하며, 라이트모티브적인 선율재료의 사용도 두드러진다.
독일 오페라와 프랑스 오페라의 결합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아이디어를 하인리히 하이네에게서 얻었던 바그너는, 다시 한 번 하이네의 풍자적인 시를 바탕으로 하여 〈탄호이저〉를 구상하였다. 그는 하이네의 시 뿐만 아니라 루트비히 티크의 소설 《진실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와 15세기의 민담 ‘탄호이저의 노래’, 그리고 벡슈타인이 수집한 튀링겐 설화집을 참고로 대본을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탄호이저〉의 대본은 독일 오페라의 신화적 요소와 프랑스 그랑 도페라의 중세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바그너는 역사적 실존인물인 14세기의 한 음유시인의 이야기와 베누스 신화를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를 하나로 묶었다. 무대의 배경 역시 바르트부르크 성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신화적인 베누스베르크로 양분되도록 연출했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악기편성에 있다. 프랑스의 오페라 양식에 따라 무대 위에 관악기 앙상블을 편성하였으며, 발레 장면도 삽입하였다. 하프를 사용한 것 역시 프랑스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금관악기의 편성에 있어서는 독일의 관습을 따라서 12개의 발트호른을 사용했다.
초연의 실패와 개정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당시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연출과 지휘를 맡아 초연하기로 결심한 바그너는 3막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고민하다가, 탄호이저가 베누스 산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엘리자베트의 죽음 등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환상과 설명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그러나 1845년의 초연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청중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사건이 전개되지 않고 설명으로 이어가는 연출에 지루함을 느꼈고, 바그너는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펼쳐지도록 수정을 가한다.
몇 년 후, 독일에서의 정치적 박해로 피해 프랑스에 자리잡기를 원했던 바그너는 파리에서 오페라작곡가로 성공하리라는 포부를 품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나폴레옹 3세와 친분이 두터웠던 머물던 오스트리아 대사의 아내 메테르니히 공녀의 제안으로 파리 무대에서 〈탄호이저〉를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 바그너는, 오페라가 공연될 파리 오페라극장의 전통을 수용하여 발레 장면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파리 공연 역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메테르니히 공녀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일련의 귀족들이 공연 중에 야유를 퍼부었고, 이로 인해 오페라의 중심지 파리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바그너의 희망은 좌절로 끝나게 된다.
불행한 천재의 초상
〈탄호이저〉는 중세의 음유시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면서도, 동시대의 볼프람 폰 에셴바흐나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와는 달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이다. 바그너는 이 인물을 둘러싼 전설적인 설화들을 통해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지 못해 비극을 맞게 되는 탄호이저의 모습 속에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신하면서도, 청중들의 야유와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던 바그너는 종교적 금기를 어김으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탄호이저의 운명에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