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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이모저모

오페라의 대본과 대본작가

작성자서푼짜리오페라|작성시간13.02.25|조회수1,073 목록 댓글 0

리브레토(대본)와 리브레티스트(대본작가)

 

오페라에서 대본을 '리브레토(libretto)'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원래 '작은 책'이라는 이탈리아 어로서 대본집을 일컫는 말이다. 대본이 없는 오페라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오페라의 초창기에는 지금과 같은 제대로 된 대본이 아니라, 조악한 스케치 정도로서 대본가의 역할이 미미했다. 그러다가 필립 키노가 륄리를 위해서 썼던 것이 본격적인 최초의 대본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 시대를 거치면서 오페라에서 음악뿐 아니라 대본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면서 전문적인 대본가들이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들을 '리브레티스트(librettist)'라고 불렀다.

 

리브레티스트들은 작품의 창작보다는 대본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특히 그들은 창작력이 고갈되어도 기존의 유명 희곡이나 소설들을 마음대로 각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리브레티스트들에게는 창작보다는 원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축소, 압축하여 각색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덕목이었다. 원작 희곡이 오페라로 각색될 때, 보통 지문과 복선은 축소되고 대사는(아리아를 위하여) 더욱 늘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리브레티스트들이 가장 좋아한 원작자들로는 셰익스피어를 필두로 스코트, 쉴러, 괴테, 위고, 뒤마 피스, 바이런, 빅토리앙 사르두 등이었다. 물론 그들이 먼저 리브레토를 써서 그것을 작곡가나 극장장에게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리브레티스트와 작곡가 그리고 극장측이 초기 단계부터 함께 기획, 작업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한 마디로 요즘의 영화 제작과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명한 작곡가들과 함께 스타급의 대본가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포스터나 프로그램에 작곡가들보다도 리브레티스트들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유명한 스타급 리브레티스트들로는 이탈리아의 펠리체 로마니, 살바토레 캄마라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아리고 보이토, 프랑스의 유진 스크리브, 쥘 바르비에르, 생 조르주, 미셀 카레 등이 유명했다.

특히 몇몇 작곡가들이 리브레티스트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협조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는데, 모차르트와 로렌초 다 폰테, 오펜바흐와 앙리 베이야크, 벨리니와 펠리체 로마니, 도니체티와 살바토레 캄마라노, 베르디와 아리고 보이토, 푸치니와 루이지 일리카 및 주세페 자코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후고 폰 호프만슈탈은 최고의 명콤비들로서 걸작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대본가들이 없었다면 그 작곡가들의 명작을 향한 창작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특히 문학에 자신이 있던 바그너는 가장 좋은 창작의 형태는 한 사람이 대본과 작곡을 모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대본과 작곡을 혼자 다 맡아서 악극의 형태를 완성했다. 그 후 바그너를 지지하는 후배들이 그의 스타일을 따르기도 했다.

 

- <불멸의 오페라 1권, 박종호> 279~2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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