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수업
유형준
꽃다발이 문을 열더니 중학생 아들을 앞세운 한 가족이 들어선다. 오랜 동안 시인과 친분을 나누어 온 덕에 서로의 지인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데, 그 부부는 처음이었다. 오늘 첫 시집을 출간한 시인의 친구 부부다. 시인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차리고 자유롭게 놓아둔 의자에 앉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드님이 시에 관심이 있나봅니다.”
“그렇진 않은데요...”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어서 의자 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귀를 집중하였다.
“고향을 가르쳐 주려고요.”
뜸들이지 않고 바로 응답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 대답하는 품새는 아니었다.
‘고향을 가르친다.’돌아오는 내내 학생 부모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르친다면 교과목의 명칭이 있을 것이다. 이제껏 ‘무제’라는 과목은 들어본 적이 없고, 마침 고향을 가르치니 ‘고향 수업’은 어떨까?
수업 첫 시간엔 고향의 정의를 가르친다. 아마 어쩌면 이 이야기만으로 수업시간 전체를 채울 지도 모를 일이다. 가능한 시간을 맞추어 정의를 간동그려 이런 내용을 담는다. ‘고향은 자기가 살아온 추억과 그리움이다. 고향은 멈추어 그대로 있는 공간과 세월의 길이, 그리고 인심이라고 이르는 인간의 마음 등이 함께 또는 따로 작동한다. 그래서 고향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태어난 생물학적 고향인 어머니 뱃속, 산과 강과 저녁연기 오르는 포근한 집으로 떠오르는 지리학적 고향, 그리고 인심과 시집과 시낭송이 우러나오는 정신적 지도로 그려지는 정신적 고향 등이다.’
다음엔 고향이 생기는 원리를 가르친다. 태어나 자라면 그 곳이 출생 성장의 고향이 되는 게 가장 흔한 원리다. 그러나 문명의 가파른 발전과 문화의 물질화는 공간은 물론 시간의 개념마저 바꾸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공간적 시간적 현실로서 존재하는 고향만 생기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참새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마을의/노오란 초가을의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이시영, 「마음의 고향․6-초설(初雪)」일부)라고 마음 속 지도로 또는 추억의 시계로 그릴 수 있고 되감을 수 있는 고향도 생긴다.
‘없던 것이 새로 있게 되다’를 뜻하는 ‘생기다’의 옛말은 ‘삼기다’다. ‘삼기다’는 ‘무엇을 무엇으로 가정하다’를 뜻하는 ‘삼다’에 접미사 ‘기’가 붙은 옛말이다. 예를 들어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의 첫 부분 "이 몸 삼기실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는 요즈음 표현으로 “이 몸 태어날 때 임 따라 태어났으니 한 평생의 인연이며 하늘도 아는 일 아닌가”다. 따라서 ‘고향이 생기다’는 ‘고향을 삼다’와 의미를 나누어 간직한 채 태어나 자란 곳이나 그 시절 또는 그 인심을 고향으로 삼고, 한 조각 추억 또는 작은 별 하나, 시 한 구절을 고향 삼기도 한다.
이어서 고향과 관련된 실제 경험을 스스럼없이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 중에서 작디작은 별 하나처럼 지극히 다양한 고향 중의 한 예라고 덧붙인다.
무의촌 파견제도가 있던 1979년 가을,제주도 북제주군 보건소 김녕 동부지소에 배속을 받게 되었다. 돌 사진에서 보아온 제주도였기에 파견이라는 업무적 의미 이외에 또 다른 심정으로 파견지로 떠났다. 서 있어도 누워 있어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 그곳이 돌 사진의 배경이 된 것은 625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3남매를 업고 안고 서울을 떠난 부모님은 목포항에서 군용선에 올라 제주에 닿으셨다. 오현 학교의 피난민 교회 천막촌에 머무르시며 틈마다 사라봉에 올라 뭍을 바라보며 절박한 현실을 추스르곤 하셨다. 그러나 공비들의 출몰로 잠시도 편할 수 없었고 섬을 두어 번 쫓겨 돌다가 모슬포에 위치한 둥근 지붕의 기상관측소 부근에 머물렀다. 그런 연유로 돌 사진의 배경엔 지금도 둥근 지붕이 보인다.
경험담 말미엔 ‘고향이라면 앞으로 바라보는 것보다는 뒤돌아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돌아볼 수 있는 회상, 어렵고 고달플 때 떠오르는 연상이 담겨 있는 곳. 아니 어쩌면 회상과 연상 그 자체’라고 흉금을 털어 놓으며 마무리 한다.
‘어느 곳이나 마음을 붙여 살아가노라면 정도 든다’는 뜻으로 ‘살아가면 고향’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는 것만으로 고향이 생길까. 헐리고 무너져가는 요즈음, 어디를 고향 삼을 것인가? 무엇을 고향 삼을 것인가?
자연은 맴돌고 인생은 전진한다. 아무리 인생이 세월 따라 흘러도 자연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있다. 어머니도 죽마고우도 흙 한 덩이도 그리고 시 한 구절도 태어나 자랄 때 보고 듣고 느끼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바쁘게 달려가다 가끔씩 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인심의 그 지점. 그곳이 바로 고향이 아닐까.
세파에 쓸려 풀어지거나 자빠지지 않도록 서로 팔을 겯고 가슴을 결어 살아가라고 시가 모여 시집으로 태어나는 곳에서 고향 수업을 하는 부부의 말이 가슴속 깊이 맴돈다. “고향을 가르칩니다.”
『에세이스트』 2018년 1,2월호(통권 77호) pp.44-47.
유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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