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빛이 보인다(수필과 비평)

작성자다인|작성시간12.06.07|조회수94 목록 댓글 4

                                               희망, 빛이 보인다


  오늘 다시 입원해야 한다. 내일 왼쪽 폐를 수술받기 위해서다. 우울하다. 창밖, 숲의 앙상한 나무들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고 쓸쓸함만을 더해준다. 먹먹한 슬픔이 명치끝으로 차오른다. 위안과 격려의 말을 듣고 싶으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내는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러 외출중이다. 그녀도 우울할 것이다. 남편이 또 수술대에 오른다고 하면 어느 누군들 우울하지 않겠는가.

 

  기분을 전환하려고 집 가까운 산을 오른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내리는 늦은 2월 햇볕은 아직 따사롭기보다는 싸늘하다. 차다는 느낌이 산뜻함을 가져온다. 투명한 공기에 조금 위안을 받는다. 산길 주위를 둘러보니 키가 큰 참나무, 소나무, 아카시나무 사이사이로 높이가 낮은 복숭아나무, 싸리나무, 찔레나무, 진달래나무가 보인다.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여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저들의 앙상한 가지에서도 새싹이 움트고 꽃이 필 것이다. 지금은 땅 속 깜깜한 어둠 속에서 꽃과 잎의 태아가 방황하고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생명의 끈질김을 보여주기 위하여, 누군가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피부를 찢는 아픔을 견디고 잎을 피워낼 것이며, 객혈 같은 가슴속 붉은 피를 쏟아내어 꽃을 피울 것이다. 잎을 열고 열매를 맺어 보시(布施)하는 것이, 꽃을 피워 당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든지를 그들은 알지만 그래도 태연한 듯 그것들을 감추면서 보여 줄 것이다. 

 

  어쩌면 내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는 암 덩어리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객혈인지도 모른다. 가슴 찢는 고통을 겪으면서 삶이란 본질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남에게 미소를 한 번 더 주는 보시의 삶을 살라고 가르쳐주는 계시물인지도 모른다. 암이란 것도 내가 좋아서 붙어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몸이 얻을 것 하나 없는 뻔뻔한 철판 같은 존재였다면 아무리 먹성 좋고 생활력이 강한 암이라도 내 몸에 붙어살려고 하였겠는가.

 

  얼마간 기분이 좋아진다. 살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 오늘 입원해야 한다는 사실이 오래 잊었다가 생각난 듯 문뜩 떠오른다. 그렇게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병원이었지만 가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집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날도 이미 저물어 가고 있다. 저녁을 먹고 입원하면 간호사들이 어떤 말을 할까? 늦게 입원하는 내 심정을 주치 교수는 이해해 줄까?

 

  저녁 먹고 오후 늦게 입원을 한다. 내가 입원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치 교수는 방금 전에  퇴근했다고 간호사가 전해준다. 입원하니 또다시 기분이 우울해진다. 여러번 수술을 받는다고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수술할 때마다 두려움이 겹을 더해 차라리 몸을 더욱 옥죈다. 죽음이란 단어가 현실 속으로 다가와 실감나기도 한다.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었지만 수술이란 단어가 죽음을 현실로 형상화시킨다. 반대 측 폐로 전이된 암을 수술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병이 번질대로 번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에 죽음이란 단어와 별개로 떨어져 잘 생각되지 않는다. 죽음이란 어떤 색깔일까? 검은 색일까, 흰색일까? 

 

  피검사, 심전도 검사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다. 병실로 돌아오니 주치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 늦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퇴근했다고, 미안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내일 첫 스케줄로 수술한다고 치료 계획을 전해준다. 처음 수술할 때 두 번째 수술 스케줄이어서 내가 화를 냈던 것을 의식한 듯하다. 건강하게 살 때에는 어느 정도의 서러움은 웃으면서 넘기지만 병에 걸려 좌절된 삶을 사는 동안에는 조그만 섭섭함도 참지 못하고 서러워진다. 흉잡히지 않을 정도의 어떤 위엄이 슬픔에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품위를 지키기가 싶지 않다. 마치 덫에 잘못 걸려들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의 기분과도 흡사하다. 고독한 서러움이 생기고 공포감을 감춘 서러움을 숨기고자 마음이 날카로워져서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일에도 발끈 성을 내기도 한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 이성복의 <바다> 일부


  수술용 침대에 눕혀 수술실로 실려 간다. 수술 방에 들어가니 침울한 무거운 공기가 방을 꽉 채운 듯 조용하다. 마취과 의사가 한 마디 말도 없이 다가온다. 인사도 없다. 남의 불행 앞에 입을 떼기가 겁이 나는 모양이다. 수술 간호사가 수술 기구를 준비하는 소리와 마취과 보조원들이 마취를 준비하는 소리만 들린다. 나도 눈을 뜨지 않는다. 인사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두 번씩 수술을 받아야 하는 운명에 성이나 독기를 품고 웅크리고 있는 동물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잠이 온다. 무언가 혈관 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있다. 마취제의 흐름이 혈관 속으로 번진다. 힘주어 감았던 눈의 근육이, 움켜쥐었던 손의 힘이 스르르 풀린다. 어둠이, 어둠이 머릿속을 채운다. 

 

  잠을 깬다. 병실이다. 왼쪽 옆구리에는 두툼한 반창고가 둔덕을 이루고 있다. 꼬리처럼 그 곳에 튜브가 달려있고 병실 바닥의 통으로 피를 흘려보내고 있다. 수술이 끝난 것이다. 또 한 번의 생(生)과 사(死)의 강을 건넌 것이다. 암흑과 명징(明澄)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안도감이 엄습한다. 암을 도려낸 몸은, 고통을 해산한 몸처럼, 난산 끝에 아기를 낳은 임산부처럼, 늘어지고 풀어진다.

오후에 주치의 교수가 회진을 왔다. 흉강경으로 수술해서 지난번 보다는 고생을 덜 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수술 소견은?” “아마도 오른쪽 병변이 전이된 것으로 봐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한다. 수고했다고 그에게 웃음을 지어준다. 가식의 웃음처럼 느껴진다. 풀어졌던 근육이 다시 긴장한다.   

 

  언젠가 모로코 말라캐쉬에서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 에사우이라(Essaouria)로 관광을 가던 도중이었다.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서 모로코인이 낙타에게 무릎을 꿇도록 명령을 했다. 관광객이 등에 타고 사진을 찍도록 하기 위해서다. 낙타는 슬픈 빛을 띄운 커다란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며 다리를 접고 무릎을 꿇었다. 그 눈이 너무나 슬퍼보였다. 낙타는 먼 길을 떠날 때에만 무릎을 꿇는다고 하던데, 사하라 사막을 향하여 첫 걸음을 뗄 때의 자존심을 버리고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하여 무릎을 꿇는 것이 안타가워서 저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 눈도 슬픈 빛을 뛰고 있을 것이다. 암이라는 존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처량해서일 수도 있고 사하라 사막을 걷듯 웅대한 꿈을 담고 걸어왔던 삶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그리워할 신세가 된 점이 서러워서 일수도 있다. 왜 낙타, 그 미련하게만 보이는 동물이 지금 이 시간에 떠오르는가.

 

  퇴원하려고 할 때 병리과 교수의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이번 수술한 왼쪽 폐의 병변은 바른쪽 폐에서 전이한 암이 아니고 왼쪽 폐 자체에서 생긴 이차성 원발 종양이라고 한다.

‘이차성 원발 종양이라니? 그런 것도 있나?’   

“병리 조직상 바른쪽 암은 재발하고 옆 자리로 전이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왼쪽 것은 오른쪽 암이 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새로 생긴 암으로 생각됩니다. 조직 소견상 왼쪽 것은 처음 수술한 오른쪽 폐암보다는 약간 악성도가 높지만 그래도 전이성 암보다는 양호합니다.”

아, 이차성 원발 폐암이란 것도 있구나. 오른쪽 것과는 독립적으로 생긴, 다른 자리에 새로 생기는 암도 있구나.

그래, 희망의 빛이 보인다. 어둠의 끝자락이 툭 터지듯 밝은 빛이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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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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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소 | 작성시간 12.06.08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거나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 세상이 온통 차갑게만 보이고, 반대로 행복하거나 일이 잘 풀리면 이번에는 반대로 세상이 따뜻해 보이지요. 세상은 언제나 같은데 말입니다.
    교수님의 마음이 잘드러나는 글입니다.
    지난 번 총회에 아주 건강한 모습을 뵈서 참 좋았습니다.
  • 작성자다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08 감사합니다. 지금은 환자도 보고 수술도 합니다. 건강하시기를.
  • 작성자정경헌 | 작성시간 12.06.11 낙타의 슬픈 눈. 참 그러네요.
    이차성 원발 종양. 용어는 처음 들었을 때는 이상한 것 같았는데, 듣다보니 그렇게 표현될 수 있네요.
    희망입니다. 마음을 자세히 그려주었네요. 좋습니다.ㅎ
  • 답댓글 작성자다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1 학회가 모로코의 말라케쉬에서 있었는데 학회 끝나고 관광가던 중 본 낙타입니다. 본래 여기에는 사하라사막이 있어 학회 참석했던 일부는 사하라사막 횡단을 했는데 저는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천추의 한으로 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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