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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동기회 활동

②대륜개교104주년행사 "故이상화(李相和)고택" 탐방 - 2025.09.15

작성자와카노(채상수)|작성시간25.09.17|조회수176 목록 댓글 0

2025 대륜개교104주년행사
②"故이상화 (李相和) 고택 " 탐방 - 2025.09.15 

서상돈(徐相燉)
대구출생(1851~1913) 세례명은 아우구시티노.
일제강점기 경상도시찰관, 독립협회 제4기 재무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 가문이 되었고, 1801년(순조1) 신유박해 때 강원도와 충청도로, 1839년(헌종5) 기해교난 때는 경상북도 문경·상주 등지로 피난, 1859년(철종10) 대구에 정착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교난 때는 신앙문제로 문중에서 쫓겨나고 가산도 탕진해버렸다. 1871년 대구로 돌아온 뒤 독학을 하면서 지물(紙物)행상 및 포목상을 시작하였다.
 
1886년경 상당한 재벌로 부상했으며, 이후 정부의 특명으로 경상도시찰관에 임명되었다.
이 때부터 대구교회 로베르(Robert, A. J., 金保祿)신부를 중심으로 교회발전에 힘썼다. 시찰관에서 퇴임한 뒤 실업계의 중진으로 대구의 경제권을 좌우할 만큼 갑부 대열에 들었다. 그 뒤 대구교구가 설립되자 이의 발전에 힘쓰면서 성직자 돕기와 수녀 보호에 솔선수범하였다.
한편,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이의 수호에 앞장선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약했는데, 독립협회 제4기 민중투쟁기에는 재무부과장 및 부장급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2월 16일 대구 광문사(廣文社)에서 그 명칭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를 마친 뒤, 광문사 부사장으로서 담배를 끊어 당시의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이 자리에 참석한 회원들이 2,000여환을 갹출하고,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로 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였다.
그 요지는 국채 1300만환은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된 것으로, 2000만 국민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하지 않고 그 대금 20전씩을 거둔다면 1300만환을 모을 수 있으며, 나머지는 특별모금한다는 것이었다.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등과 함께 전개한 국채보상운동은『황성신문(皇城新聞)』·『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제국신문(帝國新聞)』등을 비롯한 민족언론기관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 모인 자금은 그 뒤에 전개된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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