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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와인코너가 변했다. 그래서 오늘은 대형마트에서 와인 고르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련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일산의 대형마트인 이마트 탄현점과 홈에버 일산점, 그리고 코스트코 와인을 따로따로 묶어서 비교해보는 기획을 하려고 했으나 블로그질이 본업도 아니고 시간상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일단은 접었다.
요 대목에서 '일산에는 롯데마트랑 하나로마트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나, 롯데마트 와인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관계자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거기서는 고를 게 없더라. 정말로 생뚱 맞게 랑슈바쥬가 유리상자 안에 도난방지 텍이 걸린 채 있었는데 너무 불쌍해보였다. 다른 허접 와인과 너무 격이 다르다. 어딜 가나 허접 와인도 갖춰져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같은 7천원대 와인이라도 맛없는 걸 잘도 모아 두었다. 현란하고 촌스러운 라벨은 그렇다 치고 정말 사기 두려워 보인다. 사실 다 마셔본 것도 아니면서 욕하는 측면도 있다. 사실 거기서 파는 두 종류는 최근 친구네 집에서 마셔보고 노랑 꼬랑지 등등은 회식자리에서 맛보긴 했지만 그 외에 것들은 생소한 것 투성이다. 그러나 마셔본 몇몇개가 다 최악의 와인으로 기억되는 것들이다. 도대체 어느 수입업체랑 거래를 하는지 궁금하다.
하나로 마트는 최근 와인코너를 확장하고 아이템도 상당히 늘렸더라. 하지만 막상 거기서 사본 적이 없어 언급할 수가 없다.
이런 관계로 제목은 대형마트에서 와인 고르기지만 주로 이마트와 홈에버 코스트코 이야기가 된다.
전에는 대형마트는 일단 보관 환경 자체가 별로 안 좋고 전문성이 떨어지고 아무래도 대량판매를 지향하다보니 대중성을 띌 수 밖에 없어서 다소 비사더라도 와인 전문점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와인이 돈이 되니 대부분의 대형마트들이 와인 코너를 Shop in Shop 처럼 꾸며놓고 아이템도 상당히 버라이어티하게 갖췄다.
또 매장이 개선된 것도 원인이 되어 판매가 늘다보니 회전율이 높아져 보관환경에 따른 리스크도 많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파리 날리는 와인전문점보다 오히려 망가질 확률이 줄었다고도 볼 수 있다.
거기에 대량구매 대량소비가 이루어지니 당연히 와인샵보다 다만 몇 백원이라도 싼 경우가 많다. 특히 코스트코의 가격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와인 전문점이라고 해도 똘똘한 곳은 강남에 집중되어 있고 내가 사는 일산 지역에는 똘똘하고 아니고를 떠나 내가 알기로는 4군데밖에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러 와인 사러 멀리 찾아가기보다는 가까운 대형마트를 찾게 된다고 본다.
이처럼 각 대형마트들이 와인코너에 힘을 쏟는 것은 선순환의 고리를만들어 내어 와인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 올려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시 아직까지는 고급와인을 대형마트에서 사기는 부담스럽다. 뜨거운 열을 내뿜는 할로겐 전구를 달아놓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진열대를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비싼 와인은 회전율이 떨어져 보관상태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또 고급 와인의 아이템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거래하는 두서너 군데 수입업체가 가져오는 것만 취급하기 때문이다. 금양, 길진, 아간코리아, 신동 등과 거래하는 곳은 거기 것 밖에 없고(당연한 이야기지만) 홈에버는 자기네 계열사 것 위주로 되어 있어 더더욱 제한적이다. 소량으로 가져다가 진열할 체제가 아니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어지간히 마셔본 소비자보다 더 모르는 더 비전문적이지만 매상을 올리겠다는 신념만은 매우 강해 찰거머리처럼 밀착해서 자기네 회사 제품을 강권하는 도우미들은 언제나 참 부담스럽다. 정작 중요한 정보는 설명을 못하고 매뉴얼에 나오는 이야기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한다. 수입업체도 기왕 보내려면 좀 마셔보게 한 다음에 내보내줬으면 좋겠다. 자기도 안 마셔본 걸 팔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도우미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족을 부치면
얼마 전에 와인을 고르다가 옆에서 본 장면인데, 한 부부가 와인 두 병을 꺼내 들고 도우미에게 어느 쪽이 낫냐고 묻더라. 내 예상대로 그 도우미는 그 부부에게 어떤 취향을 좋아하냐고 묻지도 않고 자기네 회사 제품을 추천하는 걸 봤다. 그야 나도 그 도우미 입장이라면 그랬을 꺼다. 그 도우미가 비양심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묻는 사람이 잘못된거다. 도우미들은 수입업체에서 파견나온 사람들이지 마트 소속 직원이 아니다.
어찌됐건 1만원 이하 혹은 2만원 전후 와인은 대형마트에 강점이 있다. 역시 대량소비가 이루어지는곳이니 만큼 대중적인 와인을 사기에는 적당하다.
그러면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서
코스트코.
와인 소비자에게 있어서는 최고 수준이다.
중고가 와인과 고가 와인에 있어서는 특히 강하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은 제법 다양하고 가격도 환상적으로 저렴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2만원 아래의 데일리 와인 중에서 월등히 싸고 맛있는 게 많다.
Columbia Crest Two Vines 14000원 정도이지만 훌륭하다. 다만 오크칩도 띄우고 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PascualToso도 17000원짜리 치고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토레스의 아트리움도 좋고 그랑 코로나스도 다른 곳보다 싸게 살 수 잇고 맛있는 와인이다. 토레스가 칠레에서 만드는 Manso de verasco도 훌륭하다.
유일한 단점은 만원 이하짜리 와인은 거의 전무하고 대신 4리터짜리 팩와인을 싸게 살 수 있다.
이마트(탄현점)
장족의 발전을 했다. 돈냄새를 맡는 능력은 역시 탁월한 것 같다. 손님이 많으니 회전율이 높고 아이템이 다양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코스트코와는 단순 비교하기 어려우니 홈에버와 비교를 하자면 100원 이라도 싼 게 더 많다. 아이템도 훨씬 다양하고... 만원대 2만원대 5만원대 생산지별로 다 다양하다. 내가 자주 사는 아이템은 시트라 빨강줄(몬테풀치아노 다부죠)와 상그레 데 토로다. 만원 이하 와인을 이것저것 도전해보는데 한 반 정도는 마실만하고 반 정도는 꽝이고 그렇다. 역시 유럽보다는 신대륙 와인 중에 괜찮은 게 많다. 또 도우미들이 집요하지 않은 것도 매력이다.
그러나 역시 조명과 먼지 등은 걱정된다.
홈에버(일산점)
기독교 기업이라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완전 싸가지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줘서 불매운동에 동참했었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증명사진찍으러 갔다가 참새가 방아간 그냥 못지나가듯 와인 몇 병 들고 나온 게 화근이 되어 그 후에도 몇 번 갔다.
여기의 가장 큰 특징은 계열사가 수입해온 와인에 있다. 다른 곳에서는 파는 걸 못 봤으니 여기서 수입한 와인을 마시려면 천상 홈에버에 와야한다.
여기서도 사기성을 발휘하는데, 한참 전에 실시한 로버트 파커 기획전이 그 예이다. 파커가 90점 준 건 2003년 빈티지인데 2004년 껄 갖다놓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빈티지를 갖다 놓은 게 몇몇 개 있더라.
일반 기업이라면 몰라도 기독교 기업이 그럼 못쓴다.
여하튼 이 홈에버 계열 수입회사가 가져오는 와인 중에는 괜찮은 게 많더라. 괜찮은 건 100% 스페인 와인이었다. 스페인 와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홈에버 불매운동을 접게 하기에 충분한 유혹이다.
문제는 한 번 들여온 게 다 팔리면 다신 안들여온다는 게 문제다. 정말 맛있게 느껴져서 박스떼기하러 갔더니 한 병도 없고 다시 들어올 지 불투명 하단다. 대형마트 맞나? 하는 생각 든다.
만원 이하 저가 와인은 검증된 게 없어서 사기에 겁난다.
고급 와인은 별로 다양하지 못한 것같다.
결국 중저가 스페인 와인에 특출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쳐지는 곳이다.
최근에 이마트에서는 개점 몇 주년이다 뭐다 해서 와인 할인을 자주하더라.
소비자들이 많이 찾으면 대량 구입으로 단가를 더 낮출 수 있고 그러면 손님은 더 몰려 선순환이 일어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니 열심히 마시자.
혹시라도 업체 측에서 이 글을 본다면 와인에 대한 설명을 보다 자세하게 붙여주길 바라고 무작정 가져다 팔기 보다는 어떤 주제를 놓고 기획을 벌여 소비자들이 와인에 대한 관심을 높여줬으면 좋겠다. 저변이 넓어져야 와인 산업이 살고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을테니...
어서 삼겹살집에서도 와인을 골라 시킬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9-10월에 마신 와인 정리 좀 하자.
시트라나 팔리오, 상그레 데 토로처럼 숱하게 마셔 온 와인, 여기 소개했던 와인을 뺴고 나니 다행히 몇 개 없다.
우선 홈에버에서 산 와인을 올려보자. 여름에(요즘은 10월도 여름이니) 산 게 많으니 이미 단종됐을지도 모르겠다.
Panarroz
꿩대신 닭으로 잡아온 녀석인데 라벨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아 큰 기대를 안 했다.
그러나 맛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묵직한 게 스페인 와인 특유의 매력이 있다.
아주 훌륭한 와인이었다.
거의 2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25000원이라고 해도 만족했을 것 같다. 라벨도 웬지 고급스럽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울 때 홈에버가 근처에 없는 동네에 사는 분 집에 초대받아 갈 때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 맛은 고급이고 가격은 보통이니^^
스페인 치고는 상당히 세련된 맛이다. 고급 와인의 품격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 그러면서도 빡빡하게 조여오는 탄닌은 고기 요리와 잘 어울렸다.
그러나 다시 갔을 때는 이미 사라졌다.
이건 작년 말에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마셔본 2만원 전후 와인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수입업체 관계자분께서 보시면 꼭 좀 다시 들여오시길...
작년 송년회에서 마셨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평가한 글을 올렸다.
3만원 이상해도 아무 불평 안나올 맛이다.
Agustinos
5병을 사면 20% 할인을 해준다길래 나머지 한병을 뭘 더 넣을지 고르다가 가죽으로 된 얼룩말 열쇠고리가 붙어있길래 덜컥 사버렸다. 물론 나무향이 강하다는 설명도 보긴 했지만.^^ 도우미아가씨가 "열쇠고리 때문에 사는 건 아니시죠?"라고 묻길래 창피해서 "네 아니죠"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딸한테 주고 싶어서 산 거 맞다. 쩝
설명처럼 나무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만5천원 전후의 칠레와인치고는 만족스러운 와인이었다. 너무 인위적인 치장을 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Chakana CS
이 녀석과 형제인 양이 그려진 쉬라를 먹고 크게 실망했지만 CS는 다를 것 같아 무모한 도전을 해봤다. 다행히 괜찮았다.
무난하다. 2만원 전후 와인 중에 크게 훌륭한 구석도 크게 쳐지는 구석도 없이 고만고만하기 하지만 무난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Guibon03
계속 바쁘다보니 집에서 마음 편히 와인을 즐기기도 힘들었다.
그럴 때는 가격 대비 맛이 강한 신대륙 와인을 사다놓고 마시다가 남기고 다음 날 또 조금 마시고 그런 식으로 마시게 되는 날이 많다.
그런데 신대륙 와인만 마시다보면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럴 때 찾게 되는 것이 무통카떼 급 와인이다. 하지만 무통카뗴 즉 무통의 막내도 무통은 무통이다. 고로 비싸다. 즉 25000원 아래에서 찾고 싶을 때는 참 망설여진다. 자칫 잘못 고르면 맛은 별로이고 원하는 스타일의 매력도 못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즉, 2.5만원 이하 중저가 신대륙 와인만 마시다보면 느껴지는 허망함이란 복합미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이렉트, 스트레이트...확실한 매력은 분명히 있지만 직설적이고 직선적인 단순함? 혜택받은 풍요로운 자연환경 덕에 천(天)과 지(地)의 힘으로만 만들어졌거나 인(人)이 노력을 한다기보단 꾀를 부리는 경우가 많기 떄문에 심오할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부족한 거 없이 온실 안 화초처럼 자라 온 사람의 이미지도 오버랩 되기도 하고...일은 잘하지만 융화할 수 없다든지, 아니면 여러 업무 중에서 보고서 편집만 잘하거나 엑셀 작업 하나만 잘하고 나머지는 꽝인 사람의 이미지도 있고...
여하간 신대륙와인은 거친 환경에서 노력을 한 땀이 밴 흔적이 없다는 느낌이다. 물론 신대륙이라고 나무 심어 놓으면 저절로 자라고 그러지야 않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맛이 덜하더라도 유럽 와인, 특히 보르도 와인이 생각날 때가 온다. 뭔가 복합적이고 오묘한 섬세한 차이! 그게 느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론이나 부르고뉴는 또 다르다. 일단 부르고뉴는 이 가격대에는 없다. 비싸니까! 론은 북부 론의 경우 시라 단일품종이고 비싸서 제외되는 게 대부분이고 남부 론의 경우는 여러 포도가 브랜딩되지만 유럽적 특징과 신대륙적 특징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스페인은 말할 나위 없고 이탈리아 와인도 25000원 이하에서는 리호아라든가 키안티의 지역적 특징이 살아있는 와인은 많지만 단순한 신대륙 와인에서 벗어나고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좀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 걸 느껴보고 싶을 때는 결국은 보르도 와인을 찾게 된다.
무통카떼는 이런 목적으로 찾을 때는 아주 훌륭하지만 가격이 좀 글코 그것보다 싼 걸 찾으면 잘못 고르면 싱겁고 맹탕이거나 밸런스가 안 좋은 와인을 만날 경우가 허다하다. 맛도 놓치고 스타일도 놓치게 된다.
25000원 이하면서 믿음직한 선수가 몇 있다.(써놓고 보니 여기까지 오는데 사설이 너무 길구나 ㅋㅋ)
우선 칼베와 지네스테는 역시 유명& 대형 네고시안 답게 좋은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기왕 마시는 거 '샤토' 와인을 마시고 싶어진다. 둘을 추천하고 싶다. 하나는 마르퀴스 드 샤스, 즉 샤스 스플렌의 막동이 와인이다. 근데 이 녀석도 빈티지 격차가 좀 큰 것 같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 기봉이다. 메독도 아닌 보르도라는 광활한 아펠라시옹이긴 하지만 기본적 요소는 갖췄다. 찌그러진 양철냄비에 가죽 옷을 입고 나무 방패 하나 들고 긴 막대 끝에 식칼 하나 묶은 의병 아저씨의 무장처럼 어설프긴 해도 있을 건 다 있는...
이 녀석도 보르도 출신이랍시고 브리딩을 오래해야 제 맛이 난다. '신의 물방울'에서 쵸스케가 프랑스와인은 격식을 갖춰 마셔야하는 게 재수없다고 하듯이 이런 걸 불편해 할 지 모르지만 가끔은 그런 격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운전할 때도 가끔은 오토가 아닌 수동 기어로 해보고 싶고 멀쩡한 CD DVD다 놨두고 굳이 비싼 거 시켜놓고 LP판 틀어주는 바에 가고 싶어하는 그런 심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복합성의 흔적도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있다.
요즘 와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에 와인을 즐기기 시작한 분들의 대부분은 주로 칠레를 비롯한 신대륙와인에 익숙한 분들인 것 같다. 그런 분들이 보르도 와인이 도대체 뭐길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이걸 권해보고 싶다.
Pascual Toso
이 녀석의 리저브 와인을 마시고 아르헨티나 와인에 푹 빠지게 됐다.
근데 코스트코에 이게 들어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샀다.
리저브급만큼은 못하지만 16000원대의 가격을 생각하면 매우 훌륭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풍부한 과일향과 감칠맛 나는 오크향, 골격도 좋고 탄닌도 약간 모가 나긴 했지만 오밀조밀 한 게 훌륭하다. 짝으로 사다놓고 싶다.
가장 신뢰하는 두 스페인 와인
너무 바쁘고 힘들 때 이상한 경험을 했다.
끼니도 제대로 못 떼우고 주먹밥이나 씹고 앉아 있는 그런 상황에서 밥 먹을 시간 있으면 차라리 1분이라도 더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냥 막연하게'아~ 와인이 마시고 싶다'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와인 맛이 혀끝 위에 맴도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맛이지? 생각해보니 바로 무가였다.
그래서 그날 이마트 탄현점 진열대에 닜는 세 병 싹쓸어왔다.
마셔보니 바로 그 맛이긴 한데 '아~ 좋다'가 안 나오더라. 그냥 한 모금 마시고 '됐다'라는 생각이 들며 '잠이나 자고 싶은데 이걸 따 놨으니 어쩐담?' 하는 걱정이 되더라. 문득 인생의 종착역에 선 사람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섬뜩했다.
와인인 줄 알고 샀더니 쥬스네.
알콜 도수 2%. 작업용으로도 쓸 수 없는 도수다.
입가심하기에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