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부심벨과 콤옴보 신전
* 2019년 1월 13일 맑음 섭씨 15도~24도
아부심벨 신전은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km 지점에 있는데 수단 공화국과의 국경 지대로 이집트 최남단이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 일행들은 서둘러 크루즈를 떠나 버스에 올랐다.
아스완 올드 댐을 지나 사막 경계 지점에서 수속을 받고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렸다.
무려 3시간 30분을 달려야 되는데 중간에 사막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부심벨 가는 사막지대에서 촬영한 일출>
<흑사막 풍경>
<투시카 신도시 건설 현장의 수로>
<투시카 신도시>
아스완 댐의 물을 끌어들여 수로공사로 신도시가 한창인 지역을 지나며 이집트의 최근 소식을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국가의 가장 큰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서 대통령 무바라크가 축출 당했다고 한다.
신도시 투시카에는 수로가 들어와 있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근처 오아시스처럼 푸른 농경지가 보인다.
<나세르호>
누비아는 고대 아프리카 북동부 수단 일대의 지명으로 이집트인은 이곳 흑인을 놉(Nob 노예)이라고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로마 장군 막시무스 옆에 서 있던 흑인 검투사가 누비아 인이었다.
수도를 나일 강 하류에 정한 람세스 2세가 머나먼 상류에 신전을 지은 것은 국경선과 외부 침략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
<이전한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 19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신전이다.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 룩소르 신전과 함께 람세스 2세의 왕성한 과시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모래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1817년 스위스의 고대 이집트 학자인 조반니 바티스타 벨초니에 의해 발굴되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부심벨’은 발굴 당시 안내인을 맡았던 이집트인 소년의 이름이라고 한다.
1979년 '누비아 유적–아부심벨에서 필레까지'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대신전>
호루스 신과 하토르 신의 작은 입상들이 줄지어 선 입구에 있는 20m에 이르는 4명의 좌상은 모두 람세스 2세의 동일인물로 각각 상, 하 이집트를 의미하는 의상이 조각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보는 방향으로 왼쪽 두 번째의 좌상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지만 떨어진 몸체가 바로 아래에 보존되어 있는 것도 아부심벨의 묘미다.
이 좌상들은 아부심벨 대신전의 간판이라고 해도 좋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의 입상이 8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다.
기둥실의 벽에는 카데시 전투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고, 기둥의 방에는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의 모습이 조각된 벽화가 있다.
<람세스 2세의 좌상>
<드라이빙 여행 카페 회원들의 단체 촬영>
<4개의 파라오들의 동상은 높이 20m이고, 한 쪽 귀에서 다른쪽 귀까지는 4m가 넘으며
입술의 선은 1m가 넘는다. 정면을 지지해 주는 기둥들의 높이는 31m이다.>
<네페르타리 동상>
<새 매 모양을 한 하라크티 동상>
<무너진 두 번 째 좌상>
<네 명의 신의 좌상>
가장 깊숙한 성스러운 공간에는 네 명의 신의 좌상이 있다.
라 하라크티 신, 신격화된 람세스 2세, 아몬 라 신, 프타 신이다.
1년 중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이 공간에 태양빛이 들어오는데 어둠의 속성을 가진 '프타 신의 신상'에는 이 날에도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다.
원래는 2월 21일과 10월 21일이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위한 공사를 할 때, 날짜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1년이나 시간을 들여 계산을 하였지만 결국 원래 날짜보다 각각 1일 늦게 시간이 정해지게 되었다.
이 날 아부심벨 대신전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전통음악과 춤을 비롯하여, 이슬람교의 수피즘 교도들이 추는 춤 등을 공연하는 큰 축제를 연다.
<람세스 2세의 전투 장면이 새겨진 벽화>
<아부심벨 대신전>
신전을 언덕 지형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덕과 언덕 내부 사이에 대형 돔을 설치하였다.
신전 오른쪽에 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콘크리트 돔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와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바위를 조각으로 분해한 후 다시 조립한 소신전 모습>
<아부심벨 소신전>
람세스 2세가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서 세운 신전으로 대신전보다 크기가 작다.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4개와 네페르타리의 입상 2개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의 입상의 크기는 거의 동등하며 그들의 입상 아래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입상이 작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신전 내부에 있는 하토르 여신의 입상이 6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으며 벽면에는 채색된 왕비의 모습이 새겨진 벽화가 있다.
원래 아부심벨 대신전이 있는 지역은 하토르 여신의 영역이었다.
<이시스 신과 호루스 신을 묘사한 벽화>
<아부심벨 소신전(네페르타리 신전)>
<네퍼타리에 장식한 피콜로나 핫토르 신전의 정면>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낫세르호>
<콘크리트 돔으로 지어진 신전 후면>
<유네스코와 미국의 노력>
이 신전은 그 규모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대규모의 공사를 통한 이전 사업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지자 유네스코가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의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져, 신전을 1만 6천여 개의 조각으로 분할하여 원래의 위치보다 70m 정도의 높은 지대에 있는 나일 강의 상류 지역으로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아부심벨을 자세히 보면 공사 당시 신전을 분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을 이전할 당시 미국이 많은 지원을 하였고 이집트 정부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었던 덴두르 신전을 미국에 기증하였다.
미국은 이 신전을 분할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부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아부심벨 이전 공사 사진>
<사막 가운데 신기루 현상>
아부심벨 신전을 보고 아스완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사막의 신기루 현상을 관찰했다.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었는데 사막에 남아 있는 작은 봉우리들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아부심벨 신전을 보기 위해 왕복 7시간을 버스를 타야 했지만 위대한 문화 유적을 볼 수 있었고, 인류의 흔적이 물에 잠기지 않게 보존된 현장을 답사하여 좋았다.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Kom Ombo)은 기원전 180년 쯤에 완공되고 나중에 필레 신전처럼 로마인들이 이용하면서 건물을 추가하였다.
이 신전의 특이한 점은 신전을 남북으로 나눠 남북이 상하 일치하며 두 명의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남쪽 신전에서는 악어신 소베크(Sobek)를 섬기고 북쪽 신전에서는 초기 형상의 호루스(Horus the Elder)로 알려진 매의 신 하로에리스(Haroeris)와 그의 아내이자 좋은 자매로 알려진 타세네트노프레트(Tasenetnofret) 및 그의 아들이자 2개국의 통치자로 알려진 판넵타이(Panebtawy)를 섬기는 신전이다.
악어신을 섬기는 신전이라서 그런지 인근에서 악어 미라도 많이 발견되었다. 이드푸의 호루스 신전(Temple of Horus)에는 악어 미라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에드푸와 아스완 사이에 있었던 콤옴보는 고대 파 세백(Pa-Sebek)이다. 세백의 거주지를 말하는데 프레디나스티카 시대에 악어 신이 숭배되었다.
신전은 전체적으로 두 개의 신전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신전은 풍요의 신인 세백 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신을 세상의 창조주로 생각했다.
왼쪽에 있는 신전은 하로에로스 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전투적인 태양의 신이다.
이 신전도 역시 토오트-모시스 3세 지배하에 먼저 건축되어진 신전을 전체적으로 다시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가 재건하였다.
이 두 신전은 거대한 벽에 의해 막혔고, 나일 강 쪽으로 두 개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다주식 방에는 두 줄의 기둥들이 있고, 나란히 있는 두 성지를 원래의 방법으로 나누기 위해 중앙에도 한 줄의 기둥을 세웠으며 틈에 따라 정확하게 나누어졌다.
<콤옴보 신전 야경>
<악어신 소베크를 새긴 조각>
<매인 신 하로에리스와 그의 아내 타세네트노프레트 조각>
<두 명의 신을 섬긴 콤옴보 신전 벽화 모습>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신전 곳곳에 색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모두 호루스를 따르는 것을 질투한 소베크가 형을 쫒아내고 마음대로 해보려고 했지만, 백성들도 그에게 등을 돌리고 호루스를 따라 콤옴보를 나가 온 땅이 텅텅 비자 죄를 뉘우치고 다시 호루스를 불러와 사이좋게 땅을 다스렸다고 한다.
악어의 머리를 가진 물의 신 소베크와 매의 머리에 태양과 달의 눈을 가진 하늘의 신 호루스는 형제였다.
두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콤옴보 신전은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고대 이집트 의술을 보여주는 벽화>
<콤옴보 신전 야경>
<콤옴보 신전 달력>
<콤옴보 신전 기둥 벽화>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에서 야경을 촬영하다 발을 헛디뎌 손바닥과 무릎에 타박상을 입었다.
상처가 커서 위험했는데 가이드의 상비약으로 소독과 치료로 응급조치하였다.
신전에서 돌아와 선실에서 갈라비야 파티가 있었다.
아부심벨과 상점에서 구입한 갈라비야 의상을 입고 참가자들이 흥겹게 춤을 추었다.
한껏 멋을 낸 참가자들의 흥취에 하루 종일 피곤했던 몸들이 흠씬 땀으로 활력을 되찾았다.
Time To Forgive - Mark Pin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