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 양
본문말씀 : 요한복음 1:19 2004년 4월 22일 조회수 : 320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세례 요한은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유목민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은 우유, 고기, 양털과 같이 가장 필수적인 것을 제공하는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은 온유하고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 때 어린 양을 바치는 전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는 요한의 말에서 어린 양이 주는 의미가 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세상이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 곧 타락한 인간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말은 "여러분 저 사람을 보십시오. 저 사람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어야 하는 재물입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있어서 독생자의 영광은 곧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펼 때마다 요한이 "보라!"하고 외치고 있지만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 대신 죽어야만 하는 희생제물로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보는 인간과 우리가 보는 인간에 대한 시각이 너무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은 아무런 소망이 없고 내일이 없는 저주받은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되고 아름다워지는데 왜 그렇게 우리의 미래가 부정적이라는 말인가? 내가 그토록 죄인인가?" 이것이 우리의 시각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가 너무도 커서 아들이 대신 죽어야만 그 죄가 해결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가 그토록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실 어린 양으로 보는 방법은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마음속에 임하시면 십자가가 보입니다. 의심, 무지, 교만, 탐욕의 비늘이 그 눈에서 벗겨지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죽기는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이기에 이 사실을 본 사람은 변화되고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누구나 세례 요한처럼 그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어린 양으로 보았느냐 아니냐는 얄팍한 신앙고백으로 증명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앞에서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는 사실을 가지고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양을 보았다고 입술에 달린 고백은 잘 하지만 자기는 자기대로 살아있고 물욕과 공로의식도 살아서 하나님 앞에 뻣뻣하게 서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죽음을 대가로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진정 알게 된다면 자기 맘대로 인생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직도 스스로를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그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린 양 예수를 보지 못한 분들 역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께서 마음 속에 임하셔서 우리의 눈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인생을 드립니다. 다스려 주시옵소서.
본문말씀 : 요한복음 1:19 2004년 4월 22일 조회수 : 320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세례 요한은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매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유목민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은 우유, 고기, 양털과 같이 가장 필수적인 것을 제공하는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은 온유하고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 때 어린 양을 바치는 전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는 요한의 말에서 어린 양이 주는 의미가 그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세상이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 곧 타락한 인간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말은 "여러분 저 사람을 보십시오. 저 사람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어야 하는 재물입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있어서 독생자의 영광은 곧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펼 때마다 요한이 "보라!"하고 외치고 있지만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 대신 죽어야만 하는 희생제물로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보는 인간과 우리가 보는 인간에 대한 시각이 너무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은 아무런 소망이 없고 내일이 없는 저주받은 존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되고 아름다워지는데 왜 그렇게 우리의 미래가 부정적이라는 말인가? 내가 그토록 죄인인가?" 이것이 우리의 시각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가 너무도 커서 아들이 대신 죽어야만 그 죄가 해결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죄가 그토록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실 어린 양으로 보는 방법은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마음속에 임하시면 십자가가 보입니다. 의심, 무지, 교만, 탐욕의 비늘이 그 눈에서 벗겨지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죽기는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도 놀라운 사건이기에 이 사실을 본 사람은 변화되고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누구나 세례 요한처럼 그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어린 양으로 보았느냐 아니냐는 얄팍한 신앙고백으로 증명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앞에서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는 사실을 가지고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양을 보았다고 입술에 달린 고백은 잘 하지만 자기는 자기대로 살아있고 물욕과 공로의식도 살아서 하나님 앞에 뻣뻣하게 서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죽음을 대가로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진정 알게 된다면 자기 맘대로 인생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직도 스스로를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고 느끼지 않는 분이 계신다면 그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린 양 예수를 보지 못한 분들 역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께서 마음 속에 임하셔서 우리의 눈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인생을 드립니다. 다스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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